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I국제영화제서 관객상을 공동수상한 남아공 영화 ‘초치’는 범죄자 청년의 자기구원의 드라마다.
AFI 결산
관객상 받은 ‘초치’등 눈길 끌어
미영화학회(AFI)가 주최한 2005년도 국제영화제(3~13일)에는 세계 44개국에서 총 127편의 장·단편 영화들이 출품됐지만 영화의 질은 작년만 못했다. ‘이거다’하는 영화를 찾아보기 힘든 대부분 무난한 영화들의 제전이었다는 것이 참가자들의 중론이었다.
그런 중에서도 심사위원 대상을 받은 노르웨이의 ‘겨울 키스’(Kissed by Winter)는 매우 깔끔하고 감정적인 심리 드라마였다.
어린 아들을 잃고 비탄에 젖은 채 눈 덮인 노르웨이의 벽촌에 온 여의사의 마음의 행적을 그린 영화로 살인 미스터리의 틀을 하고 있다. 노르웨이의 2005년도 오스카 외국어 영화상 후보 출품작.
이번 영화제서 관객상은 캐나다의 ‘C.R.A.Z.Y’와 남아공의 ‘초치’(Tsotsi)가 함께 받았다. 둘 다 2005년도 오스카 외국어 영화상 후보 출품작이다. ‘C.R.A.Z.Y’는 크리스마스 때 태어난 다섯 아들 중 4남인 잭과 그의 가족들의 20년에 걸친 우습고 가슴 아픈 드라마로 팻시 클라인의 히트 컨트리 송들이 많이 나온다.
‘초치’는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의 흑인들의 게토에 사는 범죄자 청년이 카재킹한 차에 실린 아기를 키우면서 인간성을 회복하는 감동적인 드라마다. 다소 신파조이긴 하나 주연 프레슬리 체웨네야가웨의 심오한 연기와 남아공 빈민 흑인들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수작이다. 이 영화는 올해 토론토 영화제서도 관객상을 받았다.
한국 영화로는 김혜수가 나오는 공포영화 ‘분홍신’(The Red Shoes)이 출품됐다. 그러나 김용균이 감독한 이 영화는 일본 영화 ‘검은 물’(Dark Water)의 상당부분을 도용했는데 영국의 마이클 파웰이 감독한 동명의 발레영화에서도 아이디어를 얻어온 것 같다.
내가 본 23편의 영화 중 매우 특이한 것이 지이 장이 나오는 일본 영화 ‘너구리 공주’(Princess Racoon). 82세의 세이준 수주키가 감독한 이 영화는 일본의 전통미술과 카부키, 노와 오페라 그리고 랩과 탭댄스와 로큰롤 및 옛 할리웃 뮤지컬을 마구 혼성한 상상력 뛰어난 뮤지컬이다. 보지 않고서는 믿을 수 없는 별종영화다.
그리고 1942년 브라질 벽지를 떠도는 독일 남자와 브라질 남자의 우정과 생의 발견을 그린 브라질 영화 ‘시네마, 아스피린 그리고 콘도르’(Cinema, Aspirin and Vultures)도 인상적인 로드무비였다.
영화제에는 2005년도 외국어 영화상 후보작으로 출품한 10편이 상영됐다. 각국에서 엄선한 영화여서 수준급이었다. 그 중에서도 제1차대전시 실화를 그린 프랑스 영화 ‘메리 크리스마스’와 3편의 아동 이야기를 모은 멕시코 영화 ‘저편에’(On the Other Side) 및 이스라엘 내 불체자들의 각박한 삶을 다른 ‘멋진 곳’(What a Wonderful Place)이 눈에 띄었다.
폐막일에 본 오스트리아 감독 미하엘 하네케가 만든 프랑스어 영화 ‘숨겨진’(Hidden)은 죄의식을 다룬 철학적 서스펜스 스릴러이자 가족 드라마. 다니엘 오퇴유와 쥘리엣 비노쉬가 나오는데 대단히 상징적인 작품으로 하네케는 지난 칸영화제에서 이 영화로 감독상을 받았다.
몸파는 여자였던 아내를 일편단심 사랑하는 노총각의 순애보 ‘너는 내운명’. 전도연과 황정민.
AFM 결산
한국영화, 일서 입도선매까지
지난 2~9일 샌타모니카에서 열린 제26회 미영화시장(AFM)에는 전세계에서 413개의 판매회사가 참석해 62개국 583명의 구매자를 위해 총 534편의 영화를 시사했다. 판매회사나 시사된 영화들의 숫자는 전년비 증가했지만 매매 실적은 매우 저조했다는 것이 참석한 사람들의 견해다. 한국 영화사 쇼이스트의 해외작업팀 대리인 추소연씨는 “이번 시장은 공급이 수요를 압도했으며 전반적으로 경기가 안 좋은 현상을 보였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매매 불황의 이유로 전세계적으로 영화시장이 너무 많다는 것을 들고 있다. 기존 토론토, 베를린, 칸 외에도 새로 부산과 도쿄와 홍콩 등지에서도 시장이 서 구매자들은 어느 한 시장에만 매달리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해부터 AFM은 9월의 토론토와 2월의 베를린 영화제 사이에서 열려 원매자들이 피해 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따라서 이번 시장에 나온 영화의 질도 안 좋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평.
그런 중에서도 이번 AFM에서는 아시아 영화들은 비교적 호황을 누렸다. 일본의 가가 커뮤니케이션은 중국 영화 ‘잔치’(Banquet)를 300만~500만달러에 샀다. 특히 인기 영화와 TV 배우들이 나오는 한국 영화들은 일본에서 입도선매까지 했다. 그러나 한국 영화로 미국 배급사에 팔린 것은 ‘분홍신’(The Red Shoes) 하나. 아시아 공포 영화 전문 배급업체인 타탄(Tartan)에 팔렸다.
이번 시장에 출품한 한국 영화사들은 CJ 엔터테인먼트와 쇼박스 등 모두 9개. 이들은 ‘형사’ ‘목소리’ ‘웰컴 투 동막골’ ‘미녀와 야수’ ‘박수칠 때 떠나라’ ‘가발’ ‘새드 무비’ 및 ‘태풍 태양’등 수십편의 영화를 내놓았었다.
나는 같은 기간에 열린 AFI 영화제와의 스케줄이 겹쳐 4편의 한국 영화밖에 못 봤다. 문소리가 좋아서 본 박흥식 감독의 ‘사랑해 말순씨’(Bravo, My Life)는 박정희 암살 직후 어머니와 어린 여동생과 함께 사는 중학생 아들의 성장기. 향수감 짙은 영화로 문소리의 영화라기보다 아들역의 이재응의 영화다. ‘이대로 죽을 순 없다’(Short Time-이영은 감독)는 형사 코미디 액션물. 뇌암에 걸려 3개월 시한부 생명을 선언 받은 부패형사(이범수)가 어린 딸을 위해 거액의 생명보험에 든 뒤 온갖 위험한 작전에 뛰어드나 번번이 살아남는다는 황당한 얘기.
최근 한국서 개봉된 ‘오로라 공주’(Princess Aurora)는 배우 출신 방은진의 감독 데뷔작. 문성근과 엄정화가 주연하는 엽기 연쇄살인사건을 다룬 얘기로 외화내빈의 영화다. 일찌감치 범인이 밝혀져 맥이 빠진다.
가장 마음에 든 것이 눈물을 줄줄 흘리며 본 신파 중의 신파인 ‘너는 내 운명’(You Are My Sunshine). 한국에서도 빅히트를 한 이 영화는 박진표가 감독하고 전도연과 황정민이 주연한 실화를 바탕으로 한 남자의 순애보이다. 시골 다방에서 차도 팔고 몸도 파는 HIV 보균자 은하를 아내로 맞아들인 노총각 석정의 파란만장한 인생역정을 그렸는데 지독한 신파지만 잘 만들었다. 특히 황소 같은 체구를 한 황정민의 열연이 훌륭했다.
<박흥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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