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간의 수교는 1866년 8월 미국의 상선 제너럴 셔먼호가 조선과 통상을 트기 위해 대동강을 거슬러 평양 인근까지 진출했다가 군민의 습격을 받고 소실되었던 셔먼호 사건, 그리고 그 후 1871년의 신미양요(辛未洋擾) 등 여러 우여곡절을 거쳐 1882년 이뤄졌다.
신미양요는 제너럴 셔먼호 사건을 계기로 조선 진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미국이 조선원정을 결정함에 따라, 고종 8년 신미년(1871) 일본 나가사키에 집결했던 아시아 함대의 사령관 존 로저스 휘하의 군함 5척에 분승한 해병 1,230명이 6월10일 강화해협의 초지진에 상륙작전을 감행한 미국의 조선 침략사건이다.
영국의 동방진출로 1792년 중국의 청조가 광저우를 개항했던 배경과 1858년 조인된 미일 수호조약 체결의 경우처럼 미국은 조선도 포함의 막강한 위용 앞에 무릎을 꿇고 협상에 임할 것으로 예상했었다. 그러나 강화도 인근 광성보에서 맞선 치열한 전투에서 미국 측은 불과 3명의 전사와 10명의 부상에 그쳐 피해는 경미했으나 조선 측이 큰 전화를 당했는데도 반격의 결의가 불굴인 것을 확인하자 7월3일 철수를 서둘렀다. 이 전투에서 조선 측은 350명이 전사하고 20여 명이 부상을 당했다.
청국의 실권자 이홍장이 조선 등 인근국가들의 외교를 좌지우지하는 것을 알게 된 미국은 조선진출에 무력보다는 그의 영향력을 이용하는 게 더 효과적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이홍장의 강력한 권고로 조선의 조정이 마침내 미국과의 수교에 응할 뜻을 비치자 중국 천진에 머물던 미국의 로버트 슈펠트 제독이 1882년 조선을 방문, 조선의 전권대신 신헌과 4월4일 제물포에서 수교회담을 갖고 ‘한미우호통상조약’을 체결했다. 전문 14조의 이 조약은 서두에 “대조선국과 아메리카 합중국은 두 나라 인민 사이의 영원한 친선 우호관계를 수립한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이 조약은 사실상 슈펠트와 이홍장 간에 미리 합의된 문안을 거의 수정 없이 인준한 것에 불과했다.
한미조약 발효 이듬해인 1883년 5월20일 미국 전권공사 루셔스 후우트(Lucius H. Foote)가 고종에게 신임장을 제정했고, 조선 정부는 민영익을 전권공사로 한 보빙사절단을 미국에 파견했다. 이들은 9월 18일 백악관을 방문, 미국 대통령 체스터 아더로부터 ‘정중한’ 환영을 받았다. 민영익은 보스턴 등을 순방하고 유럽을 거처 귀국한 후 중도개화파의 후원자가 되었다. 그는 1884년 12월 4일 김옥균 등 급진개혁파가 갑신정변을 일으켰을 때 중상을 입었으나, 미국 의사 호레이스 알렌(Horace Allen)의 치료를 받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한미간 본격적인 외교시대는 1888년 1월 17일 박정양이 초대 주미공사로 정식 임명되고, 미국 측에서는 민영익을 치료한 알렌을 주한공사로 임명하면서 시작되었다.
조선이 미국에 공사를 파견하기 이전 명예 영사로 위촉된 뉴욕의 거상 프레이저는 공식석상에는 늘 한복차림에 상투를 틀고 나왔으며, 후례절(厚禮節)이라는 퍽 도덕적인 한국 이름을 자랑했다는 일화가 있다. 그는 발명가 토마스 에디슨이 경복궁 건청궁에 한국 최초의 전기공급을 하도록 주선하기도 했다.
이태식 신임 주미대사의 부임소식에 만감이 교차한다. 전임대사들이 높은 학문을 쌓고도 그들의 지식을 군사독재에의 어용 수단으로 악용한 경우가 비일비재했고, 심지어 참여정부 하에서도 미국의 일부 요로와 친분이 깊다는 가당치 않은 이유로 중책에 기용되었으나 부임 몇 개월이 채 못돼 추악한 비리가 알려져 국가의 이미지를 크게 실추시키고 물러난 게 엊그제인 것 같다.
이번에 부임한 이 대사는 학식과 덕망을 겸비한 전통 외교관 출신이라고 하니 한미간의 도덕적 결속을 재정립하기 위해 천만다행한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부임 제일성이 “대사관의 문턱을 낮추라”고 했다는데 이 얼마나 상큼한 선언인가. 특히 이 신임대사는 “6자회담의 성공을 바탕으로 미래지향적 외교를 펼치겠다”는 의욕을 보였다고 하니, 그는 남북시대의 대미외교를 주체적으로 이끌 수 있는 인물로 보인다. 곧 시작될 북미수교 협상에서도 민족애를 바탕으로 외교적 지원을 발휘해서 대미외교가 우리민족의 통일을 여는 데 큰 공헌을 해줄 것을 기대한다.
외교의 역량은 내치의 성공에서 나온다. 이태식 신임 대사는 전직대사들의 권위주의적이고 기피주의적 야행성 외교의 관행에서 탈피하여 저 바스티유 감옥보다 높은 대사관의 담을 허물고 동포들과 동고동락하면서 동포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는 대사(大師)가 되기를 바란다.
sLee-kpi@msn.com
이선명/KPI통신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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