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F나라] 걸걸한 화법과 독창적 유머 ‘일품’…단순 패러디 뛰어넘는 예기치못한 반전
오래 묵힌 장처럼 깊은 맛을 장전한 노장의 코미디가 배꼽에 지진을 일으키고 있다. 연기 내공 10단의 중견 배우 신구와 김수미가 올해들어 시들한 기세를 보여온 유머 광고라는 장르에 보란 듯이 역전의 홈런포를 날리고 있다.
신구는 쿠퍼스 CF에서, 김수미는 장라면 CF에서 각각 포복 절도할 배역을 맡아 유머광고의 황제와 황후에 등극했음을 외치고 있는 중이다. 일찍이 ‘니들이 게맛을 알아?(롯데리아 CF)’라는 명언을 남기며 광고계의 재미있는 어르신으로 이름을 날린 신구는 쿠퍼스 CF에서 대형 잠수함을 타고 뭍에 온 용왕으로 등장한다.
그런가하면 영화와 시트콤에서 걸쩍지근한 입담의 코믹 연기로 ‘전성시대’를 구가중인 김수미는 장라면 CF에서 다소곳한 궁녀로 나와 기습 공격을 펼친다.
그런데 이들의 코미디는 중견의 부활 코드로 각광을 받아온 ‘근엄한 갑옷 벗어던지기’, 혹은 ‘몸을 던져 망가지기’ 등과는 거리를 두고 있다. 결코 어른의 당당함과 도도함을 잃지 않되 비틀기의 위트로 짜릿하게 옆구리를 간지럽힌다.
# 이영애 패러디? 천만의 말씀!
신구와 김수미는 각기 다른 종류의 브랜드 광고에 출연했음에도 공교롭게 이영애와 관계가 있는 설정을 연기했다.
간에 좋은 발효유라는 속성을 알리기 위해 ‘수궁가’를 소재로 빌려온 쿠퍼스 CF는 지상으로 올라온 용왕 신구가 몰려든 취재진에게 질문공세를 받는다는 내용을 그리고 있다. 연로한 용왕의 건강을 걱정하는 기자의 질문에 맞받아치는 신구의 대답이 절창이다.
신구는 ‘너나 걱정하세요’, ‘토끼 끝이야, 쿠퍼스야’ 등 반말의 쏘아 붙이기로 좌중을 압도한다. ‘너나 걱정하세요’는 언뜻 영화 ‘친절한 금자씨’에 나오는 이영애의 ‘너나 잘하세요’와 맥락이 같은 냉소적인 대꾸로 보인다. 그러나 신구는 나름의 감칠맛 나는 어투로 낯익은 히트작에 기대는 패러디의 효과를 초월하며 위풍당당한 어른의 권위를 자랑한다.
실제로 촬영 당시 신구는 ‘이영애 따라잡기’로 비쳐질 수 있다는 점을 대단히 경계했다. 제작진에게 자신은 누구를 흉내나 내는 사람이 아님을 못 받은 그는 독창적인 어투로 NG없이 한방에 이 대사를 소화했고, 쿠퍼스의 독창적인 유머을 견인했다.
‘대장금’의 왕인 임호가 서두를 장식하는 장라면 광고는 초반만해도 이영애 주연의 드라마 ‘대장금’을 패러디한 평범한 CF의 모양새를 띠고 있다.
그러나 장라면의 맛에 반한 ‘왕’ 임호 앞에서 곱게 앉아있다가 임호가 맛의 비법을 물으며 고개를 들라고 명령하자 그제서야 정체를 드러내는 궁녀 김수미는 특유의 걸걸한 화법으로 절절하게 ‘깊은 맛을 내기 위해 청춘을 다 바쳤다’고 대답한다.
이 CF에서 카사노바한테 정기를 뺏겨 빨리 늙어버린 시트콤 ‘안녕 프란체스카’ 3시즌의 이사벨 캐릭터와 ‘대장금’ 이영애의 외양을 버무린 김수미는 원전의 이미지를 파괴하고 비튼 뒤 새로운 틀을 창조해내는 ‘정반합’의 노련한 반전 기술을 구사하며 폭소를 유도한다.
이들 ‘노장’에게 단순하게 패러디 연기를 소화했다고 말하면 곤란하다. 신구와 김수미는 진지함과 치열함을 내장한 촌철살인의 코믹 카리스마가 무엇인지를 15초의 마술인 CF를 통해 여지없이 과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 한국야쿠르트 광고, ‘유머광고의 명가’로 자리 잡다
노장의 유머가 탱탱한 젊은 빅모델의 매력 보다 우위임을 보여준 쿠퍼스 광고와 장라면 광고는 모두 한국야쿠르트 소속이다. 두 CF와 함께 현재 한국야쿠르트의 또다른 브랜드인 왕뚜껑 CF도 원초적인 야릇한 유머로 인기를 끌고 있다.
한 광고주의 세 광고가 현재 광고전문사이트 TVCF(www.tvcf.co.kr)의 인기광고 순위를 다투며 ‘트리플’ 히트를 기록하고 있다. 경쟁사 광고들이 진지한 증언식, ‘시즐(군침을 자극하는 장치)’에 중점을 두는 방식 등으로 시청자를 공략하고 있는 사이, 이들 광고는 차별화한 유머의 기술로 욕망과 감성의 허를 찌르고 있다.
특히 쿠퍼스 광고와 장라면 CF는 노익장을 만만하게, 혹은 느슨하게 바라본 시선을 긴장감있게 조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묘한 각성의 효과도 주고 있다.
/조재원기자 miin@sportshankook.co.kr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