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명훈(재활의학 전문의)
지난 11월 2일, 영국을 비롯한 EU 25개국은 북한의 인권문제에 관한 의결을 유엔총회에 사상 처음으로 상정했다. 과거에는 유엔 인권위원회의 의제로 상정되었지만 한국정부는 표결에 불참하거나 기권하던 중 미국은 북한 인권법을 발효시켰는데 한국의 30여명 국회의원(대부분 열우
당 소속)들은 이를 규탄한 바 있다.강철환의 수기 ‘수용소의 노래’는 영역판인 ‘평양의 어항’으로 2002년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올해의 책 베스트 100’에 올라 있으며 일반인의 관심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보다는 미국 정가에서 의외로 주목의 대상이 되어온 이유는 정치적인 측면보다 인간의 속성이 얼마나 잔인하고 냉혹한 것인가를, 그리고 인간 존엄성이 절대절명의 위기를 맞고 있음을 증언하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살아나올 수 있는 인간 생명력의 끈질기고 강인함과 그 용기를 높이 평가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사람들은 동정과 연민의 정을 넘어서 분노하며 한반도에서의 또 다른 하나의 홀로코스트를 염려하기 때문이다.
할아버지의 민족반역죄(?)를 3대 일가족이 뒤집어쓰고 할아버지는 행방불명, 어머니와는 강제 생이별을 당하여 함경남도 어느 산간벽지의 정치집단수용소에 감금되어(12~22세), 만 10년(1977~ 1987)동안 등골이 휘고 피를 말리는 생활(?)속에서, 살아야 한다는 의지보다는 본인들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인해 개만도 못한 죽음을 당할 수 없다는 의식이 살아남을 수 있는 동기가 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죽음으로 내몰리는 행진인 줄 알면서도 한 줌의 땀과 마지막 남은 한 방울의 피를 바쳐야만 했고,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는 말은 육체적인 사치일 뿐, 숨을 죽이고 신체를 약탈자의 입맛에 맞추어 놓아야만 했다. 죽게되면 동무(?)수용소인과 그 감시자들이 늘 다니는 길바닥에 매장되어 소위 ‘평토를 당해야 했다’ 즉 땅과 평등하게 되다 혹은 지하에서 흙과 평준화 되다(필자 해석), 어차피 흙으로 돌아가 흔적도 없어야 할 반동분자의 운명을 자손 3대까지 뒤집어 쓴 채로 말이다.북한정권 수립 이후 북한 정치집단수용소에서는 추산 20만명에서 30만명의 무고한 우리 한민족
이 북한의 산악지대, 원시림 속에서 이 시간에도 인간의 인내를 초월하는 육체적, 정신적 형벌에 죽지 못해 허우적거리고 있다. 왜? 그들은 ‘우리는 하나’의 우리가 아니라 반동분자이거나 그 반동의 유전인자(?)를 소유하기 때문일 것이다.
‘한 사람은 만인 위에, 만인은 한 사람을 위해’ 우상화 된 공산독재정권 아래서 반동의 딱지가 붙은 사람은 보수적, 혹은 진보주의적 사고와는 상관 없이 자유를 갈망하는 민주운동(투쟁)을 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DJ정권 이후 한국사람들에게는 ‘우리는 하나’ ‘평화로운 한반도 통일을 원한다’ 이 두 말에는 토를 달면 아니된다. 얼마나 우리 민족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말들인가? 우리가 하나되기 위해서 또 통일을 위해서 진정 무엇을 해왔는지 늦기는 했지만 돌아볼 필요가 있다. 최악의 사태, 전쟁을 피하기 위하여, 혹은 이북 정권이 급작스럽게 붕괴하여 북한주민이
대거 남쪽으로 내려온다면 한국은 이를 감당할 수 없어 동반 추락할 것인 즉, 이를 피하기 위하여 아니면 군사 테러가 두려워서인지 국민의 공감대 형성도 없이 불법 혹은 합법적으로 북한의 주민이 아니라 정권을 지원해 왔는데, 지나고 보면 한반도에서 전쟁의 가능성은 없었다.
왜냐하면 북한에서는 약 200만이 아사되었고 또 다른 200만이 영양실조와 아사 직전이므로 전쟁수행 능력이 없다는 것 보다는 미국과 북한이 전쟁을 하면 북한을 지원하겠다는 한국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고 또 한번의 남침을 자행하는 바보는 없을 것이다.미국은 북한에서 실리(석유)도 없고 남한에서는 환영도 못 받는 마당에 누구를 위한 전쟁을 할
것인가, 지켜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를 심사숙고할 것이다. 그러나 북한의 내부적인 정변으로 인한 정권 붕괴는 거의 불가능한 이유는 정치집단수용소를 보면 그 답이 된다고 생각한다.하여간 햇빛정책에 힘입은 북한정권은 기사회생해서 더 많은 것들을 요구하고 있으며 그들이 원하는 적화통일의 길로 순항(?)을 하고 있지 않은가?그동안 그늘에서 숨 고르며 배양, 증식된 좌파가 햇빛을 받으며 표면 위로 부상했고, 학생과 전교조의 친북화, 찢어진 국론, 반미 정서가 팽배한 사회, 정치권 길들이기를 끝내고 재벌 주물럭고기 만들기가 진행되고 있다.
‘우리는 하나’가 제대로 먹혀 들어가고 있지 않은가? 마치 중국 문화혁명(1966~1976) 당시 ‘노동자 혁명정신 만세’라는 한마디가 중국대륙의 전 학원에 혁명의 불길을 당겨 홍의병의 광란을 유도했지만 노동자 농민을 위한 혁명이 아니라 모택동의 정치권력 강화에 있었다(‘대장정’도 노동자 농민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는 비판이 일고 있음). 홍위병은 한낱 일꾼이거나 박수부대였고 북한에서의 지주나 친일파의 척결 또한 비슷한 방법이 동원되었다. 이렇듯 선동용 미사여구로 궁중심리를 이용한 예는 불란서혁명 때도 마찬가지였다.남북한 공히 국가와 민족의 모든 불행을 미국의 탓으로 돌려 비난의 수위를 높일수록 정치적 반사이익을 무능력하거나 독재자가 챙길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하나’인 이 민족은 역사상 책임질 일이 없다는 투다. 그럴까? 그렇다면 우리가 추구하는 자주와 자유의 길은 멀고도 멀다.
민간정부, 소위 민족투사들의 정권은 학문과 사상, 언론의 자유를 내세워 강정구와 같은 부류들을 부추기거나 미전향 장기수를 대우할 줄은 알아도 북한의 정치집단수용소의 민주투사들을 위한 말 한마디 없다. 피수용인들은 ‘우리는 하나’의 하나가 아니고 누구인가. 그 미사여구의 제물로 바쳐질 통일의 걸림돌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북사모들이 완장을 차고 동네방네 설치고 다닐 날이 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그들은 빨사모일 뿐이다.촛불시위 보다 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박수부대를 동원할 절실한 시기를 누군가 점치고 있으리라고 생각된다.단풍을 보고 붉다고 하니 웬 색깔론이냐고 하더라. 마른 잎이 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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