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도청테이프 사건으로 취임한지 몇 달도 안 되는 주미대사가 사임에 이어서 검찰소환까지 받았다고 한다. 불법도청을 한 정부가(정권은 다르지만) 그 불법행위로 얻은 도청내용에 준거해서 수사를 확대하는, 불법 위에 또 불법을 자행하고 있다. 그래서 합법적으로 도청 내용을 듣기 위한 특별법 운운하는데는 더욱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불법 도청이면 그 내용을 아무도 듣지 못하거나 그 내용을 중심으로 법적 행정적 조처나 제재를 가할 수는 없는 것이 원칙이다. 불법을 통해서 얻은 것은 어느 것도 인정하지 말아야 한다. 1백 억이나 되는 불법 대선 자금 유용으로 된 당선이 무효이어야 하고, 수능 부정으로 취득한 점수는 무효이어야 한다.
힘없는 학생들의 수능 결과는 무효가 되었지만, 힘센 대통령의 당선에 대해서는 아무도 당선 무효를 따지지 않는다. 불법도청으로 얻은 정보를 합법적으로 듣고 쓰기 위해서 만들겠다는 특별법이란 것이 바로 불법 취득한 물건을 합법적으로 그것도 소급해서 합법적으로 쓰겠다는 내용이고 보면 당연히 위헌이 될 수밖에 없다.
불법 제조한 화폐인줄 알면서 시중에 유통시키겠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이에 대해 “이 사람아, 불법 제조한 위조지폐와는 달라, 위조지폐야 가짜니까 못쓰지만, 이 테이프는 진짜 테이프야 진실이 담겨 있는 거야” 라고 가상 논쟁을 해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런 논리로 불법도청 테이프를 쓰겠다면, 일부 조폐청 직원들이 만약 불법으로 진짜화폐를 찍어냈을 때 그 화폐는 어쩔 것인가? 당연히 소각하고 유통시키지 말아야 한다.
바람직한 가상시나리오는 이렇다. 불법도청 테이프와 녹취록 수거를 위한 가택수사 영장신청을 받은 판사가 영장 발부하며, 도청테이프와 녹취록을 전부 법원 창고에 보관하도록 법원 명령을 내린다. 불법 도청한 범법자는 수사하고, 그 테이프는 재판 시에 증거물로 쓰일 수는 있지만, 테이프의 내용은 들을 수 없다는 법원 명령이다.
일단 판사의 명령대로 수거한 불법도청 테이프와 녹취록을 법원 창고에 보관한 검찰이 증거물을 조사할 권리를 내세운다. 테이프 내용을 들어야만 수사가 가능하다는 검찰의 요구를 판사는 일축한다. 판사는 테이프의 진위만을 조사하고 증거물 촬영을 한 후에 소각할 것을 명령한다.
국민들의 알 권리를 막는다는 여론을 등에 업고, 검찰의 항소와 테이프 소각중지 가처분신청은 고등법원을 거쳐서 대법원까지 가게되는데, 대법원의 판결은 만장일치로 불법으로 취득한 정보, 자금, 직위 등 어느 것도 국가기관에서 합법으로 유용할 수는 없다는 판결을 내린다. 국민의 알 권리보다도 우선 되는 것이 바로 국민의 개인비밀과 사생활 보호에 있다는 결정을 한다.
불법도청의 내용에 관한 한은 “국민의 모를 권리가 알권리를 우선 한다”는 세계적인 명 판례를 남기고 하급법원의 판결은 존중해서 검찰의 가처분 신청을 기각시키고, 테이프는 소각시킨다. 멋진 가상 시나리오이다.
예를 들어 불법 인체 실험을 통해서 얻은 의학 정보를 인류과학을 위해서 쓸 수 있도록 하자는 특별법 제정에 찬반의 열기를 띠는 나라가 있다면, 또 러브호텔에서 불법 녹화한 유명인사들의 성행위를 공개할 수 있는 특별법에 찬성하는 무지가 상당수의 의원들에게 공감되는, 그런 국가가 있다면, 그 나라의 미래를 염려하지 않을 수 없다.
사건의 본질은 검은 돈의 흐름과 정경유착의 면모를 밝히느냐 여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불법행위를 통해서 얻은 어느 것도 합법적으로 쓸 수 없다는 법의 마지노선을 지키느냐 못 지키느냐에 있다.
가상 논쟁을 이어 본다. “마이너스 수치를 ( )로 싸고 그 앞에 또 마이너스을 붙이면 플러스가 되듯이 불법 위에 또 불법을 하면 합법이 되는 것이 바로 특별법의 묘미야” 에 대한 답은 명쾌하다.
“불법 위에 또 불법을 행하면 더 큰 불법 되는 거야, 바보야!”
정균희
UCLA 정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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