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보다 졸업후 잘살게 가르쳐라”
미주 한인들이 미국으로 이민을 온 가장 큰 이유를 꼽는다면 단연 자녀 교육이 선두일 것이다. 많은 학부모들이 한국의 입시지옥과 주입식 교육을 피하기 위해 6,000마일 멀리 떨어진 기회의 땅으로 태평양을 건너왔다. 그러나 미국에서도 대입 경쟁이 심해지면서 많은 학생들이 새벽부터 자정까지 숙제하랴, 자원봉사 다니랴, SAT 준비하랴 정신이없고 부모들은 학원, 교육컨설팅 등 사교육비로 허리가 휜다. 부시 행정부의 교육 개혁아래 미국 교육도 시험 위주로 평가되는 등 표준 시험이 점점 중요해져 미국이 한국을 닮아가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이처럼 갈수록 적응하기 힘들어지는 21세기 글로벌 경쟁 시대에서 성공할 수 있는 자녀를 키우는 비결은 과연 무엇인가. 교육자로서, 그리고 학부모로서 교육 현장에서 뛰는 한인 전문가들의 좌담회를 통해 바람직한 자녀 교육의 방향을 살펴본다. <우정아 기자>
한인 학부모 언어·문화·세대 차이 3중고
장애극복 노력도 미국 학부모의 3배 필요
자기 자신에게 어떤 문제 있나 알아봐야
먼저 마음 문 열고 자녀와 진솔한 대화를
▷수지 오: 지금 인구가 가장 많기 때문에 대입 경쟁도 가장 심한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는 고급교육을 받아도 인건비가 저렴한 인도 사람들에게 밀리는 글로벌 경쟁시대입니다. 한인 학부모들이 대학 보내는데 99%의 정열을 쏟아 붓는데 그보다 더 멀리 내다보셔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20년 후 글로벌 경제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자녀를 바라보며 교육하셔야 한다는 것이죠.
▷로이 박: 더구나 캘리포니아 인구는 다른 지역보다 더 빨리 늘고 있습니다. 저는 1980년에 이민와서 87년에 UCLA 들어갔지만 지금이라면 칼스테이트에 갈 정도밖에 되지 않나 생각됩니다. 그러나 미국이 한국과 다른 것은 실패하더라도 항상 기회가 있다는 점입니다.
△헬렌 추: 제가 있는 라크라센타 지역은 갓 이민 온 학부모들이 많은데 한국의 사교육 붐이 미국으로 따라 들어온 것 같습니다. 특히 부모들이 미국 교육에 대해 모르는 상태에서 자녀들을 강요하니까 아이들이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모습을 많이 봅니다.
△홍영화: 그렇습니다. 많은 부모들이 한국의 패러다임을 그대로 갖고 오시는데 바꾸지 않으면 자녀들에게 부담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한인 부모들은 자녀 교육을 숫자로만 측정하는 습관이 있는데 미국에서는 시험점수, 내신성적 등이 총체적인 퍼즐의 한 부분에 불과하지요. 12학년 자녀의 대입 준비를 보면서 느낀 점입니다.
▷수지 오: 행콕팍 지역은 유태인 50%, 한인 학생이 35%인데 시험성적은 한국 아이들이 더 높은 경우가 많지만 20년 후에 보면 유태인들이 더 성공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세계 속에서 유능한’(globally gifted), 즉 글로벌 경쟁에서 성공하는 사람은 자신의 견해를 똑똑히 표현하고 토론을 통해 남을 설득시키는 능력, 대립이 있을 때 이를 해소하고 다양한 견해를 수렴해 새로운 것을 배우는 능력을 필요로 합니다. 한국에서도 이를 ‘소프트 스킬’이라고 부르는데 최근 들어 관심이 부쩍 높아졌습니다.
▷홍영화: 많은 한인 학생들이 대학에 와서도 대인관계, 발표력 등이 부족하고 주어진 일밖에 할 줄 모르는 모습을 봅니다. 예를 들어 모르고 시험을 놓치면 교수에게 찾아가서 이를 해결하지 않고 작은 실수에 매달려 망설이다가 문제가 점점 커지는 사례가 많지요.
▷수지 오: 글로벌 시대에는 영어, 스패니쉬, 중국어, 한국어 등이 중요해질 것입니다. 저희 학교의 어떤 유태인 학부모들은 자녀에게 중국어를 가르치기 위해 중국인 보모를 고용하기도 하고 다른 부모들은 자녀를 한국어 이중언어반에 등록시키는 모습을 봅니다.
▷로이 박: 캘리포니아는 소수계, 특히 히스패닉이 다수가 되는 시대가 임박했는데 한인들이 타인종과 너무 섞이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제가 교감인 킹 드류 메디칼 스쿨은 75% 흑인, 25% 히스패닉으로 한인 학생이 2명에 불과합니다. 매우 좋은 학교인데도 한인 부모들은 학생분포만 보고 도망가십니다.
▷홍영화: 또 많은 한인 학부모들이 미국에 좋은 대학이 많은데 일부 아이비 명문만 찾는 점도 안타깝습니다. 주변에 학생이 스탠포드에 합격됐는데 듀크 대학에 간다니까 부모가 집나가라며 반대하는 케이스를 본 적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스와스모어 칼리지에 대해 들어보시지 못하셨을 겁니다. 솔직히 저도 클레어몬트 대학에서 가르치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이같은 인문대학들이 개인적인 교육으로 학생들에게 정서적으로 매우 좋으며 법대, 의대 등 대학원에 가려면 오히려 유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헬렌 추: 그러나 무엇보다도 바람직한 자녀교육을 위해서는 부모 교육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얼마전 LA카운티교육국이 주최한 학부모 훈련 프로그램(PESA)에서 8시간 교육을 받았는데 그동안 맞다고 생각했던 저의 자녀교육 방법이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찾아보면 이같은 학부모 교육 프로그램이 많이 있습니다.
▷로이 박: 교감으로서 문제 있는 학생들을 다루다보면 대부분 부모에게 문제가 있는 것을 봅니다. 성을 잘 내는 아이를 보면 부모가 성격이 급합니다. 자녀보다 먼저 자기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지 알아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녀에게 책을 안 읽었냐고 나무라기 전에 나는 책을 읽었는가 물어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수지 오: 미국 부모들은 자녀를 대할 때 세대 차이만 극복하면 되지만 한인 부모들은 세대 차이와 함께 문화 차이, 언어 차이 등 3가지 장애를 극복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자녀에게 자기가 잘했던 것만 말하지 말고 잘못했던 것도 말해줘야 진정한 대화를 열 수 있습니다.
▷로이 박: 어렸을 때 부모님이 오픈하우스, 백투스쿨 등에 가시지 않아 마음이 아팠던 기억이 납니다. 1년에 2번밖에 없는 행사입니다. 특히 한인 아버지들은 자녀 교육에 너무 신경을 안 쓰신다고 느낍니다. 주말에 골프만 치시지 말고 자녀를 데리고 박물관 등에 가셨으면 합니다.
▷헬렌 추: 자녀와 시간을 많이 보내는 것도 좋지만 어떻게 보내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주변에 하루 종일 일하는 부모 중에도 자녀가 잘 자라는 경우가 많습니다. 단 자녀에 대한 관심이 성적표 점검하는 정도에 그치지 않고 자녀들이 좋아하는 TV도 보는 등 아이들 세계에 들어가서 그들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보여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제 11학년 아이는 자기가 커서 애를 낳으면 한국학교에 보낸다고 합니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도록 말입니다. 공부도 중요하지만 이같은 자녀와의 관계에 가장 큰 보람을 느낍니다.
참석자 명단
수지 오 <3가 초등학교 교장, 교육학 박사>
로이 박 <킹 드류 메디컬 매그닛고교 교감>
헬렌 추 <크레센타밸리 고교 한인학부모회 회장>
홍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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