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의 절정을 보기 위해서 한 주를 미루어 비숍(Bishop)으로 떠난 이번 산행에서는 락크릭캐년(Rock Creek Canyon)의 입구에 들어서면서부터 노란 애스펜(Aspen)이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팔랑거리는 것을 보며 산으로 들어갈수록 기가 막힌 절경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사시나무 포플러라는 이름의 애스펜은 노란색을 띠고 있는데 물이 잘 든 것은 주황색으로 변해 있어서 노란색, 담홍색, 금빛과 함께 가을의 기분을 살리며 동부의 울긋불긋한 단풍과는 달리 캘리포니아만의 색다른 분위기를 연출했다.
“스노우체인 준비하고 왔습니까?”
안내자의 엉뚱한 물음에 기사는 의아해 하면서 당연히 아니라고 했지만, 산길은 언제 날씨가 변할지 모르니까 대비를 해야 한다고 하면서 안내자는 자기가 이전에 겪었던 경험담을 얘기해 주었다.
락크릭캐년의 트레일을 오르는 길에 크고 작은 빙하호수들을 여러 번 만났는데 이곳의 호수는 깊은 에메랄드 색을 띄우고 있어서 특이했다.
미국에서는 둘째로 높은 봉우리인 휘트니 산과 그보다 조금 낮은 화이트 산이 맥을 잇고 있는 시에라네바다산맥의 봉우리에는 아직도 녹지 않은 눈이 간간이 보였다.
“저거 근래 내린 눈이에요.”라고 말하는 안내자의 말을 의심하는 듯이 몇 번 되물었지만 꼭대기 산에는 벌써 눈이 내렸다는 것이었다.
9,800피트까지 오른 이번 산행에서는 고산병의 징조가 처음부터 심하게 나타났다. 머리가 아프고 아리는 것을 참을 수 없어서 중간에 주저앉아 있었더니, 뒤따라온 분이 솔잎향기를 숨이 멎을 때까지 천천히 들이마시고 솔잎을 몇 잎 따서 입에 넣고 질근질근 씹으며 올라가라고 했다. 솔잎 향기에 머리가 아픈 것은 덜 했지만 손이 시려서 재킷의 지퍼를 끝까지 올리며 모자를 푹 덮어쓰고 빠른 걸음으로 오르다보니 곧 선두에 있는 사람들과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머리의 통증이 고산지대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기온이 낮아져서 그런 것임을 조금씩 날리기 시작하는 눈 때문에 알게 되었다.
네 번째 호수를 만났을 때는 이미 오후 네 시가 되었고 하산을 하라는 지시가 떨어지자마자 눈발이 진눈깨비로 변하더니 내려가는 사이에 어느새 함박눈으로 변해서 눈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고 차에 오르기 전에는 모두 다 눈사람이 되어 있었다.
산에 올라가면 단풍이 절정인 줄 알고 올라갔다가 단풍은 고사하고 생각지도 못한 첫눈을 맞고 온 감동은 차가 설경을 다 빠져 나올 때까지도 멈추지 않았다.
비숍의 시내에는 바람이 불고 비가 주적주적 내리고 있었다. 도심 공원에서 저녁을 준비하느라고 차콜을 피우는 사이에 길 건너 빵집에 가서 뜨거운 커피 한 잔을 사서 마시고 나니 젖은 옷에 언 몸이 좀 녹는 것 같았지만 목은 여전히 깔깔했다.
다음 날 아침, 간단한 아침식사를 마치고 일찌감치 물과 단풍과 산수가 가장 아름답다는 비숍의 사우스 포크로 올라가는 길은 장관이었다. 길 양쪽 옆으로는 노란 부시가 아직도 한창이었고, 간밤에 온통 하얗게 변한 시에라네바다 산맥과 함께 눈꽃을 덮고 나타난 단풍이 우리를 깜짝 놀라게 했지만 정작에 정상으로 가는 길은 눈에 빙판이 져서 길이 차단되는 바람에 버스의 방향을 돌려야 했다.
버스는 다시 14마일 떨어진 빅 파인의 사우스 포크로 내려갔는데 그곳에서는 단풍을 찾아 나선 일행들을 조금도 실망시키지 않았다.
연중 빙하로 덮인 산을 바라보면서 황금물결 속에 흐르는 계곡을 지나 큰 잣나무에 둘러쳐진 빅 파인 크릭 캠프그라운드에서 바비큐를 준비하는 동안 검은 송어가 떼 지어 다니고 있는 송어연못에는 낚시꾼이 떠나질 않았다.
지금은 단풍이 아름답다고 흥분해도 얄궂은 시샘으로 서리가 내리게 되면 우수수 단풍잎이 떨어지고 보잘것없는 낙엽이 되어 사람들의 발에 밟힌다는 아름다운 것의 유한성에 대해 얘기하며, 가을을 보러 갔다가 겨울을 만나고 온 이번 산행은 노란 단풍과 설화와 눈 덮인 산과 깊은 호수와 함께 두고두고 머릿속에 남아있을 것이다.
정미셸
약 력
미주한국기독교문인협회 회장
한국문인협회 회원
시집 <새소리 맑은 아침은 하늘도 맑다>
<창문너머 또 하나의 창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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