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적극적’ 3인방 키워내… SBS ‘자제’ MBC ‘부정적’
재능 있다면 당연 정체성 위기 내부서도 두 목소리
#1 KBS 2TV ‘해피선데이’의 한 코너인 ‘여걸식스’의 MC로 출연한 아나운서 강수정이 가수 민우, 장우혁에게 둘러 싸여 춤을 춘다. 이어 민우에게 “여자를 홀리는 느낌이다”, 장우혁에게는 “눈이 예쁜 것 같다”고 촌평한다.
#2 통 웃지 않아 별명이 ‘얼음공주’인 노현정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KBS 2TV ‘상상플러스’의 ‘세대 공감 올드 앤 뉴’ 코너. 게스트로 나온 배우 신현준이 노현정 아나운서에게 귓속말로 ‘불륜’이란 오답을 말한다. 딱딱한 표정으로 또박또박 문제를 내는 노현정도 이때만큼은 웃음을 참지 못한다.
‘방송국에 속해 뉴스 등의 고지 전달을 주 임무로 하는 사람 또는 그 직업’. 그러나 정작 TV를 켜면 이런 사전적 정의는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다. 연예인 뺨치는 끼와 재주로 무장한 아나운서들이 온갖 오락 프로그램을 누비고 있는 것. ‘인기 프로그램에 스타 아나운서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아나운서 스타화 현상의 대세는 KBS가 주도하고 있다. 일찍이 오락 프로 MC는 물론 탤런트와 영화 배우에까지 도전하며 여성 아나운서의 틀을 파격적으로 깬 임성민을 배출한 바 있는 KBS는 최근 2~3년 사이 부쩍 각종 프로그램에 여성 아나운서들을 전진 배치하고 있다.
“내부 인력을 최대한 활용해 전문성을 키우라”는 정연주 사장의 방침이 그 명분이라면 제작비 절감효과는 실리다. 전문 MC에게는 회당 수백만원을 주어야 하지만, 직원을 쓸 경우는 몇 만원의 분장비나 시간외 수당이면 족하다. 그 결과 강수정 노현정 김경란(‘스펀지’) 등 이른바 ‘스타 아나운서 3인방’이 탄생했다.
반면 ‘아나운서 세일즈’의 원조격인 SBS는 주춤한 상태다. ‘일요일이 좋다’의 ‘X맨’ 1기 출연자로 등장해 연예인들과 짝짓기에 나섰던 윤현진 아나운서는 주말 SBS ‘8시 뉴스’의 앵커를 맡으면서 보도국의 요청에 따라 오락 프로그램 출연을 자제하고 있는 상태다.
설과 추석에 편성한 아나운서들의 장기자랑 프로그램도 “좀 지나친 게 아니냐”는 비판에 따라 2004년 이후 방송하고 있지 않다. 여기에 올해 2월 ‘야심만만’에 김범수 정석문 정미선 등의 아나운서를 출연시켰다가 이혜승 아나운서의 과도한 노출로 문제가 불거지면서 분위기는 더욱 움츠러들었다.
이 분야에 관한한 MBC는 가장 ‘보수적’이다. 손석희 국장이 포진한 MBC 아나운서국의 가풍은 엄하다. 전문 MC 출신으로 입사 전 각종 오락 프로그램을 진행했던 최윤영 아나운서가 국제시사 프로그램인 ‘W’를 진행하고, 김주하 아나운서가 기자로 전업하는 등 KBS와는 180도 다른 모습이다. MBC의 한 젊은 아나운서는 “전체적인 분위기도 그렇고 손 국장도 ‘오락 프로그램에서 망가지는 건 안 된다’는 방침이 확실하다”고 말했다.
삼사 삼색의 이 같은 차이는 ‘아나운서의 연예인화를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근본적 질문과도 맞닿아 있다. 보도에서 예능까지 특화된 아나운서들이 연예인 뺨치는 인기를 누리고 있는 일본을 따라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본래 역할(보도)에만 충실해야 하는 것인지는 방송가에서 끊임 없는 논란이 되고 있는 문제다.
SBS 윤영미 아나운서는 “라디오 뉴스와 스포츠 중계를 뺀 나머지 모든 프로그램이 연예인들에게 영역을 침범 당한 지 오래”라며 “개인의 의지와 재능이 있다면 오락 프로그램 진출을 막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 중견 아나운서는 “시청자들이 재미와 도덕성 두 가지를 모두 요구 받고있는 상황에서 아나운서들이 정체성의 위기를 느끼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그렇다고 해도 아직까지 아나운서에 대해 보수적 태도를 지닌 시청자들이 많다는 현실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MBC 김성주, KBS 윤인구, SBS 박찬민 처럼 오락 프로그램에 자주 얼굴을 비치는 남성 아나운서가 많음에도 세간의 관심이나 논란은 유독 여성 아나운서들에게 쏠려있다. 이는 오랫동안 작은 역할로 ‘액세서리’라는 극단적인 평을 들었던 여성 아나운서들의 위상이 급속히 높아졌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일반 연예인에 비해 일정 수준의 자질과 미모를 함께 갖춘 여성 아나운서들의 ‘탈정형화’된 모습을 보고자 하는, 남성적 엿보기의 측면도 있음을 부인키 어렵다.
/김대성기자 loveli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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