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바쁜 오후, 전화가 울렸다. 무심코 받았다. 모르는 미국인이었다. 의사라고 했다. 네 위에서 뭔가 두꺼운게 발견됐다고 한다. 6개월 전에 한 위 조영촬영을 검토한 결과라는 것이다. 빠른 시간 내 정밀 검사가 필요하다고 한다. 미국의사들은 이럴 때 직설적이다. “혹시 암?” 이라는 질문에 “그럴 수 있다(It might be.)”고 간단하게 대답한다.
반년 전에 한 검사 결과가 왜 이제야 통보되나, 어떤 경로를 거쳐 이런 전화가 오게 됐나…. 의문은 꼬리를 물지만 다 무의미한 질문이다. 지금 이 순간 중요한 것은 암일 수 있다는 것과 한시라도 빨리 정밀검사를 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런 전화를 받고 털썩 의자에 앉으면 바삐 돌아가는 세상이 일순간 나와는 무관한 풍경이 된다. 물론 최종 진단이 나온 건 아니지만 이때쯤이면 삶의 다른 면이 보인다. 무심히 지나치던 것들이 절실해지고, 때로 애절해지기까지 하면서, 창밖에 늘 보이는 나뭇잎이 유난히 더 푸르게 보이기도 한다. 어려워야 비로소 인생의 숨겨진 또 다른 면을 쳐다보게 되는 것은 한심하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어느 날 문득 걸려온 전화 한 통으로 통째 뒤바뀔 수 있는 것이 인생임을 경험한 이들은 많다. ‘죽은 의사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책의 말미에 실려 있는‘어느 중년 샐러리맨의 3박4일 죽음 여행’도 같은 이야기다. 기관지 임파선에서 종양이 발견돼 수술을 받은 40대 기업 임원은 다행히 물혹 판명을 받긴 했으나 수술과정에서 의사의 말과 표정 하나로 천국과 지옥을 수없이 오간 경험을 털어놓는다. 그는 이 ‘이별 연습’을 통해 일에만 묻혀 산 세월을 후회하게 되고, 삶에 대해 느낀 것이 너무 많다며 체험담을 동료들에게 이메일로 알렸다.
건강한 사람에게 건강은 이슈가 아니다. 그 점에서 건강은 영주권과 같다. 있으면 아무 것도 아니지만 없으면 그렇게 불편하고, 절실할 수 없다. 건강은 이 지상에 살 자격을 부여하는 범 지구 영주권이라고 할 수 있다.
건강이 많은 사람의 공동 관심사인 만큼 이를 걸고 넘어가 돈을 벌려는 이들은 줄을 섰다. 검증되지 않고, 여과되지도 않은 건강이론을 건강 지킴이의 전부 인양 전파하는 건강 박사는 많다. 먹으면 즉효인 건강 상품도 넘쳐 난다. 홍수처럼 쏟아지는 건강정보 속에서 소비자들은 현명해지지 않으면 안된다. 어딘가 넘치고, 너무 자신만만해 균형을 잃은 건강 전도사나 건강제품은 의심해 봐야 한다. 자칫 돈 잃고, 시간 날리고, 무엇보다 있던 건강까지 해칠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친구 한 사람은 부부가 너무 똑똑해서 아까운 나이에 유명을 달리했다. 검증된 현대의학 대신 암 치료를 대체의학에만 의존하다가 생명을 그르친 것이다. 그에게는 양의의 부작용과 불합리한 점만 너무 크게 부각된 것일까. 의사인 친구의 동생은 황토 집을 지어 살면서 세계 각국의 약초를 찾다 치료시기를 놓친 형의 이야기를 뒤늦게 알았다며 땅을 친다.
인터넷을 들어가면 건강정보는 바다를 이루고 있다. 다행인 것은 그 정보의 바다를 헤매다 보면 중구난방의 건강 상식에도 어느 정도 공통된 가닥이 잡힌다는 것이다.
예컨대‘생로병사의 비밀’같은 베스트 셀러 건강서적이나 미국에서 발행되는 믿을 만한 건강관련 책들이 말하는 항암 작용이 탁월한 건강식품의 리스트만 해도 거의 일치한다. 토마토, 마늘, 녹차, 브로컬리, 콩, 귀리 등이다. 어디서나 걷는 운동, 특히 파워 워킹은 강하게 권장된다.
나는 얼마 전 평양을 다녀왔는데 이번에 평양 시민들에게 발견한 한 가지 공통점은 바로 파워 워킹이다. 이들은 팔을 앞뒤로 요란스레 흔들지만 않았지 모두 파워 워킹의 선수들이었다. 그래서일까. 평양 거리에서 만난 동포들은 사진의 지도자 동지 말고는 배 나온 사람이 없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한다. 지은 죄가 많아 겁이 나 병원에 못가겠다는 중년도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르다는 것을 알고 건강검진을 거르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제 10월, 모두에게 건강한 가을을 기대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가을에 무엇보다 마음을 앓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안상호 부국장·특집1부장
sanghah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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