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사는 한인들이 이해할 수 없는 것 중의 하나가 낙태에 대한 미국인들의 뜨거운 관심이다. 벌써 수십년째 선거철마다 한번도 빠지지 않고 이슈로 등장한다. 연방 대법원 판사 자리가 비어 새로 충원할 때마다 늘 제일 큰 시비 거리로 등장하는 것이 바로 낙태에 대해 그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낙태권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직접 이해관계가 걸려 있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이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낙태가 불법화된다 하더라도 개인적으로 아무런 득을 볼일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이미 임신된 이상 그것은 생명이며 이를 인위적으로 종식시키는 것은 살인”이라는 믿음 하나로 오늘도 끈질긴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한인들이 이해하기 힘든 미국인들의 특징 또 하나는 거짓말에 대한 태도다. 빌려온 책에 비를 맞혀 못쓰게 만든 후 주인에게 이를 사실대로 이야기한 ‘정직한 에이브’ 링컨이나 버찌 나무를 도끼로 자르고 추궁을 받자 자신이 그랬음을 실토하며 “나는 거짓말을 할 줄 모릅니다”라고 말했다는 워싱턴의 일화(역설적이지만 이는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작가의 각색임이 나중에 밝혀짐)를 어려서부터 배우면서 자란 탓인지 미국인들은 거짓말하는 사람을 매우 싫어한다.
탄핵 직전 사임한 닉슨과 연방하원에서 탄핵 당하고 상원에서 가까스로 유죄 평결을 면한 클린턴 모두 국가의 안위를 위협하는 중대한 범죄가 아니라 위증죄, 다시 말하면 거짓말 죄로 정치 생명에 치명상을 입었다.
요즘 한국에서는 난자 때문에 소란스럽다. 2002년과 2003년 황우석 박사 연구팀이 두 명의 연구원으로부터 난자를 제공받았으며 병원 당국자가 난자를 기증한 20여명의 여성들에게 돈을 준 사실이 밝혀지자 황 박사가 잘못을 시인하고 연구소장직에서 물러난 것이다.
연구원이라고 난자를 기증하지 말란 법도 없고 난자 기증자에게 보수를 지급하는 것도 당시에는 법적으로 금지돼 있지 않았다. 법을 어긴 것은 아니지만 윤리적으로는 문제가 있다. 연구원의 난자 기증을 허용할 경우 여성 연구원들은 유형 무형의 기증 압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원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커리어를 위해 난자를 ‘헌납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선진국에서 이를 금하고 있는 것도 이같은 취지에서다.
병원 당국자는 또 난자를 채취하는데 오랜 시간과 불편이 따르기 때문에 보수를 지급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를 허용할 경우 결국은 돈이 필요한 가난한 여성이 난자를 팔아 돈벌이하는 불행한 사태가 초래되리라는 것은 너무나 분명하다.
난자 취득 방법보다 더 심각한 것은 황 박사의 지금까지 발언이다. 황 박사가 처음 개가를 올렸을 때부터 세계 언론이 궁금해한 것은 미국 같이 큰 나라에서도 난자 구하기가 힘든데 한국에서는 어떻게 그처럼 풍부하게 난자를 마련했을까 하는 점이었다. 한국이 그처럼 큰 성과를 올릴 수 있었던 주요 요인으로 남달리 많은 난자 수가 지적됐다.
그러나 그 후 난자 취득과정에 문제가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황 박사는 연구원으로부터 제공받은 적도, 돈을 주고 구한 적도 없다고 잡아뗐다. 미국인 파트너인 제럴드 섀튼 박사가 취득과정의 윤리적 문제를 이유로 관계를 끊겠다고 밝힌 후에야 황 박사는 “연구에 전념하다 보니 윤리 문제에 대한 충분한 검토가 부족했다”고 털어놨다.
그동안 솔직하지 못했던 태도가 유감스럽기는 하지만 황 박사는 한국 같이 척박한 연구 환경에서 어렵게 일을 하다 보니 저지른 실수로 봐줄 만한 여지가 있다. 정말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난자제공 비리를 파헤친 언론에 대한 네티즌들의 태도다. 윤리적 과실을 지적한 보도를 놓고 “한국과 황우석 박사에 대한 질투에서 나온 외국인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악의적 매국행위”라느니 뭐니 하면서 진실을 밝힌 데 대한 칭찬은 고사하고 욕을 퍼붓기에 바쁘다. 여론에 눌린 광고주들은 이 프로에 대한 광고를 모두 끊었다 한다.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
한국이 선진국이 되려면 기술개발도 중요하지만 국민 모두가 좀 더 정직해져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난자가 생명체인가 아닌가, 생명체를 사고 파는 일이 옳은 일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도 좀 더 깊이 있게 생각해 봤으면 한다.
민 경 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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