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유명인이 된 후에 얻는 명성과 인기가 오히려 화를 불러 죄의 늪으로 깊이 빠질 수도 있다.
작년에는 예년에 비해 유난히 많은 인물이 우리 곁을 떠나갔다. 해가 바뀌어 이미 잊혀져 가고있는 이야기일지 모르나 歲末이 다가오면 이런 저런 생각들이 기억의 상자에서 살며시 나를 부르고 있다.
미국의 40대 대통령이었던 고 ‘로널드 레이건’이 작년 6월5일 93세로 유명을 달리한 것이 신문에 보도되자 미국시민들과 온 세계의 매스컴이 그의 일화와 생전에 남긴 업적들을 크게 다루며 추모의 열기 또한 대단했다. 떠난 자는 말이 없지만 생전에 뿌려놓은 씨앗은 어딘가에 떨어져 싹을 내고 꽃 피우며 삶 속으로 파고 들어와 한없이 번져나간다.
독자와 함께 나누고싶은 것은 레이건 대통령의 이야기보다 그의 死後 몇 일 간격을 두고 역사의 뒤 안으로 사라진 ‘레이 찰스’와 ‘말론 브랜도’ 두 남자에 대한 이야기이다.
흑인가수의 일인자이며 재즈와 솔(soul) 뮤직의 거인이었던 ‘레이 찰스’와 20세기 최고의 남성 배우 ‘말론 브랜도’ 이들 생의 한 단면을 들여다보며 유명인들의 화려함 뒤에 가려져 있는 조금은 슬픈 이야기를 한번쯤 생각해보고 싶은 때이다.
두 사람 모두 존경을 받을만한 일이나 후대에 남길 큰 업적은 찾아볼 수 없지만 가수로 또는 은막의 스타로서 일인자의 자리를 지켜온 것만은 사실이다. 7세에 녹내장으로 시력을 잃고 15세에 고아가 된 ‘레이’는 음악의 오스카로 불리는 그래미상을 13번이나 거머쥐었다. 노래를 부른다기보다 음악에 파묻혀 살아온 그는 천부적으로 음악의 혼과 영감을 부여받은 천재이자 귀재에 가까운 한 생을 마감했다.
‘브랜도’는 2번의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탔으며 8번이나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르는 행운을 차지하였으나 남다르게 권위와 관습에 대한 저항이 투철해 한번은 아카데미 시상식장에 불참한 적도 있었다. 타고난 엽기와 폭압적인 아버지에 대한 반항심이 그의 어린 시절을 애정결핍으로 몰고 갔고 그런 환경이 예술의 혼을 더욱 불태울 수 있는 자양분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생각해 보면 ‘레이’는’브랜도’보다 더 외롭고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셈이다.
그러나 ‘레이’의 인생여정은 육체적 장애에도 불구하고 행운의 여신이 늘 그의 편에 있었다. 2차례나 이혼의 고배를 마시며 한때 헤로인에 손을 대 잠시 요양소 생활을 거쳤지만 1987년에는 그래미에서 수여하는 평생공로상을 탔으며 죽기 일년 전까지 새 앨범을 낼 정도로 음악에 열정을 쏟았었다.
거장 ‘브랜도’는 대 스타의 자리에 오른 후에도 3명의 전 부인을 제외하고 가정부 등 수 많은 혼혈족 여인들과 애정행각으로 많은 시간을 보냈으며 종국에는 그의 장남이 아버지의 온건치 못한 사생활에 대한 복수심으로 이복동생의 애인을 죽이는 중범죄를 저질러 1급 살인범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자기 아버지에 대한 한이 얼마나 사무쳤으면 이복동생의 애인을 죽이기까지 했을까.
아무리 톱스타의 반열에 오른 그도 아들의 죄를 만회하기 위하여 재판으로 많은 재산을 날렸으며 빚더미에 오르게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사람은 유명인이 된 후에 얻는 명성과 인기가 오히려 화를 불러 죄의 늪으로 깊이 빠질 수도 있다. 모든 인생은 한 편의 드라마이다.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서 단편으로 또는 대하드라마로 자자손손 남을 수도 있는데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작품은 후속편이나 리바이블이 가능하지만 나의 이야기는 한 번밖에 쓸 수가 없는 놀이이다. 관객과 어울려 춤추며 감흥에 젖어보지만 끝나면 뿔뿔이 흩어지는 앵콜 없는 마당놀이와 같이.
인기도가 높은 작가일수록 처음에 의도한대로 스토리의 방향을 종결 지을 때가 거의 없다고 한다. 사람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인물이나 배역에 자신을 결부시킬 때가 참 많이 있는데 주인공이 너무 비참해 진다던가 악인이 승승장구하는 것을 보면 견디지 못하는 본능이 있다. 의분이 강해 즉시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은 작가나 프로듀서에게 전화로 부탁 아닌 협박까지 한다는 웃지 못 할 뒷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만들어진 작품 하나에도 이렇게 목숨 걸고 지켜보는데 내 자신의 스토리는 어떻게 써 나가야 될까...... 뒤엉킨 무명실 타래와 같이 쉽사리 안 풀릴 때도 있지만 명주실 가닥 풀리듯 솔솔 잘 풀려나갈 때도 있는 것이 살아가는 멋이 아니겠는가!
유산 쟁탈전으로 분쟁을 일삼고 있는 자녀들을 남겨놓고 저 세상으로 훌쩍 가버린 브랜도, 말년의 모습보다 그의 전성기 작품 ‘워터후론트’에서 보여준 의협심에 불타는 연기와 눈동자가 아직 기억의 상자 속에 아련히 남아있는 계절 “I Can’t Stop Loving You”의 애절한 음률이 시간의 여백을 채워 줄 수만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꿈꾸어보며 저무는 해에 아-듀를 보낸다.
유지애
약 력
문예운동으로 등단
재미수필문학가협회·미주 시문학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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