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스키는 서유럽 각지에 흩어져 살고 있던 켈트족이 발명한 것으로 돼 있다. 위스키라는 단어 자체도 ‘생명의 물’이란 뜻의 켈트어 ‘위스게 베아타’에서 왔다. 이 위스키를 예술의 수준으로 발전시킨 것은 켈트족의 후예인 스코틀랜드 사람들이다. 지금도 ‘스카치’ 하면 위스키의 대명사로 쓰인다.
이처럼 술을 좋아하고 양조에 천부적인 재능을 갖고 있는 스코틀랜드인들이지만 포도주는 만들지 않는다. 토종 스코틀랜드 출신으로 프랑스에도 오래 기거한 애덤 스미스는 어째서 프랑스 인들은 와인을 즐기고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위스키를 마시는가에 관해 깊은 연구를 한 끝에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스코틀랜드 사람들이 위스키를 전문으로 만들게 된 것은 선천적으로 이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위스키의 원료인 보리와 밀, 맑은 물이 풍부한 토양을 갖고 있기 때문이며 스코틀랜드의 춥고 습한 기후가 포도를 기르기에는 적합치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프랑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는 ‘국부론’에서 “유리와 온실을 사용하면 스코틀랜드에서도 좋은 포도를 재배하고 훌륭한 포도주도 생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려면 외국에서 이를 수입하는 것보다 30배나 많은 비용이 든다. 스코틀랜드에서 포도주 생산을 장려하기 위해 모든 외국 와인의 수입을 금하는 것이 합리적인 법일까”하고 반문했다. 그의 ‘국부론’은 자유 무역을 봉쇄해 독점 이윤을 챙기려는 상인과 관료들에 대한 비판이다. 다행히 영국은 그의 주장을 받아들여 유럽 변방의 이름 없는 빈국에서 ‘해가 지지 않는 나라’를 건설한 강국으로 부상했다.
영국 못지 않게 자유무역의 혜택을 본 나라가 동아시아에도 하나 있다. 6.25 직후 전 세계 최빈국에서 불과 50여년 뒤 세계 제12위의 경제 교역국으로 자라난 대한민국이다. 변변한 자원도 없고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가 이처럼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전국민이 수출에 총력을 기울였고 그렇게 해서 만든 제품을 받아준 외국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 사실만 놓고 보면 전국 방방곡곡에 ‘자유무역 감사비’를 세우고 초중고등학교에 자유무역의 우수성에 대한 과목을 신설하는 것이 마땅할 것 같은데 현실은 영 딴판이다.
지난 주말부터 부산에서 열리고 있는 APEC(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 대회 개막을 맞아 전교조에서는 온갖 욕설로 가득 찬 APEC 반대 비디오를 ‘APEC 바로 알기’ 공동수업 자료로 쓰고 있다. 지역 내 국가의 지속적 경제 성장을 목적으로 1989년 호주에서 발족한 APEC은 전 세계 GDP의 약 57%, 교역량의 약 46%를 점유하는 세계 최대의 지역협력체로 우리 나라를 포함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총 21개국이 가입해 있다. 이들 가운데 당장 무역이 중단될 경우 극심한 곤란에 빠질 나라는 한국뿐이다. 그런 나라에서 소위 꿈나무들을 가르친다는 교사들이 이처럼 어처구니없는 주장을 하는데 아연할 수밖에 없다.
APEC 의장국으로 이번 대회를 주재하는 한국의 노무현 대통령은 대회를 앞두고 “무역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면 할수록 사회적 격차는 더 벌어지고 가난한 사람들은 시장에서 배제되는 경향이 있다”라고 엉뚱한 이야기를 하는가 하면 한나라 당은 쌀 개방 협상 국회 비준을 늦추는 문제를 놓고 오락가락 하는 추태를 보이고 있다. 농민들의 반대로 쌀 시장 문을 굳건히 닫아걸고 있는 한국 국민들은 국제 시세보다 5배나 비싼 값을 주고 쌀을 사먹고 있다. 이로 인해 가장 큰 피해를 보고 있는 사람들은 부자나 기업이 아니라 서민과 저소득 노동자들이다.
전교조와 농민, 한류가 세계 각국으로 퍼져 나가는데 대해서는 자랑스럽게 떠들면서도 외국 영화 수입 쿼타를 늘리는데는 결사 반대하는 연예인들에 이르기까지 지금 한국은 100여년 전 척화비를 세우고 쇄국정책을 폈던 대원군의 후예들로 가득 차 있다. 욕설과 화염병을 앞세우며 자유무역 반대에 열을 올리기에 앞서 대원군의 정책이 한국민들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곰곰이 되돌아보기 바란다.
민 경 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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