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7년 버지니아에서 세워진 제임스타운은 영국이 신대륙에 건설한 식민지 가운데 살아남은 첫 마을이다. 그러나 처음 이 곳에 발을 디딘 이민자들이 겪은 고통은 혹독했다. 영국을 떠난 144명 중 무사히 이 곳에 도착한 사람은 104명에 불과했다. 이 가운데 40명이 첫해 겨울을 넘기지 못하고 숨을 거뒀다. ‘굶주림의 시대’로 불리는 1609~1610년 겨울에는 식량이 떨어지자 뱀과 개구리는 물론 시체를 파먹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들의 굶주림은 인디언의 도움과 구조선의 도착으로 해결됐지만 망해 가던 식민타운을 장기적으로 살린 것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인디언으로부터 담배재배 기술을 배운 것이다. 버지니아의 기후는 당시 유럽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던 담배재배에 딱 맞았다. 또 하나는 사유재산의 인정이다. 초기 제임스타운 내 모든 재산은 식민지주회사 소유였다. ‘게으른 자는 사형에 처한다’는 엄격한 법 아래서도 이 체제하에서는 아무도 열심히 일하려 하지 않았다. 한 목격자는 “사람들이 하루면 끝낼 수 있는 일을 일주일이 지나도 마치지 않는다”고 개탄했다.
이 상태로는 식민지가 유지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린 토마스 데일 주지사는 사유재산을 인정하고 자신이 일해 거둔 수확은 자신이 가질 수 있도록 했다. 이 때부터 전에는 툭하면 아프다는 핑계로 일에서 빠지던 사람들이 날이면 날마다 밭에 나와 농작물을 돌봤다. 사유 재산제가 실시된 후 거둔 1619년의 수확은 유달리 풍성했고 사람들은 신에 대한 감사를 표시했다. 아더 슐레진저를 비롯한 일부 역사가들은 이것이 신대륙에서 유럽인이 지낸 첫 번째 추수감사 행사로 보고 있다.
전통적으로 추수감사절의 발원지로 여겨지는 매서추세츠 플리머스에서도 사정은 비슷했다. 메이플라워를 타고 이 곳에 온 이민자들은 마르크스보다 200년 먼저 ‘능력에 따라 일하고 필요에 따라 나눠 갖는’ 사회를 꿈꿨다. 그러나 역시 사람들은 열심히 일하려 하지 않았다. 특히 모든 남성들을 위해 밥을 하고 빨래를 해야 했던 아내와 그 남편들의 불만은 컸다. 이 제도는 결국 오래가지 못하고 사유재산제로 돌아갔다. 결과는 풍성함이었다.
그 후에도 신대륙에서 ‘신사회’를 건설하려는 몽상가들의 노력은 그치지 않았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영국인 로버트 오웬이 인디애나 뉴 라나크에 세우려던 ‘뉴 하모니’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으로 종업원 복지에 신경을 썼으면서도 성공적으로 기업을 이끌어 널리 존경받던 오웬은 신대륙에 유토피아를 만들겠다는 꿈을 품고 대서양을 건너왔다. 1825년 3월 그가 워싱턴 의사당에서 행한 연설에는 연방 상하원 의원과 대통령, 대법원 판사 등 정계의 주요 인사들이 모두 그의 고견을 들으러 왔다.
그러나 이처럼 큰 기대를 품고 시작한 ‘뉴 하모니’는 불협화음만 남긴 채 불과 2년을 넘기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막 노동자와 똑같은 월급을 주는데 불만을 품고 숙련공들이 모두 떠난 데다 갈 곳 없는 무능력자들만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오웬이 공장을 운영하며 번 돈을 아무리 쏟아 부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결국 오웬은 ‘뉴 하모니’를 포기했다. 그 후에도 넓디넓은 미국에서 ‘원시 공산사회’를 만들려는 시도가 수없이 반복됐지만 단 하나도 성공하지 못했다. “미국은 유토피아의 무덤”이란 말은 그래서 나왔다.
1970년대 말 세계에서 가장 넓은 나라 소련과 가장 인구가 많은 중국은 공산 체제하에 있었다. 인도지나 반도는 공산화됐고 제3세계는 사회주의 노선이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동유럽은 말할 것도 없고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도 공산당의 위력은 대단했다. 주요 세계 각국 중 공산주의나 사회주의 운동이 발을 붙이지 못한 나라는 미국뿐이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 미국이 결국 한 때는 대세처럼 보이던 ‘진보’의 물결을 이겨내고 세계를 미국식 자본주의 체제로 개편했다. 유토피아 실패에 관한 역사적 경험이 이와 무관하지 않으리라. 그 결과 미국은 전세계 ‘진보적 지식인’들의 영원한 증오를 사고 있지만 인류는 숱한 문제점에도 불구, 역사상 어느 때보다 풍요로운 시대에 살고 있다. 추수감사절을 맞아 미국의 의미를 되새겨 보자.
민 경 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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