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의 시대가 마감되고 있다. 내년 1월로써 18년간의 임기를 마치고 은퇴하는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은 그 어느 전임 의장보다 세간의 관심을 모으며 ‘경제 대통령’ 또는 세계 제1의 실권자라는 호칭을 들을 만큼 대단한 영향력을 행사한 인물로 기록될 것이다.
취임하자마자 블랙 먼데이로 불리는 증시폭락을 겪어야 하는 어려움으로 시작한 그의 임기는 그 후 크고 작은 어려움을 잘 해결해 나감으로써 명성을 쌓아갔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의 명성은 2000년의 나스닥 거품붕괴와 9.11테러, 그리고 회계 부정사건으로 이어진 대형 경제악재 때 절정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여느 때 같았으면 그 중 하나만으로도 경제가 깊은 수렁에 빠질 수 있을 정도로 큰 문제였는데도 그린스펀 의장의 지도력은 미 경제를 약간의 침체기만 잠깐 거친 후 곧바로 정상화시켰다. 초유의 저금리와 이를 통한 부동산 시장 활성화로 경기침체의 위기를 극복해 냈다고 간략하게 표현할 수 있다.
물론 이 때문에 나스닥 주식시장의 거품에 이은 부동산 시장의 거품을 조장했다는 비판이 일고 있지만 이는 아직 증명이 안 되었기에 속단은 이르다. 이와 관련 그린스펀 의장은 부동산 시장의 거품 가능성은 인정하지만 지금이라도 2000년대 초와 같은 사태가 발생한다면 부동산 시장의 활성화를 통해 경제를 살려내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었다는데 추호의 의심도 없다는 의견을 피력함으로써 당시의 선택이 잘된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렇듯 확신 있는 지도력이 지난 18년간의 긴 세월동안 미국과 더 나아가 세계 경제를 무난히 이끌어올 수 있었던 힘이었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고 보인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의 지도력 하에 있었던 연방은행이 그 이전보다 더 성공적이었던 이유는 투명화에 있다. 이전까지의 연방은행의 지침은 비공개주의라고 할 수 있다. 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연방은행의 정책을 발표할 때도 결과만 알려주고 왜 그러한 결과가 나왔는지는 한참 시간이 지난 후에 공개했다. 연방은행의 견해가 너무 빨리 알려지면 혹시 금융시장이 더 큰 폭으로 흔들릴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그러나 실제로 연방은행의 주요 결정에 대한 배경을 설명 듣지 못한 시장은 추측을 하게 되고 이 추측은 여러 갈래로 나뉘어 더 많은 변수를 만들어냄으로써 시장에 또 하나의 불확실성을 초래한 경우가 더 많았다. 즉 불확실성을 피하고자 비공개 원칙을 고수한 바로 그 정책이 불확실성을 더 크게 하는 모순을 가져온 것이었다.
지금은 연방은행의 발표 중 가장 중요한 이자율 결정 때 그 결정배경을 같이 발표하고 앞으로의 경제에 대한 연방은행의 견해를 보여주며, 경제에 대한 큰 방향이 바뀔 때마다 미리 앞으로의 전망을 해 나가고 있다.
이러한 투명성은 시장에서 따로 연방은행의 입장을 이해하기 위해 추측을 할 필요가 없게 함으로써 연방은행 자체가 불확실성의 원인이 되는 근거를 제거했다. 지난 10여년의 미 경제가 정보 통신산업의 폭발적 발전과 그 이후 발생한 주식 폭락 등 여러 악재에도 불구하고 미 경제가 과거와 같은 큰 불황을 피해갔던 이유 중에는 불확실성을 제거한 투명화가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정보를 공유하면 할수록 사회의 불확실성이 줄어들어 안정적인 사회 배경을 형성한다는 투명화의 원칙을 연방은행은 실천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린스펀 의장의 후임으로 지명된 버냉키 현 대통령 경제자문회의 의장은 이 투명성에서 더 뚜렷한 인물로 알려진 사람이다. 버냉키 지명자의 투명화 성향은 여러 군데서 읽을 수 있지만 그 중에서도 지난 해 6월 미니애폴리스 연방은행에서의 인터뷰가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본인은 연방공개위원회가 입장 표명을 더 많이 하는 정책을 지지한다. 특히 연방은행의 미 경제에 대한 견해는 장기적으로 되면 될수록 좋다고 본다”라는 자신의 취향을 분명히 했다.
버냉키 시대는 부동산과 유가의 상승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의 위협으로 시작된다. 취임부터 큰 도전이다. 그러나 투명화의 뚜렷한 의지를 지닌 새 의장은 누구보다도 이러한 도전을 현명히 대처해 나갈 것으로 믿어진다. 어느 한 개인의 능력보다 투명화를 통해 여러 전문가의 의견과 시장의 소리가 반영된 합일된 노력이 사회적 위기 극복에는 더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미 경제계가 버냉키 지명자를 환영하는 이유다.
최운화
커먼웰스 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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