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현(칼럼니스트)
본국에서는 요즈음 기독교 지도자들이 계속해서 적극적 정치활동을 선언하거나 촉구하고 나서
고 있다. 두레마을 공동체로 알려진 김진홍 목사가 ‘뉴 라이트’를 선언하고 대회를 열더니
교계의 원로 지도자인 김준곤 목사도 최근 ‘기독교인은 마땅히 정치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야 한다’고 촉구하고 나섰다.
김준곤 목사는 한국 대학생선교회(CCC)를 설립해서 오늘날 영향력 있는 많은 교계 지도자를
양성했고 액스폴로 ‘74 대회 등 100만명이 모이는 대규모 집회를 개최하는 등 민족 복음화의
기치를 내걸었던 목회자이다.
김진홍 목사는 ‘새벽을 깨우리라’라는 그의 저서로 널리 알려진 대로 70년대 초 청계천 가에
빈민목회를 하기 위해 ‘활빈교회’를 설립했고, 이어 남양만 간척지에 빈민들을 집단 이주시
켜서 두레마을 공동체를 이끌어 왔던 대표적인 사회 참여 목회자이다. 그러던 그가 이번에는
우익을 손들어 주면서 ‘뉴 라이트’ 정치단체 대표를 나선 것은 정치적 보폭을 확장한 것이
다.
하기는 서울에서 제일 가난하던 사람들이 모여 살던 청계천을 도시 미화를 위해 복개하고 삼일
고가를 세웠던 시대는 가고 다시 그 콘크리트를 헐어내고 청계천을 시민공원으로 복원하는 등 세상도 변했으니 목회자의 역할도 좌에서 우로, 우에서 좌로 간들 탓할 것은 없다. 원래 목자란 양들의 안녕과 풀을 위해서 초원을 찾아 돌아다니는 유목민(the nomad) 아닌가?
김준곤 목사의 정치참여 선언도 신선하다. 김 목사의 정치 참여 촉구가 화제가 되는 것은 그가 평생동안 주장해 온 것과는 다른 전환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60년 초반 미국에서 CCC운동을 체험하고 한국에 소개한 김 목사의 신앙관은 그동안 철저하게 현실정치를 초월한 보수주의 입장이었다. 그가 70년대 초 학생들의 정치활동을 막기 위해서는 신앙운동이 필요하다고 역설해서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서울 정동에 회관 부지를 얻어낸 것은 유명한 일화이다.
그 이후 대학생 선교회는 신앙에서 정치를 배제해 왔었다. 운동권 학생들이 스크럼을 하고 화염병을 던질 때 ‘화해’와 ‘사랑’을 전하는 전도지를 교문 앞에서 돌렸었다.김 목사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독재 정부를 비호하고 남한의 인권 유린에 침묵하던 그 분이 웬일이냐고 말하지만 어차피 남들이 말할 때 침묵하는 것도 소극적 정치활동이요, 자신이 말하고 싶을 때 말하는 것도 정치적 소신인 것이다.그러나 김 목사가 목회자들은 직접 정치현장에 나설 필요는 없다고 한 것은 아직도 정치를 특정구역으로 제한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원래 성경에 나타나는 가장 이상적인 정치는 신정(神政)정치이다. 그런데 인간의 의지가 정교 분리를 주장해서 종교지도자를 현실로부터 소외시켰다. 고대와 중세의 역사는 신권과 왕권의 통합을 주장하는 측과 분리를 주장하는 측 간의 갈등의 연속이었다. 어느 쪽이 옳고 그르고는 판단할 수 없다. 꿩 잡는 게 매라면 정치란 누구나 올바른 목표만 있다면 참여할 수 있는 것이다.목회자나 종교인이라고 현실 정치에 훈수 두지 말라고 제한할 수 없다. 그런 면에서 어떠한 입장이든 이번에 종교지도자들의 적극적인 정치적 행보는 의미있는 일이다.
“목회자나 기독교인들은 누구도 정치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고 한기총 총무를 역임한 박영률 목사도 한국 교계의 새로운 연합체를 구상하면서 최근 기자회견에서 말했다. 그런데 문제는 견고한 보수주의들과 그보다 더 무지한 대중들의 의식 수준이다. 종교가 무슨 별나라 이야기라
고 생각하고 종교인은 정치에 참여하면 안된다는 선입관을 갖고 있는 것이다.
보수주의 신앙의 거두인 아브라함 카이퍼 목사도 일반목회를 하다가 하원의원을 거쳐 네덜란드 수상을 역임했다. 더 나아가 종교개혁자 칼빈은 스위스에 아예 신정국가를 세우고 통치했다. 미국의 민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도, 제시 잭슨도 목사다. 뉴욕의 17선 하원의원 찰스 랭글도 안수
받은 목사다. 한국 특유의 종교의 정치 불간섭 주장은 조선의 불교억압정책과 일제시대의 현실도피에 영향을 입은 바가 크다. 이제 성숙한 민주사회에서 그 편견을 바로잡아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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