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개에 달하는 세계 각 나라들은 저마다 독특한 화폐를 갖고 있다. 돈의 모양은 제 각각이지만 자기 나라를 빛낸 인물들의 초상을 화폐에 담는 것은 공통적인 현상이다. 이 수 많은 화폐들 가운데 가장 아름답다는 평가를 받아온 것의 하나가 프랑스 프랑화였다.
다른 나라가 정치인과 군인, 왕족의 얼굴을 주로 사용해 온 반면 프랑스는 세잔과 퀴리 부부, 에펠과 같은 예술가, 과학자, 건축가의 초상과 작품을 실었다. 예를 들면 100 프랑 지폐의 앞면에는 세잔의 초상이, 뒷면에는 그의 작품 ‘사과와 비스킷이 있는 풍경’이 실려 있고 500 프랑 지폐에는 퀴리 부부의 초상과 연구실이 그려져 있었다. 또 50 프랑 지폐에는 생텍쥐페리와 ‘어린 왕자’의 모습이 담겨 있고 한 쪽 구석에는 코끼리를 잡아먹는 보아 뱀 그림도 있다. 위조 방지를 위한 흰 점을 빛에 비춰 보면 ‘어린 왕자’의 양도 볼 수 있었다.
방금 전 ‘프랑화였다’고 한 것은 이제는 프랑스에 가도 프랑화의 모습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4년 전 유로화가 도입되면서 유럽 다른 11개국 통화와 함께 6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프랑화는 유물로 사라지고 이와 함께 빅토르 위고, 몰리에르, 파스칼의 얼굴도 자취를 감췄다.
그러나 올 해 유로를 쥔 프랑스 인들은 과히 기분이 나쁘지 않을 것이다. 작년 달러 대비 15%나 떨어졌던 유로화가 폭등세로 돌변했기 때문이다. 원래 유로화는 달러와 맞설 유럽 기축 통화로 제정돼 1유로가 1달러의 가치를 지녔었다. 그러던 것이 2000년대 초엽 미국 경제가 유럽에 대해 강세를 보이자 80센트까지 내려갔다.
그러나 그 후 미국의 무역 적자와 재정 적자가 수년 동안 사상 최고를 기록하면서 1달러 37센트까지 치솟았다. 불과 2~3년 사이 가치가 50%이상 뛴 것이다. 작년 말 1달러 15센트까지 떨어졌다 올 들어 1달러 21센트까지 올랐다. 미국과 유럽 같이 안정된 경제 사이의 환율도 이처럼 널뛰기하는 것을 보면 환율 방향을 맞춘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가 짐작할 수 있다.
달러와 1대 1 가치를 만들어진 화폐는 유로뿐이 아니다. 일본 메이지 시대의 엔화도 원래는 달러와 1대 1 비율로 제정됐으나 제2차 대전에서 패한 뒤 휴지가 됐다. 1949년부터 1971년까지는 360엔을 1달러로 고정시켰다 그 후 자유화되면서 한때는 80엔까지 상승했었다. 엔화 역시 작년에 하락세를 면치 못하다가 올 들어 상승세를 타고 있다.
그러나 이들 화폐보다 더 강세를 보이고 있는 통화가 있다. 한국의 원화다. 작년 다른 나라 돈이 모두 약세를 보일 때도 원화는 별 영향을 받지 않았다. 그러다 올 초 달러 추락과 함께 폭등, 1997년 이래 처음 980원 대를 깼다. 1997년 IMF 사태 때 1900대를 오르내리던 것에 비하면 엄청 올랐지만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전후 670대까지 치솟았던 것에 비하면 아직 멀었다.
무엇이 환율을 움직이는 것일까. 장기적으로 각국 화폐는 같은 구매력을 향해 움직인다는 학설이 유력하다. 똑같은 빅 맥을 미국에서 3달러에 사 먹는데 한국에서는 2달러 50센트를 주고 사야한다면 원화는 달러에 대해 20% 저평가 돼 있으며 장차는 이 수준으로 간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장차가 언제가 될 지, 또 반드시 그렇게 될 지는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 어쨌든 이 빅 맥 인덱스 기준으로 보면 원화는 810원대가 정상이며 중국 위안화는 60% 저평가 돼 있고 스위스 프랑화는 65% 과평가 돼 있다.
그건 그렇고 올해 달러의 동향은 어떻게 될까. 전문가들은 올해는 하락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반등할 가능성 보다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작년 사상 최대의 쌍둥이 적자에도 불구하고 달러가 오른 것은 연방 준비제도 이사회(FRB)가 여러 차례 금리를 인상한 반면 다른 나라 중앙은행은 그러지 않아 많은 외국 자본이 고금리를 찾아 미국으로 이동했기 때문인데 올해는 작년 같이 급격한 금리 인상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란 것이다.
그러나 작년 초에도 많은 전문가들은 달러화의 하락을 예상했지만 결과는 반대였다. 올해는 과연 제대로 맞출 수 있을 지 두고 볼 일이다.
민 경 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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