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신화에 산간벽지를 지나는 행인을 납치해서 자신의 침대에 눕히고, 인질의 키가 침대보다 길면 그의 키를 침대 길이만큼 절단하고, 그의 키가 침대보다 짧으면 침대 길이만큼 늘리는 괴벽을 가진 산적 프로크루스테스에 관한 일화가 있다. 여기에 빗대서 개인이나 단체가 어떤 규범이나 기준을 만들어 놓고, 아집에 천착해서 인간의 사상이나 사물을 획일화하려 할 때, 그 같은 경직된 사고방식을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라고 한다.
칼 막스는 그의 스승인 헤겔의 이론을 반박하면서 헤겔의 관념론을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라고 공격했다. 헤겔은 관념이란 초월적 기준을 세워 현실을 자의적으로 축소하기도 하고 늘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유물론은 반대로 현실에서 출발해서 진리에 도달한다고 막스는 주장했다.
인류의 역사를 보면 어떤 법칙이나 이론, 혹은 이데올로기라는 것은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가 아닌 게 없다. 다양한 현상의 요구를 일정한 틀에 규격화해서 그것을 시대적 현상, 혹은 요구로 보편화한다. 그리고 이 보편성이 일정 기간 풍미한 뒤 새 시대의 요구에 따른 새 가치의 출현에 밀려 퇴장한다.
1860년대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이 18세기 전 유럽을 덮치자 노동계급은 자본주의의 혼탁한 파고에 익사 직전에 처하게 되었다. 이 때 시대적 요구에 의해 형성된 신분적 불평등과, 사유재산에 따른 보편적 가치의 파괴에 직면한 인간을 해방시키는 정치적 제도와 질서를 구축할 수 있다는 막스의 혁명적 이상은 요원의 불길처럼 전 지구로 확산되어 갔다. 그리나 20세기 후반에 이르러 이 사상 역시 마치 프로크루스테스가 아테네의 영웅 테세우스에 의해 그의 관행대로 재단되었듯, 후기 자본주의에 의해 대체되고 있다. ‘계급에서 해방된’ 인간의 이상향을 건설하려던 정치적 실험이 지구의 도처에서 좌절된 것이다.
최근 국내외에서 난폭한 파고를 일으키고 있는 ‘뉴라이트’ 운동이라는 것이 바로 이 같이 해괴한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 동안 얼마나 많은 투쟁과 희생을 통해 얻은, 그래서 얼마나 귀중한 자유이고 민주화인데, 우리가 또다시 학살과 고문과 남북대결의 저 참담했던 암흑의 시대로 회귀하자는 것인가?
긴장을 부추겨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사건을 조작해서 멀쩡한 사람들을 사형시키고, “우리가 남이가?” 하며 동족을 편가르고, 온 민중이 군화발에 짓눌려 숨소리마저 죽이며 노심초사하던 암담했던 어제, 정적이라고 해서 현해탄에 수장시키려 했던 저 악의 무리들이 남북대결을 부추겨놓고 마치 양치기 소년처럼 ‘남침위협’을 외쳐 선거판을 뒤집고, ‘야간통행금지’를 시행하여 야밤중에 유신법을 강제 통과시키고, 또 야반에 청와대가 청루(靑樓)가 되던 그 야만의 세월을 잊었는가?
사이비 목사들이 무지몽매한 종교적 노예들을 커다란 텐트에 모아놓고 ‘뉴라이트 부흥회’를 했다는 소식에 아연실소하지 않을 수 없다. 예수님의 사랑을 빙자하여 교인들에게 ‘아우슈비츠’ 행 기차에의 승차를 권유하는 이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우리 민중의 위대성은 반세기에 걸쳐 우리 민족을 구속해 온 압제와 불의의 굴레를 벗어 던져버리고 스스로 새 역사의 주인공으로 우뚝 선 데 있다. 지난 두 차례에 걸친 대선에서의 선택은 전제적 질서와 분단 이데올로기, 그리고 지역주의를 극복하고 쓰러진 정의를 바로 세워 화해와 단결, 그리고 통일의 시대를 열자는 민중적 염원의 표출이었다.
그것은 민중들의 염원과 희망이 민주의 꽃을 피운 위대한 승리였다. 민중의 철퇴를 맞고 탈주하던 구시대의 위선과 불의의 검은 그림자를 추적하며 새 역사의 새벽을 맞던 그 감격과 환희를, 그리고 거기에 함축된 민중적 승리의 의미를 우리는 한 시도 잊어서는 안 된다.
통일은 우리 민족에게 있어 지고의 ‘선(善)’이다. 조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각종 분쟁의 원인이 바로 분단에 의한 정의의 부재, 진실의 왜곡에 기인하고 있다. 금년 우리는 통일을 향해 크게 전진하는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한다.
영국의 사학자 E.H. 카는 <역사란 무엇인가?>하는 명저의 말미에 서슬 푸르던 천주교의 종교재판에서 “그래도 지구는 움직인다” 라고 혼자 중얼거렸던 코페르니쿠스의 독백을 인용하면서 “역사는 다소 지체되고 때로는 뒷걸음질치는 경우도 있지만, 그 후진마저 전진을 위한 준비이며, 따라서 전진의 발걸음은 끊임없이 지속될 것이다” 라고 말했다.
우리 민족도 이에서 예외일 수는 없을 것이다.
sLee-kpi@msn.com
이선명/KPI통신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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