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부터 갑작스레 학교에 가기 싫다며 아침마다 등교 전쟁을 치르는 아이들. 무슨 문제라도 있는지 물어보면 속이 훤히 들여야 보이는 엉뚱한 핑계거리만 대는 경우가 많다. 아이를 다그쳐 학교에 보내긴 하지만 부모 마음은 여간 무겁지 않다. 이유 없어 보이지만 나름대로 이유 있는 등교 거부 학생들의 증상과 원인 및 대처 방안을 살펴본다.

올해 초등학교 3학년이 된 레베카 김 양은 하루하루 시간이 지날수록 학교 가는 일이 마냥 두렵기만 하다. 매일 아침 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떼를 쓰느라 등교 준비가 늦어지는 것은 물론, 스쿨버스를 놓치기 일쑤다.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학교에 도착하더라도 수업시간만 되면 복통이나 두통을 호소하는 일이 다반사이고 매번 찾아가는 양호 선생님이 부모에게 연락하면 거의 매주 평균 이틀 꼴로 조퇴가 반복되고 있다.

어쩌다 부모가 데리러 오기 힘든 날이면 레베카 양은 불안한 마음에 부모 휴대폰에 쉴 새 없이 전화를 걸기도 한다. 조퇴 후 집에 귀가하면 텔레비전 시청이나 장난감을 갖고 노는 일에 정신을 빼앗긴다. 부모는 레베카 양의 잦은 결석과 조퇴로 중요한 3학년 시기의 학습 진도를 따라가는데 어려움이 있을까 걱정하고 있다.올해 8학년이 된 니콜라스 박 군도 사정은 마찬가지. 가을학기 개학 후 3개월 남짓 흐른 동안 이미 결석일수는 40일을 넘어섰다. 학교에 가더라도 1교시 수업은 빼먹기 일쑤고 친한 친구들도 없어 점심시간이면 도서관에서 혼자 지내는 경우가 많다.

수업시간에도 교실 뒤편에 앉아 좀처럼 발표도 하지 않으며 그룹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일을 무엇보다 힘겹게 생각한다. 때문에 시험일이나 프로젝트 발표하는 날의 결석률이 특히 높다. 방과 후에도 집에서 혼자 온라인 게임이나 비디오 게임에 푹 빠져 지낸다. 박 군의 부모는 아
들의 학교를 옮겨야 할지, 아니면 개인교사를 고용해 가정에서 보충학습을 시켜야 할지 고민 중이다. 레베카 양과 니콜라스 군의 사례는 현재 미국내 초·중·고교생의 28% 비율에 달하는 ‘등교 거부증(School Refusal Behavior)’에 속하는 경우다. 등교 거부증은 ‘무단결석’이나 ‘학교
공포증’과도 유사한 의미로 사용된다.

뉴욕대 아동연구센터 자료에 따르면 등교 거부증은 사회경제계층에 상관없이 5~17세 연령의 남녀학생에게서 고루 나타나지만 특히 10~13세 연령그룹에서 가장 뚜렷한 현상을 보이는 특징이 있다. 대부분 이를 일시적으로 지나가는 성장기 통과의례의 하나로 여기지만 증상의 지속 여부에 따
라 때로 심각한 상태로 발전할 수도 있어 가정과 학교의 세심한 주의가 요구된다. 일반적으로 등교 거부증이 2주내에 끝날 경우 그리 걱정할 필요 없으며 자연스럽게 회복돼 곧 예전의 모습을 되찾는다. 2주 이상 지속되면 심각성이 조금 높아지고 2주에서 1년까지 지속되면 아주 심각한 상태이며 1년 이상부터 2년 또는 그 이후까지 지속될 경우 만성으로 분류되는
등 총 4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증상은 잦은 학교 결석, 등교하기 전 울며 떼쓰거나 화내기, 등교하더라도 수업 빼먹기, 학교에 머무는 동안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등의 형태로 나타나지만 학문적으로는 크게 외적인 것과 내적인 증상으로 나눌 수 있다.
내적으로는 걱정, 사회적 불안, 소외감, 우울증, 피로감, 복통, 메스꺼움, 오싹함, 두통 등의 신체·정신적인 고통을, 외적인 것은 울음, 고함, 화내기, 언어 또는 신체적 공격, 적대적 행동 등의 증상을 동반하기도 한다.

등교 거부증 원인도 개인에 따라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획일화된 기준으로 풀이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①자신에게 불안감을 안겨주는 학교와 관련된 모든 사물이나 상황을 피하려는 의지 ②학업 스트레스 또는 또래와 어울리지 못해 비롯된 불편한 주변인들과의 관계에서 벗어나기 위함 ③학교 밖에 존재하는 부모 등 주변의 주요 인물들로부터 관심을 얻기 위한 목적
④학교 밖 공간에서 대체 만족거리를 얻기 위한 목적 등을 꼽을 수 있다.

레베카 양의 경우 스쿨버스를 타지 않으려고 일부러 아침 등교 준비에 늑장을 부리거나 등교 거부 전쟁을 치르면서 부모로부터 관심을 얻어 친밀감을 높이기 위한 행동일 수 있으며 특히 부모와 떨어지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작용한 탓일 수도 있다. 니콜라스 군도 혼자 컴퓨터와 비디오 게임을 즐기는 시간이 많다보니 또래와의 관계 형성에 점차 부담을 느껴 학교에 가는 것이 갈수록 불편해지면서 등교 거부증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풀이
할 수 있다. 특히 아직 어린 레베카 양보다 사춘기에 접어든 니콜라스 군의 경우가 더욱 위험한 상황. 대부분 등교 거부증의 심각성을 외면하고 치료를 받는 경우도 드물어 증상이 심화될수록 청소년기 학생들인 경우 마약이나 알콜 음료 섭취로 이어질 위험이 높기 때문이다.

따라서 등교를 거부하는 실질적인 이유와 원인을 찾아내서 불안감을 안겨주는 요인들을 제거하거나 대처할 수 있는 자신감을 갖도록 해야 한다.
가장 좋은 방법은 정신보건 전문가의 진단과 치료를 받는 것이다. 물론 등교 거부 자체가 정신장애를 뜻하는 것은 아니지만 다양한 정신장애와 연관성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등교 거부 지표(SRAS·School Refusal Assessment Scale)를 기준으로 종합적인 진단을 하게
된다.

증상에 따른 효과적인 치료법으로는 다음과 같이 요약해 볼 수 있다.
①슬픔, 우울증, 공포, 불안감, 걱정, 이별에 대한 불안증 및 기타 다양한 공포증이 원인이었다면 고른 호흡과 근육 이완 등 심신을 안정시키는 훈련을 익히도록 한다. 또한 학교 환경에 자신을 노출시키는 빈도도 차츰 늘려나가야 한다. ②시험에 대한 불안감, 남 앞에 서는데 대한 두려움, 수줍음, 사회성 결여, 사회 공포증 등이 원인이라면 역할극을 통한 훈련이 효과적일 수 있다. 또한 사회성과 문제 해결 능력을 기르기 위
한 훈련 및 자신을 억누르고 있는 부정적 생각들의 변화를 추구하도록 해야 한다. ③타인의 관심을 끌기 위한 등교 거부증을 보였다면 부모들이 자녀의 우발적 상황에 대한 관리 능력을 길러야 할 필요가 있다. 또한 학부모가 자녀에게 지시 내리는 방법에도 변화를 시도해 보고 규칙적인 생활 리듬을 갖도록 하며 학교 출결석에 따른 상벌제도를 시도하는 방법도 있
다. ④학교 밖 공간에서 대체 만족거리를 찾기 위함이었다면 부모는 자녀가 학교에 출석하면 용돈을 올려주는 등 인센티브를 늘려주기로 약속을 맺어 본다.

만약 학교에 결석하는 날에는 텔레비전 시청이나 게임 등 기타 다른 활동 참여를 제한시키는 조건도 포함시킨다. 또한 규칙을 따르지 않으면서 발생되는 가족 구성원간의 분쟁을 줄이기 위한 문제 해결 전략 대안책을 마련해야 하며 가족 구성원들의 대화 기술 강화 훈련도 필요하다. 학생이 학교에 출석하는 것은 학교 규정일 뿐만 아니라 앞으로 사회적, 정신적, 학문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부정적인 결과를 예방하기 위한 차원이기도 하다. 따라서 증상이 심해지기 전에 빠른 시일내에 조치를 취해야 장·단기 후유증에 시달리지 않게 된다.

단기적으로는 학생에게 엄청난 스트레스를 안겨주고 학교 성적 하락이나 사회적인 소외, 가족 구성원간의 긴장과 분쟁에서 그치지만 장기적으로는 대학 진학 가능성이 줄어들고 약물 복용의 위험이 높아지는 것은 물론, 사회적 불안감과 우울증이 심화돼 개인적으로도 정신적·신체적인 건강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무엇보다 등교 거부증을 보이는 학생이나 자녀에게 무조건 야단만 칠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보고 가족 구성원과 학교 관계자들이 공동의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중요하다. <이정은 기자> juliannelee@korea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