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라는 사자성어 두 마디는 두고두고 음미해보아도 설득력이 있는 표현이다. 물론 망자의 이름은 향기스럽다는 의미로 방명일 수도 있지만 살아 생전 소행 때문에 악명일 수도 있다. 최근 미국 역사가 데이비드 맥컬로프의 명저 ‘존 아담스’를 읽은 후 그의 철저한 고증과 아울러 유려한 필체에 매혹되어 900페이지가 넘는 그의 또 다른 전기 ‘트루만’을 읽기 시작하면서 사람 이름에 대한 생각을 부쩍 하게 된다.
그러면서 또 느끼는 것이 완전하거나 완벽한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진리다. 토마스 제퍼슨 하면 “모든 사람들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로 시작되는 그 유명한 미국독립선언문의 저자로서 민주주의 역사에 지울 수 없는 족적을 남긴 사람인 것은 초등학교 학생이라도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의 ‘모든 사람들’에는 흑인들이 포함되지 않았다. 장인에게 물려받았거나 어쨌거나 간에 인간 자유에 대한 그 아름다운 글들을 남긴 그에게는 100명이 넘는 흑인 노예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제퍼슨은 죽으면서도 흑인들에 대해 인색하기 짝이 없었다. 미국 독립선언 50주년인 1826년 7월4일에 죽은 그는 그의 노예들 가운데 헤밍스 가족 중 다섯 명만 해방시키는 유서를 남기고 죽었다. 그 해방된 노예 중 그가 데리고 살다시피 한 것으로 알려진 샐리 헤밍스는 포함되지도 않았다는 역사의 각주는 소위 위대한 인물들의 이중성 내지 위선에 대한 증거이다. 샐리 헤밍스는 제퍼슨의 딸이 나중에 가서야 자유의 몸을 만들어준다. 당시로서는 엄청난 금액인 10만 불이 넘는 빚을 남기고 죽었기 때문인지 그 다음해 1월에는 그가 살던 몬티첼로 저택의 정원에서 제퍼슨의 노예 130명에 대한 경매 세일이 있었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몬티첼로 마저 헐값에 팔리게 되었다.
버지니아 지사, 불란서 공사, 국무장관, 부통령, 그리고 대통령을 지낸 제퍼슨은 그의 묘비에 이렇게 적어 넣으라고 유언한다.
“이곳에 미국 독립선언문과 버지니아 종교자유법의 저자이며 버지니아 대학의 아버지인 토마스 제퍼슨이 묻혀있다.”
공교롭게도 독립선언문의 공동서명자 중 하나이던 존 아담스 제2대 대통령도 자기 아들 존 퀸시 아담스가 제6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해이기도 한 같은 독립 50주년 기념일에 죽었기 때문에 미국 독립의 두 거장이 한 날에 사라졌다는 우연의 일치는 오랫동안 인구에 회자되었다.
여러 모로 두 사람은 달랐다. 매사추세츠 주 출신인 아담스는 흑인 하인은 있었을망정 노예는 한 명도 거느린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또 제퍼슨이 빚을 내가면서도 흥청망청 호사스럽게 사는 사람이었던 반면 아담스는 검소하기 짝이 없었다. 독립운동 시절, 특히 불란서와 네덜란드에 혼자서 외교관 생활을 하던 때 그의 부인 아비가일이 농사와 집안 관리를 잘 했던 탓인지 아담스는 죽었을 때 그의 유산이 10만여 불에 가까웠다. 제퍼슨의 부인이 일찍 죽었기 때문에 그가 재정적으로 실패한 사람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제퍼슨과는 달리 아담스는 자기 묘명을 남기지 않았다. 아담스는 1638년에 매사추세츠에 처음 당도한 헨리 아담스의 관 뚜껑에 새겨진 다음과 같은 문구를 남겼다.
“이 묘역에 있는 이 석판과 다른 돌들은 (헨리 아담스의) 고·고손자가 자기 조상들의 종교심, 겸손, 단순함, 지혜, 근검절약, 부지런함과 오래 참음을 존경하는 나머지 그들의 덕을 그들의 후손들에게 천거하기 위해 마련한 것이다.”
존 아담스는 자기 자신의 업적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대신 자기 자신을 자기 조상들과 후손을 연결시키는 고리의 일부로 보았으며 자기가 가르침을 받아왔고 그대로 살려고 노력해온 성품들을 부각시키려한 것이라고 데이비드 맥컬로프는 해석한다.
이 글을 쓰기 직전에 한국의 인터넷 신문을 보니까 황우석 교수의 거짓말한 사실의 폭로로 도배되어 있다. 서울대학 의과대학의 연구부장은 황 박사의 허위 연구논문에 관해 “오늘은 한국과학계의 국치일”이라고 말한 신문 제목이 눈에 턱 들어온다. 맞춤형 줄기세포 배양에 성공했다는 금년 5월 사이언스의 논문이 온통 거짓이었다니 정말 해도 너무 한다는 한심한 생각이 든다. 만일 황 씨가 그런 거짓을 저지른 것이 사실이라면 한국과학계만 아니라 한국 전체의 수치며 망신이다. 그렇다면 황 씨 사후 그의 이름은 어찌 기억될까.
<남선우 변호사 MD, VA 301-622-6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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