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크리스마스가 다가왔다. 거리마다 ‘크리스마스 트리’와 함께 아름다운 장식들이 등장하고, 가게들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샤핑하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곳곳에서 흥겨운 ‘크리스마스 캐롤’이 들려오는 가운데 사람들은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인사와 함께 ‘크리스마스 카드’를 주고받는다. ‘크리스마스’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들뜨게 한다.
하지만 미국 땅에서 크리스마스를 맞는 크리스천의 마음은 해가 갈수록 무거워진다. 그것은 미국이 이제는 ‘메리 크리스마스, 크리스마스 트리, 크리스마스 캐롤, 크리스마스 샤핑, 크리스마스 카드’ 같은 말들을 아무 데서나 ‘쉽게’ 할 수 없는 사회가 되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얼마 전 보스턴시 당국은 공원에 세워진 ‘크리스마스 트리’를 이제부터 공식적으로 ‘할러데이 트리’라고 부르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그 이유는 연말연시의 명절은 반드시 기독교인들만의 명절이 아니기 때문이란다.
또 월마트를 비롯해서 K마트, 타겟, 코스코, 콜즈, 비제이스 같은 백화점들은 ‘메리 크리스마스’라는 문구를 사용하지 않고 대신 ‘해피 할러데이즈’라는 문구를 쓰기로 결정했다. 이유는 마찬가지로 특정 종교에 관련된 표현을 지양함으로써 다른 종교인들이나 비종교인들을 포용한다는 의도란다.
다양성을 최대의 특징으로 갖고 있는 미국은 물론 다양한 종교를 수용하고 있다. 종교와 신앙의 자유를 철저하게 보장한다는 것은 미국 건국이념의 중요한 부분이기도 했다. 그래서 지금 미국은 지구상에서 신앙과 종교의 자유가 가장 철저하게 보호되고 있는 나라라고 할 수 있다. 미국에는 이스라엘 전 인구보다 많은 유대인이 살고 있다. 또 이슬람 국가에서보다 미국에서 이슬람교를 더 자유롭게 믿을 수 있다고 실토하는 무슬림도 보았다.
이런 상황이기에 무신론자를 비롯해서 일부 비기독교인들은 미국의 곳곳에 배어있는 ‘기독교’의 냄새와 자취를 없애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미국의 공립학교에서 기도를 할 수 없게 된 것은 벌써 오래된 일이지만, 이제는 정부기관과 관련된 일에서는 기독교의 ‘기’자도 말할 수 없을 지경이 되었다.
얼마 전에는 한 법원 앞에 놓여진 십계명비를 제거해야 한다는 논란도 있었고 또 ‘국기에 대한 맹세’에 들어 있는 ‘하나님 아래 한 나라’(one nation under God)라는 구절을 삭제해야 한다는 소송도 제기되었다. 최근에는 달러 지폐와 주화에 적혀 있는 ‘하나님을 우리가 믿노라’(In God we trust)라는 구절도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 등장하고 있다.
그래서 이제 ‘크리스마스’라는 말을 하기 어려워지는 것도 당연한 추세인지 모르겠다. 사실 미국에서 크리스마스 직후부터 새해 아침까지 약 한 주일 동안은 유대인들의 하누카이자 동시에 크완자라는 흑인들의 민속 축제기간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공공장소와 행사에서 ‘크리스마스’라는 말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생각이다. 누구나 자기와 다른 종교와 신앙을 인정하고 존중해야 하는 것은 정당한 일이다.
하지만 이제는 미국사회의 주류와 다수를 이루어왔던 기독교가 역차별을 받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기독교가 미국사회의 정신적 바탕이 되어 왔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크리스마스는 야구, 애플파이 등과 함께 가장 미국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기독교의 최대 축일인 성탄절을 맞아 기독교인들이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하면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을 비기독교인들도 인정하고 존중해 줄 만하지 않는가.
매년 크리스마스가 되면 워싱턴의 연방의회는 의사당 건물 앞에 트리를 세워 장식해 왔는데 예전에는 말할 것도 없이 이를 크리스마스 트리라고 불렀다. 하지만 1990년대 말부터 이를 ‘할러데이 트리’라고 불러 왔다. 그런데 데니스 해스터트 하원의장은 금년 크리스마스부터 이를 다시 ‘크리스마스 트리’라고 부르기로 결정하고 선포했다. 해스터트 의장의 용기 있는 정당한 결정에 많은 크리스천과 더불어 환영과 찬사를 보낸다. 아울러 비기독교인들의 이해와 관용이 있기를 바란다.
장석정
일리노이주립대 교수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