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와인 컬렉터 현대화랑 김학용씨
‘로마네 콩티’‘무통 로쉴드’등 희귀 와인 포함 500여종 소장
전문가 김행오씨와 친분 ‘윌셔 와인클럽’10년전 시작
25년 화랑 운영…영화·음반 제작자로도 할리웃에 입성
현대화랑 김학용(53)씨는 조금 특이한 사람이다.
한인타운에서 ‘돈 안되는’ 화랑을 25년이나 지켜온 것만 보아도 범상치 않은데, 5년 전부터는 영화와 음악에 손을 대기 시작, 할리웃에서 제법 활동하는 익제큐티브 프로듀서(executive producer)로 이름을 올렸다. ‘포커스 픽처스’라는 영화사를 차린 후 리 메이저스(6백만불의 사나이) 주연 영화 ‘페이트’(Fate)로 돈을 조금 벌더니, 최근 나온 ‘인톡시케이팅’(Intoxicating)이 박스오피스 81위, 30개국에 팔리면서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4년전 음반을 제작해준 불가리아의 팝페라 가수 크라시미르(Krassimir)가 요즘 할리웃에서 뜨면서 대박이 터질 조짐을 보이고 있어, 그의 입은 영영 다물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크라시미르는 오늘(11월9일) 저녁 개최되는 제15회 LA뮤직 어워드에서 ‘올해의 수퍼스타’로서 직접 공연한다.
그러나 그가 오늘 이 지면에 등장하게된 이유는 화랑이나 영화, 음악 때문이 아니라 당연히 와인 때문이다. 지난 10년간 ‘윌셔 와인클럽’을 이끌어온 김학용씨는 매우 진지한 와인애호가이며 와인수집가로서, 우리같은 사람은 평소 구경도 하기 힘든 희귀 와인을 상당수 소장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귀한 와인으로 취급되는 ‘로마네 콩티’(Romanee-Conti)를 두병(1929, 1969년산)이나 갖고 있으며 61년산 샹볼 무지니(Chambolle Musigny), 66년산 라스콩브(Lascombes), 무통 로쉴드(Mouton Rothschilde 78년, 89년), 오퍼스 원(86년, 95년), 샤토 지스쿠르(Chateau Giscours, 64년산)를 비롯해 500여종의 와인을 소장하고 있다.
가격으로 치면 시가로 계산할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로마네 콩티 1929년 산은 부르는게 값이라 1만달러 정도를 호가하고 1969년 산도 최소 5,000달러는 한다니 그의 와인 셀라가 얼마나 큰 재산인지 짐작할 수 있겠다. 그가 이처럼 희귀한 와인들을 모을 수 있었던 이유는 경매 라이선스를 갖고 있기 때문. 화랑 업무차 그림 경매의 경험이 많은 김씨는 와인에 관심을 갖게되면서부터 와인 경매도 그림 못지 않게 재미있다는 사실을 발견, 소더비, 크리스티, 재키스 등 유명한 경매장을 쫓아다니며 하나둘 모으기 시작한 것이 오늘에 이른 것이다.
“와인은 절대 거짓말 안 합니다. 보관 상태가 문제이긴 하지만 믿을만한 경매를 통해 나온 와인은 품질이 보장된다고 봐도 좋지요. 와인은 갖고 있으면 계속 값이 오르기 때문에 투자로 보아도 절대 손해 보지 않는 품목입니다”
그러나 아무나 와인 경매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와인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정확한 시세를 알아야 하는 것은 기본이고 “15~30초 사이에 하나씩 팔려나가는 스피디한 경매장에서 순간적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동물적 감각과 순발력이 있어야 한다”고 김씨는 말한다.
김학용씨가 와인과 인연을 맺게된 것은 와인전문가 김행오씨(푸드섹션 7월20일자 소개)와의 친분에서 비롯됐다. 평소 김행오 선생의 다양한 지식과 경험, 인품을 존경해온 그는 95년 김선생을 강사로 청해 첫 와인 클래스를 열었다. 그때부터 매달 한번씩 이어져온 윌셔 와인클럽은 그동안 포도주로만 세계일주를 두번 반 돌았다. 미국산부터 시작해 프랑스, 이태리, 기타 유럽, 칠레, 호주, 남아공 등 전세계 와인들을 고루 맛보는데 걸리는 시간이 4년, 그렇게 두번을 끝내고 지금은 세 번째 이태리 와인을 시음하는 중이란다.
“처음엔 저도 초보였죠. 그러나 선생님 교재에 맞춰 와인 구입하는 일을 제가 도맡아 했는데 한번에 10~15병씩 준비하려면 와인샵을 몇군데씩 다녀야했습니다. 그 일을 꼬박 10년 했다고 생각해보세요. 확실한 현장체험 덕분에 지금은 와인 가격과 시세가 훤합니다”
자신의 와인 셀라에서 그가 가장 좋아하는 컬렉션은 화상답게 보르도산 무통 로실드. 매년 와인병 레이블에 당대 최고 화가들의 그림을 집어넣는 무통 로실드는 현재도 여러병 갖고 있지만 1945년산을 한병 사는 것이 그의 간절한 꿈이다.
“원래 전쟁이 발발한 해에는 최악의 와인이, 종전된 해에는 최고의 와인이 생산된다고들 합니다. 와인은 신이 인간에게 내리는 선물이라, 전쟁을 싫어하는 하나님이 마음이 들어있기 때문이라죠. 1945년 무통 로쉴드 레이블에는 그림이 없이 V자만 써 있습니다”
김학용씨의 본업은 무엇일까? 와인 컬렉터? 영화 제작자? 음반 제작자? 갤러리 소유주?
“나의 본업은 예나 지금이나 화랑입니다. 그거 하려고 25년전에 달랑 그림 100장 들고 이민 왔는걸요. 영화나 와인은 취미입니다. 그런데 정말 좋은 것은 이 모든 일이 서로 다 연관되어 촉매제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와인이 생활화되어 있는 유럽의 화가들, 아트 갤러리를 높이 평가하는 할리웃 영화인들, 이들과 자연스럽게 와인과 그림 이야기를 하다보면 쌓인 내공이 어느 정도인 줄 금방 알기 때문에 금방 친해져서 비즈니스에도 도움이 되니까요”
같은 연도의 와인이라도 보관에 따라 레이블 상태가 이렇게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1964년 보르도산 샤토 지스쿠르.
<정숙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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