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 사람들의 추수감사절용 절기음식으로 등장하는 것이 칠면조 요리이다. 올해만 해도 감사절에 4,000만 마리의 터키가 소비되었으며 성탄절엔 약 2,000만 마리의 터키가 죽을 각오를 해야한다니 엄청 터키를 먹어 치우는가보다. 기름기 없는 건강식이라 알려져서 터키 샌드위치 등이 인기 있기는 하다. 해마다 감사절에 있는 연례행사라며 미국의 대통령부시는 죽을 칠면조중 한 마리를 사면(?)시켜 이번엔 디즈니랜드의 퍼레이드에 참석시키는 우스운 일을 하기도하였다. 미국인들이 터키를 좋아한다는 것이 터키쪽 에서는 사생결단의 일이니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조류임에도 머리에 털이 없이 주름만 늘어진 칠면조는 새 같지가 않고 일반 동물(특히나…‘개’)같다.
내가 여학교의 선생일 때, 그 사립 여학교의 이사장 사택이 교정의 후원에 있었다. 칠면조 세 마리가 마치 경비견처럼 마당에 풀려져있었다. 학생들의 예절지도를 위한 실습실로 사택을 개방하였던 터라 가정 선생인 나는 수시로 드나들었는데, 그 칠면조가 아주 무서웠었다.
얼굴 색을 수시로 바꾸면서 달려드는 조류가 사나운 개보다 더 공포스러웠다. 그러던 어느 날 이사장이 부르더니 칠면조 한 마리를 잡아 요리를 해 보라고 가정선생인 내게 명령을 내리는 거였다. 칠면조가 무서워 꽁무니빼기 바쁜 내게 칠면조를 잡으라니. 할 수 없이 남자 생물선생을 구워삶아 목을 비틀고 거의 울면서 털을 뽑은 기억이 난다. 오븐 구이는 생각도 못하고 굵은 뼈를 토막내어 닭 도리 탕 비슷한 요리를 만들었던 기억이 있다. 무서워서 간도 안 보고 만들었던 칠면조 요리가 이곳에 오니 아주 파퓰러한 명절음식이어서 조금 당황했다. 감사절이면 크리스마스면 당연히 먹어야하는 터키요리. 교회에 가도 어느 집에 초대가 되어가도 피할 수 없는 요리이다. 나는 뱃속에 넣어 구운 스터핑이나 위에 끼얹어 먹는 크랜베리 소스로 입맛을 다시며 먹는 시늉만을 할뿐이다.
뭐든 엇 박자인 우리부부는 의견 통일이 안 될 때가 99.99%이다. 며칠 전 추수감사주일을 앞두고 감사헌금을 의논 할 때였다. 남편은 늘 “당신이 받은 은혜만큼…” 하면서 내게 슬쩍 책임을 넘긴다. 나는 감정적인 사람이어서 좋을 때 바로 감사헌금을 하면 모를까 이렇게 일년을 돌아보며 하려면 현실적인 계산이 앞서게되어 인색해진다. 내가 “그럼 얼마 하면 되겠네…” 하니 “…” 아무 말도 안 한다. 그러면서 그렇게 감사할 게 없냐?” 묻는다. 그래서 한번 생각해 보았다. 지난 일년을…
감사할 일보다 우선 골치 아픈 일들이 먼저 생각났다. 공사 때문에 생긴 소송 건, 도움을 주고자했다가 대신 당한 피해. 유명교회에서 받지 못한 공사대금 등등. 남편의 옛 직장 동료 남편의 선배, 친하다고 생각했던 이들에게 받은 피해들이다. 거기에다 국세청의 감사가 아직도 진행중이고 현장에서 일하다가 인대가 늘어진 직원의 클레임 건도 미결이다. 사람 사는 일들이 다 지지고 볶는 연속이긴 하여도 대부분의 일들이 물질적인 손해와 함께 사람에게 대한 실망도 동반하므로 일년 내 마음 한구석이 후련하지가 않았다. 그럴 때마다 절기가 아니어도 ‘칠면조’생각을 늘 하였다. 수시로 안면을 바꾸고 태도를 바꾸는 이들이’칠면조’와 같다는 생각을 하며 살았다. 내가 싫어하는 ‘칠면조’여서 더욱 그런 생각을 하였는지 모른다.
이번 추수감사여행엔 터키요리를 별로 안 좋아하는 나를 생각해서 터키대신 터키햄을 준비했다고 친구가 말해서 웃었다. 배게 만한 터키햄에 브라운 슈가를 뿌리고 파인애플을 얹어구우니 먹을만했다. 해마다 20파운드 되는 큰 터키를 가져와 3일 내내 지치도록 상에 올라왔던 터키를 안보니 살 것 같았다. 미국에 온지 얼마 안된 후배의 가정은 부대 찌게를 준비해 오고 나는 새우를 곁들인 야채를 마늘 소스로 버무린 샐러드를 준비해 국적불명이나 더욱 맛이 있는 감사절 식탁을 맘모스 산장에 차렸다.
3박 4일 동안 아이들과 남편들이 스키를 나가면 남아있는 세 주부들은 이바구를 하였다. 한 여자는 허리디스크로 , 한 여자는 무릎 관절이 시원치 않아 후배는 약골이라는 핑계로 전체의 분위기를 맞추느라 산장에 남아 수다를 떨었다. 작년 만해도 나 홀로 남아 책도 조금보고 생각도하고 하였는데 올해는 여러 이야기를 했다. 이민 연수가 길면 긴 대로 후배처럼 일년이 채 안되면 안 된 대로 사는 일은 우여곡절이 많았다. 아이들이야기 앞날의 이야기로 끝없이 이어지는 문제의 연속들. 서로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내 문제는 문제도 아니구나 스스로 해결 받았다.
손해보았어도 두발 뻗고 잠을 자는 이는 내 쪽 이라는 것이 고맙다. 우리로 인해 다른 이가 어려운 순간을 넘겼다면 그도 감사할 일이 아닌가 말이다. 마음을 비우고 물질 너머를 볼 수 있어야 행복한데 그 비우기가 바로 바로 안되니 그도 인생의 화두 이다. 꼭 남의 불행을 들어야 위로를 받고 마음을 돌이키니 별 수 없는 속물이 나라는 인간이다. 돌아보면 불평 거리 보단 감사할 것이 더 많은데 왜 자꾸 손해에만 집착을 하는 것일까? 한해 동안 내가 받은 복을 세어보아야겠다. 그리하여 불평 보단 감사를 찾고 감사 위에 나눔의 조건을 찾아보련다.
내가 미워하는 ‘칠면조’… 실은 젊을 적 내 별명이기도 하였다. 옷을 자주 갈아입고 몸매가 되었을 시절에 멋 부리기에 열중한 나를 엄마가 부르던.
이정아
약 력
한국수필 등단
재미수필가협회·미주한국 문인협회 이사
작품집 <낯선 숲을 지나며>
디지털북 <팜트리가 있는 풍경> http://bsle.kl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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