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희봉(수필가, 환경엔지니어)
파라론 (Farallone) 섬. 샌프란시스코 정서쪽 28마일 떨어진 태평양위의 바위섬. 대양을 건너온 선박들이 지친 몸을 이끌고 항구의 품으로 들어오기 직전 만나는 이정표 같은 고도(孤島)이다. 금문교의 파수꾼이자 바닷새와 물개들만의 왕국.
파라론 섬은 무인도다. 1972년 자동조명등대가 설치되면서 오직 바닷새들의 보호지역이 되었다. 불과 120에이커 밖에 되지 않는 돌섬이지만 북미대륙에서 알래스카 다음가는 조류 서식처다. 이 섬에 12종류, 25만 바닷새 가족들이 부리를 맞대고 산다. 갈매기와 코모란을 위시해, 바다오리(murre), 갈색 펠리컨, 바다쇠오리, 섬새(puffins)등이 바위틈과 섬 벽에 둥지를 틀고 산다. 멸종위기에 놓였던 코끼리 물개와 바다사자들도 군집을 이루고 있다. 이 섬에 들기 위해선 미 연방 야생 자원국(US Fish and Wildlife Service)의 상륙 허가가 필요하다. 새(鳥) 왕국의 비자인 셈이다.
아침 8시. 버클리 부둣가. 아직도 샌프란시스코만은 여름 안개가 자욱하다. 몇 달 전부터 오도반 소사이어티 생태 관람단에 명단을 올리고 허가를 기다렸다. 그러나 상륙은 불허되고 섬 주변만 돌아보도록 연락이 왔다. 우리 일행 6명은 방한복에 구명조끼를 끼어 입고 43피트 급 전셋배에 탄다. 배 이름은 흥미롭게도 리처드 바흐의 소설에 나오는 불굴의 주인공 갈매기 조나단 리빙스턴.
금문교를 나서자 바람이 드세고 파고가 높다. 작은 북섬과 제법 큰 남섬으로 나뉜 파라론의 윤곽이 점점 드러난다. 9천만년 전, 바다 밑 화강암이 솟아 생긴 이 섬은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거센 강풍과 사나운 파도에 침식당하고 있다.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없어 황폐해 보인다. 남섬의 제법 높은 정상에는 등대 구조물이 서있고 아래쪽에 생태 학자들을 위한 방갈로 두어 채가 눈에 띈다. 그 사이 돌 틈마다 마치 피난수용소같이 새들이 둥지를 틀고 있다.
60세쯤 보이는 선장의 해풍에 거을은 얼굴이 친근해 보인다. 그는 연어잡이 배를 몰며 이곳 연안에서 평생을 보냈다고 했다. 「파라론섬의 수난의 역사는 점점 잊혀져가지요. 1800년 초엔, 모피 사냥꾼들이 들어와 물개와 바다사자, 12만 마리나 전멸시켰습니다. 코끼리 물개(elephant seal)는 거의 멸종위기까지 갔는데 200년이 지난 지금도 회복이 안되었지요」.
그 후 1849년부터 골드러시를 따라 샌프란시스코 인구가 급증하게 된다. 닭 농장이 없던 때라 조반 달걀의 수요가 높아지자 투기꾼들은 다시 파라론 섬을 침입, 새알을 걷어가기 시작했다. 「아예 파라론 새알회사를 차려 한해 60만 개 새알을 수거해 갔지요. 1900년 초까지 천 사백만 개의 알을 걷어갔습니다. 섬새들의 수도 격감했지요. 당시, 이 섬에서는 새알 수거를 놓고 25명의 갱단 들과 새알 수거업자들 간에 OK 목장의 결투보다 더 치열한 총격전이 벌어졌었지요. 이 혈투는 지금도 파라론 섬의 새알 전쟁(egg war)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20세기에 들어오면서 섬의 생태계적 중요성이 인식되자 비로소 테드 루즈벨트 대통령이 섬을 보호지역으로 선포했다고 한다. 그러나 1970년대가 되어서야 사람들의 출입이 금지되고 새와 물개들이 왕국을 되찾게된다.
「파라론 섬엔 두 가지 비밀이 있습니다」. 선장은 흥미롭게 말을 이어간다. 「1946년 남태평양 비키니섬에서 원폭실험이 있었지요. 그 때 타깃으로 쓰였던 배가 퇴역한 미국 항모 인디펜던스였지요. 그 잔해가 이 곳에 수장되었습니다. 그 후 1970년까지 수만 드럼의 방사성 폐기물들도 함께 버려졌지요. 방사능이 끼치는 폐해를 아무도 모르지만 심각합니다」.
「또 하나의 비밀은 올해 이곳의 플랑크톤이 격감한 사실이지요. 파라론 섬 지역은 깊은 수심으로 바닷물의 용승(upwelling)작용이 활발한 곳입니다. 그래서 플랑크톤의 보고이지요. 그러나 올해 갑자기 바닷물이 뒤섞이질 않아 플랑크톤이 거의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그 여파로 먹이사슬의 대 혼란이 오고 있지요」. 선장은 돌섬 가에 있는 바닷새와 물개들의 시체들을 손으로 가리킨다. 「특히 크릴을 좋아하는 청 고래(Blue whale)를 올핸 보지 못했습니다. 그가 오면 내가 아는 비밀을 다 고해 바쳐야지요」. 선장이 문득 새 울음소리 나는 하늘을 올려다본다. 배의 마스터엔 조나단 리빙스턴을 닮은 오뚝한 부릿날의 갈매기 한 마리가 앉아 멀리 바라보고 있다. 마치 청 고래를 기다리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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