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05년 3월과 4월에 연재한 10회의 “이승만 박사사 한인기독교회를 설립하기까지”의 후속으로, 하와이 섬에 동지촌이 어떻게 설립되었으며 어떻게 문을 닫았는가를 밝힌다. 신문 연재 성격상 각주는 생략하며, 이승만 박사의 존칭을 약하고 이승만이라고 한다. <편집자주>
(1) 이승만 박사와 하와이 섬의 동지촌
1)대한인 동지회(이 후 ‘동지회’라 함)는 1924년 11월 17일부터 4일간 호놀룰루에서 개최된 동지회 대표회의에서 동지합자회사를 설립하기로 결정했다. 그후 이승만박사는 동지회 회원들과 더 의논한 후 1925년 12월 13일에 동지식산회사 (Dongji Investment Company Limited)를 창립하였다. 이 회사는 위의 동지회 대표회의에서 결정한 동지회 ‘3대 정강’ 중 하나인 “경제 자유가 민족의 생명이니 자족자급을 함께 도모하자”를 실천하기 위한 방법으로 설립된 것이다. 즉 이승만은 이 회사를 통하여 한인들의 경제력을 발전시켜 장래의 활동에 필요한 재정을 확보하려 한 것이다. 당시 이승만이 얼마나 활동자금 확보에 골몰하였는가를 1925년 4월 15일에 김구에게 보낸 그의 서한에서 알 수 있다. 이승만은 김구가 자기에게 먼저 보낸 편지에서 지적한 “深謀遠慮(심모원려)는 우리가 마땅히 실행해야 할 대계가 아닌 것이 없소이다. 그러나 적수공권으로는 절대로 능히 공적을 이루지 못하오이다. 반드시 먼저 기금을 확보한 뒤에야 진행할 수 있는데, 자금이 어디에서 나오겠소이까. 제가 해결하기 어려운 것이 바로 이 한 가지 일입니다---”라고 하였다. 그러기 때문에 동지식산회사가 한인들의 경제력을 발전시켜 동지회 활동을 위한 재정확보를 기하는 것에 설립 취지를 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1926년 2월 15일에 하와이영토 상업국에 등록된 동지식산회사 정관(Articles of Association)에 의하면 이 회사는 1주에 100달러씩 700주를 모집할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 때까지 700주 중 75%가 약정되었고, 그 중 약 10%의 기금이 입금되었다. 신성일이 주식 50주, 차신호가 2주, 안영찬이 1주를 사기로 약정했고, 그리고 민찬호와 김경낙이 수탁자trustee로 관리하는 주가 647주였다. 그런데 실제로 입금된 것은 목표액의 10%인 7천 달러였다. 한 달 후에는 목표액의 43%인 약 3만 달러가 모금되었다. 이승만은 그 중 1만 3천 662 달러로 힐로 남쪽 18 마일 떨어진 올라아(Olaa) 지역에 약 960 에이커의 부지를 구입하고 이 곳을 ‘동지촌’이라 불렀다. 이 곳은 오히아(ohia) 나무가 울창한 임야였다. 960에이커의 땅은 서울 여의도 광장의 10배의 크기이며 미식 축구장의 1,160개가 넘는 크기의 땅인데, 이 동지촌이 한인들의 경제발전을 위한 첫 단계 사업이었다.
이승만의 일기에 의하면, 이승만은 1925년 11월 20일에 김성기와 힐로(Hilo)를 방문하고 12월 11일에 마우이 섬의 라하이나(Lahaina)를 거쳐 호놀룰루로 돌아왔는데, 아마도 이때에 올라아 부지를 구입한 것 같다.(이 일기는 「Log Book of S. R. Since 1904-」라고 붓글씨로 쓴 겉표지에 영문 타이프로 적혀 있으며, 1904년 11월로 시작하여 1938년 12월 28일자로 끝났다.) 힐로 항은 호놀루루 항에서 배로 14시간 걸리는 거리로 오후 5시에 출발하여 다음 날 오전 7시에 도착하였다.
이승만은 1926년 1월 5일에 다시 그 곳으로 가서 18일 동안 머물면서 동지촌 입주 준비를 하였다. 1월 7일자 일기에 김경낙과 그의 식구들이 동지촌을 총괄하기 위해 이사하였다고 적혀있다.
지금까지는 동지촌이 처음부터 오히아 목재사업을 목적으로 건설된 집단 거주지로 이해되어 왔다. 그러나 동지촌은 1903년에서 1905년까지 사탕수수농장 노동자로 이민 온 한인들이 더 이상 사탕수수 농장에서 노동을 할 수 없게 됨으로 이들을 동지촌에 입주시켜 임야를 개간하여 자작농장(homestead)을 운영하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 목적은 동지식산회사가 미 정부에 물어야 할 벌금을 탕감받도록 1931년 12월 8일에 미 국회에 상정된 동지식산회사 구제를 위한 청원안 (House Bill H. R. 2872와 Senate Bill S 3016)을 보충설명한 것으로 해군총장 C. F. Adams가 제출한 보고서에 기술되어 있다.) 이승만의 1926년 1월 7일자 일기에 기록하였듯이 동지촌은 ‘농장 farm’이었다. 노인 노동자들의 수가 앞으로 더욱 증가할 것을 예상하고 그들에게 자작농의 기회를 만들어주어 경제력을 키워 사회로 복귀케 함으로써(rehabilitate) 하와이 지역사회에 부담이 되지 않도록 한다는 것이었다.
등록된 동지식산회사 정관에 의하면 회사의 목적이 부동산과 동산 (real estate and personal property) 사업으로 매매활동, 건설 활동까지도 포함하는 것으로, 부동산과 동산에 관련된 활동 목적이 자세하게 나열되어 있다.
즉 이 회사의 목적은 부동산과 동산을 매매하며, 저당하며, 교환하며, 전당잡으며, 부동산 소유를 보증하며 To buy, sell, mortgage, exchange, hypothecate and otherwise deal in real estate and personal property; ---수로관개를 건설하고 관리하며 to construct and maintain irrigation works; ---모든 종류의 도로를 건설하고, 관리하며, 상수도, 가스, 오일 씨스템 등의 파이프를 건설하며 to construct, lay and maintain roads of every nature and kind, and to lay and maintain a system of water, gas, oil, or other pipes;--- 승객이나 화물을 수송할 차량을 매매하며 to buy, sell and acquire vehicles of whatsoever nature for the transportation of freight and or passengers;--- 등 이라고 명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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