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 교외의 한 농가에서 이탈리아의 첫날밤을 보낸 우리 일행은 다음날 아침 쨍하는 공기와 전원경치에 빠져 다섯 명 모두 한껏 로맨틱한 기분에 들떠 우리의 목적지 코토나를 향해 느긋이 차를 몰아갔다.
그레베 마을에 서는 주말시장을 찾아 온갖 치즈와 빵과 고기 굽는 냄새에 끌려 눈앞에 보이는 대로 이것저것 사다가 문득 정신을 차리니 우리는 아직 시장의 초입에 있었다. 통통한 포도 알이 주렁주렁 달린 탐스런 포도송이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사서 얼른 한 알을 입에 넣어보니, 와, 포도가 이렇게 달콤한 과일인지 이제껏 모르고 살았구나 싶었다.
백년 이상 되었다는 한 소시지 가게에는 전혀 듣지도 보지도 못한 온갖 고기류를 형형색색 굽고 말려 천장과 벽에 매달아 놓았는데 미국 수퍼마켓의 냉장고에 질서 있게 진열된 살라미와 런천미트들을 떠올리며 그것들이 형편없이 초라한 것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안 할 수 없었다.
키안티 와인의 원조라는 한 와이너리에 들러 와인을 두 병 사서 피크닉을 벌였는데 눈앞에 펼쳐진 기막힌 터스카니 지방의 경치를 우리 일행끼리 독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에 약간 미안한 마음이 들면서도 너무 흡족했다.
드디어 산꼭대기 성벽 안의 도시 코토나에 도착, 주룩주룩 내리기 시작한 빗방울을 뚫고 우리가 빌린 아파트에 들어섰는데 아무렇게나 생긴 대로 돌과 나무를 섞어 지은 듯한 투박한 건물에 묘한 맛과 친근감이 금새 느껴졌고, 좁은 계단을 굽이굽이 올라 지붕에 연결된 베란다에서 내려다보이는 탁 트인 경치는 우리 모두를 황홀하게 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아파트 안에는 전화도 없고 인터넷 연결도 되지 않았는데 어쩐지 묘한 해방감이 느껴졌다.
그 해방감을 만끽한지 사흘쯤 되니 모두들 약간씩 불안한 느낌이 드는 눈치였다. 아무리 휴가 여행이라지만 전화도 인터넷도 없이 리빙룸에 달랑 놓인 손바닥만한 텔리비전 하나가 바깥 세상과의 유일한 연결선인 셈인데, 모든 채널은 이탈리아어로 나올 뿐이었다.
제일 먼저 인터넷 카페를 찾아낸 사람은 가족으로부터 특별 휴가를 받아 우리 일행에 단신 합류한 Y였다. 그녀가 알아낸 정보에 의해 오후 2시에 문을 연다는 인터넷 카페에 점심 후 몰려가 이메일들을 확인하고 나서야 다들 안정감을 찾는 듯 보였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팩스 없는 세상에서 어떻게 살았었는지 하면서 팩스를 최고의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의지했었는데, 요즘은 이메일 없는 세상을 도저히 살아낼 자신이 없는 상황이 되었다.
일단 급한 이메일 중독증을 충족시키고 나자 우리는 모두 각자 가져간 노트북 컴퓨터를 직접 인터넷에 연결해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기 시작했는데 마을의 한 문구점에서 이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확인, 노트북을 연결해 이메일을 다운로드 받는 순간 드디어 만사가 형통된 느낌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문구점 주인의 눈총이 느껴져 무슨 일인가 했더니 오후 1시부터 시에스타가 시작, 가게문을 닫고 집에 가고 싶은데 우리가 버티고 있으니 불행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이었다. 시에스타를 모르고 사는 미국이나 한국 사람들이 불행한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스치고 지나가는 순간이었다.
인터넷이고 뭐고, 현대 테크놀러지에는 큰 신경 안 쓰고 사는 듯한 터스카니 지방 사람들이었지만 기실 앞에 열거한 모든 여행 일정들은 인터넷을 통해 얻은 정보에 의해 짜여진 것이었으니, 터스카니는 인터넷의 영향을 엄청 받고 있는 셈이었다.
인터넷의 가장 좋은 점은 더 넓은 세계와의 연결을 손끝에서 가능하게 해준다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인터넷의 세계에 전혀 관심이 없거나, 관심은 있지만 용기가 안 나는 사람들에게 꼭 말해주고 싶다. 알고 보면 별로 힘들 것도 없는 것이 인터넷 사용이며, 몰라도 살 수 있지만 알면 삶이 훨씬 풍부해질 수 있으니 겁내지 말고 인터넷의 바다로 뛰어들어 보시라고.
김유경
campwww.com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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