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대통령은 10월 3일 아침에 백악관 수석 변호사인 해리엣 마이어스 여사를 사직한 샌드라 데이 오코너 대법원 판사의 후임으로 지명했다. 바로 같은 날 2005-2006년도 대법원의 첫 회기가 열려 78대 22로 얼마 전 상원 인준을 거친 존 로버츠 대법원장이 미국 국민에게 선을 보였다. 민주당 상원의원들 중 반수가 로버츠 임명에 반표를 던진 것인데 마이어스의 자격을 검토하는 상원 법사위의 청문회와 상원 본회의에서 민주당이 어떤 입장을 취할는지 아직은 분명하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로버츠에게는 반표를 던진 해리 리드 민주당 상원 원내총무 자신이 부시와의 면담에서 마이어스를 천거한 적이 있었다는 사실과는 대조적으로 낙태문제에 있어서 부시의 ‘생명중시’(Pro-Life) 철학을 그대로 가지고 있다는 마이어스가 혹시나 1973년의 로우 대 웨이드(낙태를 합법화시킨 대법원 판례)를 뒤엎을 가능성에 대해 걱정을 하는 민주당 리버럴들의 심사숙고가 시간이 걸리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공화당의 보수파들이 부시의 결정을 맹비난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에 민주당은 당분간 관망할 수 있는 여유가 있는 셈이다.
극우보수진영은 이번에 공공연한 낙태 반대론자를 임명했더라면 낙태가(즉 태아의 살인이) 불법이 되도록 할 절호의 기회였는데 부시가 이를 상실한 것으로 혹평하고 있다. 이라크 전쟁 때문에 하락세에 있던 부시에 대한 국민의 지지도가 40%까지 내려오게 한 카트리나 후폭풍 때문에 부시가 민주당의 반대에 대해 지레 겁을 먹고 저지른 어리석은 행동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공화당 상원의원 55명 중 한 명도 마이어스 여사를 반대한다고 선언한 사람이 없다. 그러므로 현재의 중론은 그가 상원의 인준을 쉽사리 받을 것이라는 것이다.
마이어스는 60세의 독신녀인데 텍사스 태생이다. 남부에서는 유명대학의 하나로 알려진 남부 감리교대학(SMU)에서 수학을 전공했고, SMU 법과대학을 졸업한 게 1970년이란다. 졸업과 동시에 연방 지방법원 판사의 법률서기를 거치기는 했지만 판사 경력은 전무한 것을 흠으로 잡는 사람들도 있다. 왜냐하면 최근 몇 십년 동안에는 대법원 판사들이 주 대법원 판사, 아니면 연방 공소법원, 특히 워싱턴 DC에 소재한 공소법원의 판사 경력이 있다는 게 추세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시가 마이어스를 소개하면서 지적했듯이 9월초에 작고한 렌퀴스트 전 대법원장과 그밖에 약 35명의 대법원 판사들은 판사 경력이 없이 대법원 판사에 임명된 사람들이다. 마이어스가 상원의 인준을 받으면 110명 째 대법원 판사 자리에 오르는 것이니까 약 3분의 1이 하급 법원에서 재판을 한 경험이 없다는 이야기다. 미 연방 정부가 수립된 지 200년이 넘는 이 시점에서 겨우 110명이 대법원 판사직에 올랐다는 사실은 종신직인 그들의 위상이 행정부의 장관들이나 현재 정원이 535명 되는 연방 의원들보다 위에 있음을 알려준다.
마이어스 여사는 여자로는 최초로 달라스에서 가장 큰 법률회사의 책임자였으며, 또 달라스 변호사협회 회장과 텍사스 변호사협회 회장을 지냈다. 부시하고는 그가 주지사 시절부터 인연을 맺어 주 ‘로토’ 위원회 위원을 지냈고, 부시가 대통령에 당선되자 인수위원회의 일원으로 활동하다가 부시 임기 제1기에는 백악관에서 대통령 면담일정 담당관 자리를 거쳐 비서실 차장으로 있다가 알베르트 골잘레스가 법무장관으로 발탁되어 공석이 된 백악관 수석 변호사 자리에 있어왔다. 그의 역할 중 하나는 연방 판사 후보들을 접견하고 대통령에게 추천하는 위원회의 위원장 노릇이었다. 워낙 오코너 판사의 후임으로 존 로버츠를 대법원 판사로 검토하고 추천한 장본인 중 하나였다. 렌퀴스트가 죽자 로버츠는 대법원장으로 승차되었기에 또 오코너 후임 인선작업이 진행 중 앤디 카드 백악관 비서실장이 두어 주 전 마이어스에게 한 사람을 더 집어넣으라고 한 이름이 바로 마이어스였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체니가 조지 W. 부시의 부통령 후보 인선위원회 위원장으로 여러 사람들을 접견하다가 자기 자신이 부통령 후보로 되는 경험을 한 것과 흡사하다.
로라 부시 여사가 오코너의 후임으로 여성이면 좋겠다고 공언해온 것도 기억할 만하다. 공화당 상원의원들 중 이탈표를 지금으로는 상상하기 어렵고, 또 민주당 상원의원들도 여자가 지명되었음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해리엣 마이어스는 어렵지 않게 역사상 세 번째 여성 대법원 판사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원 판사의 말동무는 오래지 않아 생길 것 같다.
<남선우 변호사 MD, VA 301-622-6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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