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구 교수의 계산된 ‘망언’이 검찰총장의 사퇴를 넘어 한국 여야 정당간의 언어폭력 교전으로 확대됐다. 강 교수의 문제된 발언은 객관성, 가치 중립성, 경험성을 바탕으로 사실의 패턴을 추구하는 사회학의 학설 부류에서 벗어났다. 한국전쟁을 도발한 북한의 의도를 삼국시대 통일정신과 동일시한 주장은 픽션 수준의 의견일뿐 사상의 체계나 학설의 범주에 넣는 것은 무리이다. 그런 의견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한국의 헌법을 지킨다는 법무장관의 지휘권 발동 명분은 한국 민주주의 수준을 확인했지만 필수불가결한 것은 아니었다. 어차피 개인의 자유 행사가 맥아더 동상 철수문제 같은 사회와 국제관계에서 역기능적 갈등을 충동할 때 국가보안법을 차치하더라도 치안문제로 사법기관이 개입해야 할 것이다.
한국에서는 오랜 세월 계속된 가부장-권력자들의 억압과 이에 대한 반항이 아직 정-반-합으로 진행되는 과정에 있다. 그래서 새 세대들은 기존 권위자들을 무너뜨리려고 반항하며 기존 권위자들은 자기들의 입지와 힘을 지키려 필사적으로 대응한다. 단기적으로는 지난 반세기 동안 반공 안보로 버텨온 기존 권위에 새 세대가 아버지의 상징을 죽이는 외디퍼스 콤플렉스로 도전하고 있다. 그 도전에서 기존 세대를 복수하고 격분시킬 어거지 시나리오들의 하나가 기존 세대의 한반도 분단 설명을 뒤집는 것이다. 북한이 만들어 놓은 그 대본에다가 무너뜨릴 수퍼 엉클의 상징으로 미국도 포함시키면 반항 세대에게는 더 통쾌한 대본이 된다.
또한 이런 반항세대의 리더들은, 그들이 노무현 정부의 실세이든 거리의 저항 운동가들이든, 자신들 스스로 축적한 진한 분노 정서를 품고 있다. 가해와 억압을 당한 분노도 있고 자신의 실패와 열등감에 기인한 분노도 있다. 그런 분노를 관리하는데 자신을 대상으로 하면 우울증에 빠지고 남을 대상으로 하면 가해행위나 정의감으로 포장되어 표출된다. 은혜와 파워의 상징인 맥아더를 한국 분단의 원흉으로 삼는 시나리오는 반항세대의 동지들이 환영할 어거지 정의감 표출 수단이 된다. 그런 왜곡은 받아줄 그룹들이 존재하는 현 정치상황에서만 가능하고 실리적이다.
또한 강 교수의 망언과 뒤따르는 정치인들의 폭언 리추얼에는 그 본인과 정치권이 챙기려는 실용주의적 타산이 있다. 강 교수는 억지 발언을 통해 비난뿐 아니라 막대한 긍정적 관심을 받고 있다. 그는 맥아더 동상 시비 같은 친북-반미 사회운동에 이념적 대부로 등극했고 노무현 그룹 실세와 코드가 통해 자신을 정치적 주식시장에 상장시키는 성과를 얻었다.
강정구 구속을 고집한 검찰의 무리한 타산은 현 시점에서 일단 잃은 자들의 몫이 됐다. 폭력성 언어교전을 벌이는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에게는 10월26일의 보궐선거에서 유권자들의 보수, 진보 성향을 상기시켜 각기 동원하여 득을 본다는 단기적 타산성이 있다. 또 각기 중장기적 술수와 연계되는 타산성도 있을 것이다. 장기적 타산성은 어떤가? 2000년 월드 서베이에서 한국인의 정치적 성향은 진보성 32%, 중립성 38%, 보수성 30%로 나타났다. 국회를 신뢰하는 한국인들은 11%로 세계 평균 의회 신뢰도 41%에 아득한 차이를 보인다. 정부에 대한 한국인의 신뢰도는 30%이지만 정당에 대한 신뢰도 또한 11%에 불과하다. 그런데 정치인들은 폭력성 언어로 중도적 유권자들을 미혹하겠다고 폭력성 언어의 교전을 벌인다.
한국문화에서 부권주의 시대의 권위 지향성은 더 약화되고 수평적 인간관계와 평등의 가치가 더 진전된다는 것을 세계 역사의 방향이 예보한다. 보수-진보의 갈등은 어차피 진보의 편으로 방향 짓는다. 보수권이 자기들의 몰락을 지연하려면 구태의연한 입지를 수정하고 언어들의 톤을 낮추는 것이 필요하다. 한나라당이 “노무현 정부의 정체성”에 대해 가속기를 되풀이해 밟아도 국민의 호응이 지속될 것인가?
반면에 진보 그룹은 진정 평등과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를 추구하려면 맞불 말장난보다 자신들의 두뇌와 언어부터 정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일제와 군사정부 때의 과오를 들추다가 연립정부 구애를 하고, 또 다시 과거를 들먹이는 노무현 그룹의 풀빵 뒤집기 같은 짧은 언동에는 비전도 진취적 냄새도 없다. 정치 지도자들이 비전을 발상할 상상력이 없으면 차라리 “과거는 묻지 마세요”라는 수준의 애교 있는 수사어들이라도 찾아야 국민들의 한숨이 줄어든다.
이윤모
사회학 박사
일이노이주 인권국
연구개발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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