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7일 오전 10시 40분 우리 하와이 공연 성극팀 일행 18명을 태운 ATA(Am-erican Trans Air)의 거대한 기체가 샌프란시스코 공항 활주로를 박차고 이륙하고 있었다. 18명 단원 중 나를 포함한 3명을 제외하고는 하와이의 첫길이라 그런지 그들의 얼굴에 초등학생들이 소풍 길에 나서는 기분이라고 할까, 메테를링크가 쓴 명작동화 <파랑새>에서 행복의 나라 파랑새를 찾아 길 떠나는 틸틸, 미틸의 얼굴에 묻은 기대와 환희의 빛이 깔리고 있었다.
그들 얼굴에 함박꽃같이 피어 오른 환희의 모습을 보면서 나의 상념이 과거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 상념이란 지금으로부터 50년이란 세월이 지난 내 나이 26살 때 총각선생이었던 내가 중학 3년 여중학생들을 인솔하고 경주로 수학여행 길을 떠났던 그때 그들 열 예닐곱 살 나이의 시골 소녀들 얼굴에 잔잔한 파도 결 같이 너울 치던 환희의 그 표정 말이다. 그런데 그때부터 반세기가 지난 지금, 76살 나이의 내가 다시 이렇게 그것도 고국이 아닌 미국 땅에서 성극팀을 인솔하여 하와이로 향하는 이들 얼굴에서 그 때의 여중학생들의 얼굴에서 너울 치던 기쁜 표정을 다시 보게 됨이 정말로 우연한 일이 아니구나 하고 독백해 보았다.
우리를 태운 비행기는 태평양 바다를 가로질러 나르기를 4시간 40분만에 하와이 7개 섬 중 두 번째로 크다는 Oahu 섬의 호놀루루 공항에 우리를 내려놓았다. 비행기 바퀴가 검은 색깔의 활주로에 닫자, aloha ! 라는 기장의 목소리가 기내 방송을 통해 흘러 나왔다. 그러자 많은 승객들이 알로하라고 합창하고 있었다. 이 알로하란 인사말은 하와이 땅에 발을 디딜 때 처음으로 듣는 소리이자 하와이를 떠날 때 마지막으로 듣는 소리인 것이다.
우리 일행이 공항 밖으로 나왔을 때 예쁘장한 25인 승 관광 버스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공연 주최측인 하와이 기독교TV방송의 신 사장이 준비한 18개의 Lay(꽃 목걸이)를 일일이 우리들 목에 걸어 주었다. 신 사장이 우리 목에 레이를 걸어 주는 동안 이번 3박 4일 동안 우리를 아침저녁으로 안내할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왕(王)이란 성의 운전기사가 마이크를 통하여 우리가 목에 걸고 있는 그 꽃 목거리는 향수의 원료인 <푸루메리아> 꽃이라고 소개해 주었다.
목에 꽃 목거리 Lay를 걸고 조물주가 만든 걸작의 섬 하와이의 풍치(風致)에 젖어 보는 프레스노 한인장로교회와 산호세의 사랑의장로교회의 출연 연기자들은 그제서야 하와이란 남태평양의 한 섬에 와 있구나 하는 실감을 느끼는 듯 했다.
오후 2시 30분에 호놀루루 공항에 도착한 우리는 도중에 여러 곳을 관광하고 호텔에 도착한 시각이 저녁 7시쯤이었다. 우리 단원들이 배에서는 배고프다는 신호의 꺜8즲 소리가 요동치고 있었다. 왜냐하면 우리는 비행기 회사가 제공하는 snack 이란 과자 몇 봉지와 간단한 음료수 이외는 아무 것도 먹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샌프란시스코 공항을 향하여 새벽 4시에 출발한 프레스노 팀은 아침점심, 저녁 3끼를, 산호세 지역에 있는 사랑의장로교회는 2끼를 굶었기 때문이다. 여행사가 우리 손에 잡혀준 비행기 ticket에는 런치를 준다고 분명하게 적혀 있었기에 점심 준비를 하지 않고 비행기에 탑승했지만, 비행기에 오르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미국 내 이름 있는 비행기 회사가 경제불황에 겹쳐 기름 값 상승 그리고 이라크 전쟁으로 인한 테러 위험까지 겹쳐 파산하고 또 대폭적인 승무원 감축을 하면서도 적자 운항을 감수하고 있는 마당에 기내식(機內食)을 제공하기란 무리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탄 비행기 승객이 200명이 가까운 데도 단 3명의 승무원이 그 무거운 음료수 카즈를 밀고 좁은 기내 복도를 오가는 모습을 보면서 오히려 측은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그들의 얼굴에서 해고당하지 말아야 할텐데 하는 쓸쓸한 그림자 마저 엿보이기도 했다. 그리고 먹거리에 있어서는 손이 크고 풍부한 미국의 인심이 자꾸만 사라져 가고 있음을 보면서 <아, 옛날이여 ! > 라는 한국의 유행가 가사의 한 구절이 머리에 떠오르기도 했다.
우리는 2년 전 <콩쥐팥쥐> 공연 때 아침저녁으로 이용한 하와이 내의 한식점 중에서 제일 크고 24시간 영업하는 <서라벌> 이란 식당에서 늦은 저녁을 먹었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일부 단원들은 두 그릇의 밥그릇을 비우고 호텔로 돌아와 피곤한 몸을 베드에 던지고는 하와이의 첫 밤을 세웠다.
공연날인 18일(금요일) 아침, 단원들이 늦은 잠에서 깨어나 창 밖을 내다보았을 때, 호놀루루 시는 밤사이에 내린 비로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그리고 어제 공항에서 호텔로 오는 길에서 여려 차례 본 무지개가 저 멀리 Diamond Head 산봉우리 위에 떠 있었다. 그것도 한 줄기 무지개가 아닌 쌍무지개로 말이다. 이 아침의 쌍무지개를 바라 본 여자 단원 중 한 사람이 겳윱 우리 연극공연 성공할 것 같아요 ! 저렇게, 쌍무지개까지 떠 있잖아요 ! 라고 나에게 밝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공연시간 6시 30분 ! 무대연습 시작시간 2시 30분까지의 자유시간 동안 단원들은 하와이의 명소(名所)인 Hanauma Buy와, 와이키키 해변 등으로 뿔뿔이 흩어져 갔다. 와이키키 해변에 서서 발랄한 인어들이 바닷물에 몸을 담그고 또 해변에 넘쳐흐르는 일본인 관광객을 바라보는 우리 단원 일행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또 한편 지난 일 ! 그것도 입맛이 씁스름했던 추억을 되새겨 보았다. 그 입맛이 쓴 추억이란 지금으로부터 14년 전인 1991년 <효녀 심청> 하와이 공연 타협 차 이곳을 방문했을 때, 호텔 창 밖, 저 아래 와이키키 해변에서 뛰노는 젊은 인어들의 대열에 끼어 들고 싶어 호텔을 빠져나와 수영복을 빌려 들고 해변가로 나와 수영복을 갈아입다가 피아노 건반(鍵般) 같이 앙상한 내 가슴의 뼈를 만져보고는 수영복에 불 한 방울 묻히지 않고 그대로 되돌려 주고는 호텔로 되돌아와 침대에 벌렁 누워 버린 그 때의 입맛 쓴 추억 말이다. 그리고 2년 전인 지난 2003년 <콩쥐팥쥐> 공연의 사전답사 차 하와이를 방문했을 때, 시간을 내어 다시 이 와이키키 해변에 나와 Palm Tree 밑에 혼자 우두커니 앉아 있을 때, <나는 시집 안간 처녀>란 표시의 꽃을 오른 쪽 귓가에 꽂은 남태평양 태생인 듯한 아가씨가 나에게 조개 껍질 같이 반쯤 오므린 오른손을 폈다 오므렸다 손짓을 하기에 가까이 오라는 손짓인줄 알고 벌떡 일어나 그녀 가까이 다가 갈려는 순간, 그 아가씨가 야릇한 표정을 짓는 것을 보고는 아차 ! 그 손짓이 안녕 이라는 인사인 줄도 모르고 이 늙은 주책바가지가 그만 실수를 저지른 것이 무안하여 Palm Tree 밑에 털썩 주저앉고 만 실수가 다시 머리에 떠오르기도 했다.
우리 성극의 막은 2년 전 8월 9일 <콩쥐팥쥐> 막을 올렸던 맥킨리고등학교 강당에서 올라갔다. 그런데 막을 열고 보니, 우리 <콩쥐팥쥐> 때에 2,200명이 자리를 가득 메웠던 그 때와는 달리 객석이 많이 비어있었다. 주최측이 공연 날짜를 잡을 때 그 주(週)가 추수감사절 연휴이자, 교회마다 감사절 행사와 준비 때문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주간이란 것을 몰랐던 게 잘못이었다. 그리고 애초에 내가 주최측과의 공연 타협이 시작되었을 때 9월로 요청했지만, 하와이에서 여러 가지 행사가 겹쳐있어 하는 수 없이 11월로 밀리게 되었던 것이다.
연극 공연의 성과는 관중 수에 정비례한다는 관례를 비추어 보아 그 밤의 공연에 나는 큰 기대를 걸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날 아침에 호놀루루 상공에 뻗었던 쌍무지개의 좋은 예감도 물거품으로 깨지는 듯 했다. 그러나 연극이 진행되는 동안 많은 숫자의 관중은 아니었지만 여러 차례의 뜨거운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는 경연대회에서 검증 받은 우리 연극에다 여러 가지 미비한 점을 보완하고 연습한 결과였다. 공연이 끝난 후 주최측인 신 사장과 구경 온 목사님들이 겴肩린 좋은 성극을 더 많은 교인들이 관람했으면 좋았을 텐데 ..... 라는 말과 신 사장이 자기의 TV 방송을 통해 녹화한 이번 공연 전체를 기회 있을 때마다 방영(放映) 하겠다는 말은 그나마 우리를 고무시켜 주었다.
공연이 끝나고 호텔로 돌아가는 버스 속에서 나는 단원들에게 말했다. 겫廚 관중은 적었지만 여러분들이 관중 수에 개의치 않고 좋은 공연을 보여 주었다 는 말에 덧붙여 겵仄膚沮痔 공연 경험으로 비추어 볼 때 주최측이 꽤 많은 적자를 볼 것이다 ! 라고 말했다. 그러나 공연 다음 날 주최측은 상당 액수의 입장료와 디너 쇼 경비를 지불해가면서 우리 일행을 Polunatian culture Center로 우리를 데려갔다. 통가와 사모아 그리고 뉴질랜드 민속촌의 쇼와 불꽃놀이 공연에 이어 저녁에 시작되는 거대한 극장에서의 웅장하고 화려한 태평양 연안 민족의 민속춤 공연에 우리 단원 모두는 압도되고 있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밤 10시 30분쯤에 호텔로 돌아 왔다.
하와이에서의 3박 4일 일정의 마지막 날인 11월 20일 주일날 우리 일행은 주최자의 안내에 따라 추수감사절 예배를 모 교회에서 드리고 교회에서 마련한 푸짐한 점심으로 대접받고는 샌프란시스코로 돌아오기 위해 버스에 올랐다. 그런데 누군가가 “하루 더 있다 갔으면 좋겠다 !”라고 말하자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그러게 말이야 !”라는 동조의 소리가 터져 나왔다. 우리는 공항으로 떠나기 전에 버스 기사이자 안내자인 왕 기사의 팁은 물론, 주최측인 신 사장에게 선교방송사업에 보태 쓰라고 상당액수를 전달했다. 이러한 단원들의 선하고 갸륵한 마음은 그들이 바쁜 사업의 시간을 쪼개 가면서 성극공연을 통한 복음화운동을 위해 오랜 기간 연습에 몰두한 그 성의만큼의 헌신을 금전적인 헌금으로 실천한 일이라 아니 할 수 없겠다. 이러한 단원들의 착한 마음을 지켜보면서 내가 그들을 인솔하고 온 게 정말 잘한 짓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리 일행을 태운 비행기는 오후 3시 30분 호놀루루 공항을 이륙하고 있었다. 저녁 노을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진주만의 바다 물결이 물고기의 은 비늘 같이 반짝이고 있었다. aloha 하와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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