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영(논설위원)
태양은 하나다. 그리고 온 천지를 비치는 것이 태양이다. 이 태양은 오늘도, 내일도, 또 모레도 떠오른다. 그러나 분명히 뜬다 해서 반드시 내 것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만일 안개가 끼어있다고 하면 그 태양은 보이지 않는다. 태양은 하늘에서 뜨지만 안개는 땅에서 솟아오른다. 이는 다시 얘기해서 온갖 노력을 다했는데도 장사하다가 예기치 않게 실패한 사람, 또 결혼을 해서 제 딴에는 최선을 다했는데도 실패한 사람, 아이들을 위해 온갖 힘을 다 기울였는데도 교육에 실패한 사람, 한국에 있을 때 보다 친구나 친척 관계가 더 나빠진 사람 등등. 이런 실패는 원인을 따지고 들면 안 된다. 미련한 짓이다. 잘못을 자꾸 뒤돌아보는 사람한테는 태양이 떠오르지 않는다.경구에도 지나간 일을 생각지 말라 했듯 한번 실패했으면 뒤돌아볼 필요가 없다. 뒤를 돌아보느니 차라리 앞을 바라보는 것이 더 진취적이고 희망적이다.
옛날에는 실패했으면 ‘왜 그랬나’ 원인을 자꾸 따져 보라고 했지만 그 원인은 따지고 보면 찾을래야 찾을 수가 없다. 모든 실패의 원인은 나로 인해 생기는 것이 아니라 타성에 의한 것일 수도 있다. 결국 뒤돌아보게 되면 얻어지는 것이 없다. 그런 힘이 있으면 오히려 앞을 보는 것이 훨씬 낫다. 태양은 앞을 바라보는 자에게 비춰지지 뒤를 돌아보면서 한숨짓는 자에게는 비추어지지 않는다. 태양이 뜬다 해도 반드시 내게 온다고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 뒤를 돌아보는 습관이 있는 사람은 바로 그 것이 안개이다. 앞으로 가야 할 사람이고 또 앞으로 가고 있는데도 뒤를 돌아보는 것은 어둠이요, 곧 절망이다. “나는 한국에서 금송아지만 몰고 있던 사람이다” “한국에서는 이래 뵈도 내가 한 가닥 하던 사람이다” 하며 좋은 일이던, 궂은 일이던 자꾸만 뒤를 돌아보는 사람은 안개다. 이런 식의 안개가 끼어 있는 사람한테는 태양이 떠도 보이지 않는다. 태양은 앞만 보고 가는 사람한테만 떠오른다.
서양사람과 동양사람들을 비교하면 서양인은 앞을 보고 가고 동양인은 뒤를 돌아보는 습관이 있다. 이 습관은 어떻게 보면 우리에게는 미덕처럼 보인다. 그러나 삶에 있어서는 말짱 헛된 일이다. 하다못해 역사를 논할 때도 동양 사람은 역사 전체를 운운하는데 반해 서양인은 필요한 일부만 보길 원한다. 때문에 서양인은 진취적이고 동양인은 은둔적이다. 집을 짓는 것만 보아도 우리 같은 동양인은 해가 떠서 가장 나중에 비춰지는 산 밑에 집을 짓고 살지만 서양인은 해가 뜨지 마자 햇빛이 쫙 비치는 바닷가에 집을 짓고 산다. 그래서 미국을 보면 바닷가에 주로 도시가 발달돼 있다. 세계의 모든 도시들도 다 그렇다. 서양 사람들은 수평선을 바라보고 나아갈 길을 찾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양인들은 역사적으로도 보면 배를 타고 나가 세계를 정복했다.
그에 반해 동양인, 즉 한국인들은 산 밑에 집을 짓고 살면서 등 따시고 바람막아주는 곳에서 먹을 것만 있으면 만사 오케이였다. 이러한 삶의 문화에서 비교했을 때 앞을 보고 가는 서양인에게 빛이 있지, 은둔하고 사는 동양인들에게 빛은 상대적으로 적을 것이다. 한마디로 각 곳에서 실패한 사람들이 앞을 보고 나가는 그런 사람이 되면 거기에 반드시 태양이 떠오른다. 빛이란 앞으로 나아갈 길을 찾아주는데 필요하지 뒤를 바라보고 은둔하는 사람한테는 필요 없다. 필요 없는 곳에 태양이 왜 뜨는가. 그러니까 설령 실패했다손 치더라도 후회하지 마라. 절망하지 마라. 내일의 태양은 또 다시 떠오른다. 새해가 되어 내가 무얼 할 것인가. 계획 없이 막연
하게 될 것이다 하면 그 위에는 태양이 떠오르지 않는다.
미국사람들이 집을 하나 짓거나 늘릴 때는 반드시 청사진을 내고 허가를 받아야 한다. 실패를 막기 위함이다. 마찬가지로 내가 삶의 길에서 청사진을 만들면 내일 뜨는 태양이 반드시 허가증을 내준다. 허가증이 없으면 그 것은 안개이다.
많은 한인들이 실패의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정확한 설계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쥐구멍에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아주 막연한 속담이 있다. 내가 망해도 또 솟아날 길이 있다는 식이다 이런 속담을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알아 이를 아는 자체가 사람을 무계획하고 무방비하게 만든다. 또 하나, 우리나라 사람들의 신조 중 ‘설마 내가 망해도 밥이야 먹겠지’ 하는 기대감. 이런 속담을 마음속에 새겨두는 한 사람을 철두철미하게 계획하고 하는 일에 있어서 게을러지게 한다. 우리가 새해에 새롭게 되려면 법을 철두철미하게 따르는 서양인들처럼 청사진을 제대로 만들 줄 알아야 한다. 미국에서 살기는 이 나라 법, 이 나라의 환경, 이 나라 사람들에 둘러 싸여 살면서 사는 계획과 방법을 이 나라 사람을 닮아야지 여전히 한국의 재래식 방법을 동원해 옛날이나 하나도 다름이 없이 산다면 되겠는가. 그러면 태양은 여기에 안 뜬다. 그래서 많은 한인들이 실패하고 어려움을 겪는 것이다. 태양은 진취적이고 열심히, 그리고 부단
히 노력하는 자에게만 떠오르게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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