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통일자문회의(평통)의 이재정 수석부의장이 시카고를 방문했다. 6자 회담 재개를 앞두고 북핵과 경수로 문제, 강정구 교수의 반미 발언, 멕아더 동상 철거 논쟁 등 예민한 사안이 대두되고 있는 작금, 대통령의 통일 문제를 자문하는 최고 실무 수장으로써 그의 미주 방문은 뜻이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 주말에 있었던 동포와의 간담회, 평통 위원들의 수련회는 진지한 대화의 광장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과거에는 보기 힘들었던 시카고 평통 지회의 전향적인 자세로 평가 할 만큼 성과를 거두었다. 이 수석부의장은 통일시대 동북아 평화의 전망이라는 주제 강연을 통해 대학 교수와 총장, 국회의원의 경륜을 지닌 인사답게 한국정부의 통일정책과 대북관에 대해서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개진했으며, 동포들의 이해와 협조를 당부해 큰 호응을 받았다.
’통일’은 긴 ‘과정’이라고 전제한 그는 북한이 지난 50년 간의 변화보다 최근 2-3년의 변화가 더 컸다고 했다. 북한은 6자 회담에 적극적이며 개혁 개방의 길로 가고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북한 변화의 실제적인 예로 육군의 요지인 개성을 관광단지로, 해군기지인 장전항을 공업단지로 개방, 남북합영회사, 평양에 MBA과정 신설 등은 북한의 엄청난 변화라고 보았다. 또 협동농장의 가족농장 체재로의 변화, 300곳의 시장(市場)개설을 예로 들었다. 남북 교류의 진전도 괄목할만하다고 말했다. 71년 이후 500회 이상의 회담이 열렸으며, 참여정부 들어서만 81회 회담이 있었다고 한다. 93년에 18명의 남북 인적 교류의 단계에서, 작년 2만 6천명, 올해 9월까지 5만 9천 명의 남북왕래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 부의장은 속단일지는 모르나, 이와 같은 교류 협력 정책으로 우리는 ‘통일시대’에 접어들었다고 진단했다. 그리고 흡수통일은 독일의 교훈으로 미루어 볼 때 바람직하지 않으며, 북한에 퍼주었다는 비난에 대해서도 통계적인 수치를 들어 해명했다. 즉, 지난 10년 간 북에 지원한 1조4천억 원은 국민 1인당 2천 7백 원 꼴로(2불 70전), 서독이 동독을 도운 것에 비교하면 형편없이 적은 돈이라고 했다. 그는 2천7백 원, 미국 돈으로 2불 70전 투자해서 군사충돌, 전쟁조짐, 긴장관계 없이 평화, 교류, 협력, 수출 경제 성장을 이룩했으니, 만약 더 지원했다면 더 성과가 있지 않았겠느냐고 반문했다. 공감이 가는 부분이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겠느냐 에 대해서 회의적인 견해를 피력했다. 한국은 지정학적으로 미 일 중 러 4강국에 둘러싸여 중동과 다르며, 4강국의 이해관계 때문에 전쟁은 쉽게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예견했다. 특별히 중국의 역할을 주목하라고 부연했다.
결론적으로 이 부의장은 통일을 위해 북한을 압박하는 수단보다 교류협력을 통해 북한의 개방과 개혁을 유도해야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이야기에는 충분한 설득력이 있었다.
사실 이날 이 수석부회장의 강연을 현장에서 직접 들은 대부분의 참석자들은 그의 강연에 많은 부분 수긍을 했다. 실제로 평화통일 이외에 통일에 대한 대안은 없으며, 좌경화의 우려 속에서도 평화 안정 기조는 확실하게 유지되었기 때문이다.
이 수석 부회장과 참석자들간의 의견차이는, 질의 응답 시간에 표출되었다. 특별히 이 달에 유엔 총회에서 상정될 북한의 인권문제와, 강정규 교수 발언, 인천의 맥아더 동상 철거주장과 관련, 시각 차이를 보였다. 이 부의장은 대화 교류 지원을 통해 개혁과 개방을 이끌어야 북한의 변화를 가져온다. ‘강정구’ ‘멕아더’는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별것 아닌 일부의 의견이다. 갈등의 이유는 상황은 변하는데 사람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의 시민운동과 민주주의가 여기까지 왔다는 것으로 봐 달라고 톤을 낮추었다. 여기에 반론을 제기한 일부 참석자들은 강정구 교수 발언과 ‘맥아더’ 문제는 가볍게 넘길 사안이 아니며 심각하게 받아드렸다. 이는 한미관계의 악화를 불러 미국에 살고 있는 동포들이 어려움을 겪는다는 점을 강조했다. 911이 후 중동인들이 당한 차별과 고통을 예로 들었다. 미국에는 말끝마다 민족의 자산이라고 읊어 대는 2백만 이상의 동포가 살고 있다는 것도 망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북한 인권’ 유린의 핵심인 탈북자 사태나 강제 수용소 실태에 대해 북한의 눈치를 살피지 말고 당당히 목소리를 내라고 주장했다. 조용한 외교로는 이들의 아픔을 치유 할 수 없다는 점도 지적했다.
평통 수석부의장의 강연을 듣고 새삼스럽게 떠오른 생각은 남북화해의 진전도 중요하겠지만, 무엇보다 우선 남남갈등의 해소가 더 중요하다는 점이다. 통일문제 만큼은 보수도 진보도, 여도 야도, 국내인이나 해외에 사는 동포나 흑백논리에서 벗어났으면 한다. 내 주장만 오른 것이 아니라 너의 주장도 경청 할 수 있는 열린 마음이 아쉽다는 점이다. 정부는 소모적 논쟁의 한쪽 편이 아니라 중재자가 되어야하며, 여론을 선도해야 할 언론은 극단적 대립을 초래하는 소모적인 논쟁에 기름을 붓는 역할은 삼가 해야 할 것이다. 바라건대 정부와 언론은 통일문제 만큼은 정략적으로 취급해서는 안되고 긴 역사적 안목으로 취급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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