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6 보선에서 전패한 후 지금은 쑥 들어갔지만 한국 여권 일각에서 대통령 중임제로 헌법을 고쳐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었다. 단임으로는 임기가 너무 짧고 중임을 허용해 중간에 국민들의 평가를 받도록 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미국의 예를 들었다.
그러나 미국 역사를 보면 재선에 성공해 많은 업적을 남긴 경우보다는 별 볼 일 없이 끝나거나 스캔들에 휘말려 곤욕을 치른 경우가 더 많다. 지금은 미국의 ‘국부’로 추앙 받는 조지 워싱턴만 해도 재선된 후 내각이 해밀턴 파와 제퍼슨 파로 쪼개져 내내 마음 편치 못하게 지냈다. 1794년 영국과의 친선을 도모한 ‘제이 조약’을 체결한 후에는 반영 노선을 걷던 제퍼슨 파로부터 ‘미국 독립을 판 매국노’라는 지금은 상상키 힘든 욕까지 먹었다. 워싱턴이 법적인 제한이 없었음에도 두 번만 하고 대통령직을 물러난 것은 장기 집권을 하지 않는 전례를 남기겠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워싱턴 정가의 중상모략과 인신 공격에 신물이 났기 때문이기도 했다.
오래 해야 꼭 큰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워싱턴과 함께 ‘가장 위대한 대통령’ 반열에 늘 오르는 에이브러험 링컨은 재선되자마자 암살 당해 사실상 한 텀 밖에 하지 못했지만 아직까지 ‘성자’ 대통령으로 미국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가 살아 끝까지 임기를 마쳤더라면 그의 후임을 맡아 남부 재건 문제로 고생고생 하다 미 역사상 처음 탄핵 소추된 앤드루 존슨 꼴이 나지 말란 법이 없었을 것으로 보는 학자들도 있다.
두 번째 임기 중 혼이 난 대통령은 20세기 들어서도 하나둘이 아니다. 닉슨의 워터게이트, 레이건의 이란-콘트라 게이트, 클린턴의 모니카 게이트 등등 두 번째 텀은 무슨 무슨 게이트 자가 붙지 않으면 안 되는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다.
2004년 선거에서 레이건 이후 처음 재선에 성공한 공화당 대통령이 된 부시도 예외는 아닌 모양이다. 지지부진한 이라크 사태와 카트리나 늑장 대응, 해리엇 마이어스 대법관 인준 실패에 허덕이고 있는 와중에 이번에는 리크게이트가 본격적으로 터졌다. 체니 부통령 비서실장이자 대통령 보좌관인 루이스 비리가 위증 등 5개 혐의로 기소된 것이다.
워싱턴 정가에서는 ‘마이어스 사건’이 단지 마이어스 한 사람에 대한 불만이라기보다 그 동안 쌓여온 보수파의 불만이 터진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부시는 자신을 ‘보수파 대통령’으로 볼지 모르지만 보수 진영 일각에서는 부시가 정말 보수주의자인가에 대해 회의적이다.
우선 정통 보수는 정치적으로 ‘작은 정부’와 고립주의를 선호한다. 내치도 외교도 정부가 할 일은 최소한도에서 그쳐야 한다는 게 그들 생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부시 재임 기간 동안 정부 예산과 공무원 수는 엄청나게 늘어났다. 다른 나라를 쳐들어가 민주화시킨다는 것은 정통 보수가 금기시 하는 주장의 하나다. ‘문화가 정치를 결정하지 정치로 문화를 바꿀 수 없다’는 것이 그들의 신조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라크 침공의 명분이던 ‘대량 살상 무기 제거’도 애초부터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시장 경제와 자유 무역을 지지하는 경제적 보수주의자들도 부시에게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 부시는 말로는 자유무역주의를 부르짖으면서도 철강과 섬유, 목재 등에 관세를 부과하고 대대적인 농업 보조금을 지불하는 등 말과 배치되는 행동을 해왔다.
종교적 보수주의자도 마찬가지다.’동성 결혼 금지 헌법 개정안’을 공약으로 내걸고 보수 기독교도 덕에 당선된 후 부시는 이 문제에 대해서 입도 뻥끗 하지 않고 있다. 이들은 한마디로 속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마이어스 인준에 결사반대한 것이 바로 이들 종교 단체들이다.
부시가 31일 스타 보수파 법조인인 새뮤얼 알리토를 지명한 것도 대법관으로 흔들리는 지지 기반을 결집, 곤경에 빠진 국면을 전환시켜 보자는 생각인 것 같다. 그러나 역대 대통령의 전례를 보면 두 번째 텀에서 한번 스캔들에 휘말리면 좀처럼 헤어 나오기 힘들다. 과연 부시가 연임 징크스를 깨고 성공적으로 임기를 마무리 지을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민 경 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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