여주영(논설위원)
혹시나, 혹시나 하는 마지막 희망과 기대감이 여지없이 무너졌다. 한국의 과학이 붕괴되는 듯한 그야말로 허망한 발표였다. 논문조작은 고사하고 이제는 줄기세포, 원천기술마저 없다니... 그동안 황우석 교수에 걸었던 실낱같은 희망마저 끊어지는 순간이었다. 시끌벅적 요란하던 잔칫집
은 어디가고 남은 것은 허탈감과 실망, 그리고 수치심과 분노뿐이다. 앞으로 실추된 한국의 과학계에 대한 신뢰도는 무엇으로 회복하나? 아무리 먹구름이 끼고 비바람 치는 날이라도 하늘의 별은 색깔이 변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일부 과학자들은 썩을런지 몰라도 과학 그 자체는 썩지 않는다. 다만 기다릴 뿐이다. 런던 사회에서 많은 고초를 겪고 고향으로 돌아가던 뉴턴이 멀리서 자기 집을 바라보고 들어가기 전에 지난날들을 생각하며 사과나무 밑에 앉아 있다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
을 발견하였다. 모든 과학은 이처럼 발견을 해주거나 발명을 해주기를 기다릴 뿐이다.
만일 과학이 발전하지 않거나 빗나간 방향으로 갈 것 같으면 인류의 희망은 거기서 끝이 나고 파멸하게 되어 있다. 전진하지 않으면 인류는 끝장이다. 그래서 우리는 전진, 또 전진 하면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번 황우석 사태는 한마디로 한 과학자의 비리 이전에 이것은 근래에 보기 드문 황란(黃亂)이다. 왜 그랬을까? 돌아보면 그동안 한국사회의 풍토를 나무라는 사람은 많았어도 개선을 앞장서서 한 사람들은 없었다. 근대사회에서 부정과 비리와 부도덕이 사회에 횡행하는 것을 보고서 개선해 보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은 과연 얼마나 있었을까. 특히 마음이 아픈 것은 이번 황란 사건에서 가장 어려운 사람들, 다시 말해서 난치병 환자들을 볼모로 잡고 사기극을 벌였다고 하는 것은 나뿐만이 아니라 모든 국민이 가슴아파할 일이다. 왜 그가 가장 불쌍한 사람들을 볼모로 잡았을까.
그것은 다름 아닌 대한민국이 그런 난치병 환자들에 대한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그 쪽으로 방향을 잡지 않았을까. 평생을 병마와 싸워야 할 이 환자들을 고쳐준다 할 것 같으면 하루아침에 영웅이 되는 건 당연한 사실 아닌가. 순식간에 황우석 교수가 별처럼 뜬 것은 가장 불쌍한 사
람들에게 손길을 뻗는다고 하는 자애의 힘에서부터 비롯된 것이다.
우리나라에 자선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과연 100% 희생정신을 가지고 이들을 돌보는가. 툭하면 자선기관의 비리라는 것이 그동안 한국사회에 얼마나 많이 터져 나왔는가. 국가에서 장애자를 돌보라는 예산을 착복하는 사람이 그동안 어디 한 둘이었나. 사병에게 주라고 한 급식의 예산
도 높은 데서 다 해먹어 정작 먹어야 할 아래 졸병들은 국물만 먹고 진짜 고깃덩어리는 구경 조차 못한 때도 있었다. 그러고도 사병들은 허기를 참아가면서 나라의 국방을 담당했다. 지금이야 사병들의 급식이 많이 좋아졌다고 하지만 그 당시는 그것이 우리나라 현실이었다. 하다못해 나라를 책임 맡은 정부 부처에서도 구석구석 비리가 없는 부처가 어디 있는가. 건드리기만 하면 곳곳에서 비리가 터져 나왔다. 그것은 사람들이 목적 없이 급급하기 때문이다. 이 급급한 것은 내가 생각할 때에는 ‘습관적 조급’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왜 사람들이 그럴까? 한국은 지금 잘 사는 나라다. 조급해야 할 이유가 하나도 없고 오히려 충실함이 요구되는 나라이다. 그런데도 아직 전 국민이 조급성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이 조급성의 특징은 나 먼저 잘 되고, 나 먼저 잘 살고 봐야 한다. 거기에서부터 나온 것이다. 우리가 누구를 배려하는가, 우리는 탓만 하기 일쑤다. ‘남의 눈에 티끌은 보아도 내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한다’는 경구가 있듯 남의 탓만 할 줄 알지 자기가 저지른 과실은 떠올리지 않는다. 그러니 남 탓만 할 줄 아는 것이다. 우리가 탓하는 것을 무조건 없애라고 하는 말은 아니다. 탓 뒤에는 반드시 개선책이 있어야 한다. 그 개선책을 제대로 펼쳐 보이려면 국민 하나하나가 나부터 개선해야 한다.
내가 개선하지 않고 사회부터 개선해 주기를 바란다면 백년이 가도, 천년이 가도 그 사회에 대해서 기대할 것이 아무 것도 없다.
과학은 다만 기다릴 뿐이다. 모든 국민들이 나 스스로 개선하여 과학을 제대로 들여다 봐주기를 과학은 지금도 기다리고 있다. 금번 황우석 사건을 보면서 나는 황우석 교수를 나무라기 이전에 한국 국민의 습관성 조급증을 나무라고 싶다. 우리가 개선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제2, 제3, 제4의 황우석 사건은 반드시 또 나온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지 말고 지금부터라도 외양간 수리할 생각부터 하는 게 옳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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