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ZZANG] 비온 뒤 땅이 굳듯이 ‘아픈만큼 성숙’
“아픈 만큼 성숙해졌다. 그러나 여전히 아프다.”
탤런트 오지호가 몰라 볼 정도로 성숙해졌다.
그는 지난 7월 SBS 사극 ‘서동요’ 출연 번복 파문을 겪으면서 나락에 떨어지는 듯 보였지만 MBC 미니시리즈 ‘가을 소나기’(극본 조명주ㆍ연출 윤재문)를 통해 한층 탄탄해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비온 뒤에 땅이 굳는 것처럼.
오지호에게 올 여름은 혹독한 시련의 시기였다.
KBS 2TV ‘두 번째 프러포즈’와 MBC ‘신입사원’의 연이은 성공으로 데뷔 이래 가장 화려한 시기를 보내던 오지호는 화제의 사극 ‘서동요’에 합류하며 기세를 이어갈 분위기였다.
하지만 그는 돌연 출연을 포기했고 계약 위반 파문에 휩싸이며 멍에를 짊어져야 했다.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암담한 상황이었다.
‘가을 소나기’와 함께 돌아온 오지호는 절망의 끝에서 희망을 움켜쥔 모습이었다. 오지호는 실제로 겪은 아픔을 작품 속에 고스란히 녹여 내며 호소력 짙은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혹독한 시련의 계절은 큰 성공을 위한 밑바탕이 된 셈이다.
요즘 ‘가을 소나기’의 운명적인 슬픈 사랑에 흠뻑 젖어 지내는 오지호는 “전쟁 같은 사랑의 의미를 알 것 같다”고 말했다. 그 만큼 극중 지독한 사랑을 몸소 느끼며 배역에 흠뻑 빠져 지낸다는 이야기다. 배역에 동화돼 지낸다는 오지호를 만나봤다.
■ 연기를 버리니 연기가 된다
오지호는 그 동안 부자연스러운 대사 처리가 한계로 지적되곤 했다. 몸에 잔뜩 힘이 들어간 채 딱딱하게 말하는 모습이 부담스럽게 여겨졌다.
노력 끝에 부자연스러움을 스타일로 굳혀가긴 했지만 여전히 한계였다. 그런 오지호가 ‘가을 소나기’에서는 한결 편안해졌다. 얼굴에 감도는 우울함은 자연스러운 슬픔이고 담담한 어조로 일상을 표현하고 있다.
“부자연스러운 대사 처리는 항상 내겐 숙제였다. 실제 생활에서 말투가 원체 딱딱하기에 대사 또한 그럴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연기를 한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힘을 주다 보니 더욱 부담스러워졌다. 이번 작품에선 연기라는 생각을 버리고 최대한 극중 인물에 동화되려고 했다. 어느 정도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오고 있는 것 같다.”
‘가을 소나기’에서 오지호가 연기하는 윤재는 시청자들로부터 욕을 많이 먹을 만한 인물이다.
아내(김소연)가 사고로 식물인간이 돼 병상에 누워 있는 상태에서 아내의 가장 친한 친구(정려원)와 사랑에 빠지고 사랑의 도피도 하게 된다. 쉽게 공감을 얻기 힘들고 동화되기도 만만치 않은 캐릭터다. 그러나 오致4?윤재에 푹 빠져 있다.
“제3자 입장에서 볼 때 윤재는 이해되기 힘들다. 그러나 실제로 자신이 그 상황이라 생각하면 누구라도 윤재와 같은 감정에 휩싸일 것이다. 물론 슬프고 가슴 아프다. 대본만 읽어도 눈물이 나온다. 내게 던져진 숙제는 그런 감정선을 유지하며 공감을 확보하는 것이다.”
오지호는 요즘 대본이 저절로 외워질 정도로 즐겁게 연기하고 있다. 데뷔 이래 가장 대사량이 많은데도 읽다 보면 외워진다고 했다. 스스로 신기할 정도다. 그 만큼 배역과 연기에 푹 빠져 있다는 이야기다.
■ 쥐구멍에라도 숨고만 싶었다
오지호는 ‘서동요’ 출연 포기를 결심할 당시를 “부끄럽고 창피해서 어쩔 줄 모를 상태였다”고 말했다.
첫 대본 연습 자리에서 동료 연기자들과 호흡을 맞춰 봤는데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다고 느낄 정도로 스스로가 형편없게 여겨졌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해도 너무했다. 그래도 7년이나 연기 활동을 해왔는데 너무 못했다. 두려웠다. 바로 그날 자다가 식은 땀을 흘리며 깨기도 했다. 나 때문에 작품을 망치면 어떡하나, 그런 비난을 감수할 수 있을까. 결국 포기했다.”
오지호는 모든 비난을 감수할 마음의 자세를 갖추고 있었다. 그러나 ‘다른 작품에 출연하기 위한 계약 파기다’, ‘출연료를 더 많이 주는 작품으로 가려 한다’ 등으로 비난이 확대되면서 심한 마음 고생을 해야 했다.
“모든 비난을 겸허히 받아들였다. ‘굴러 들어온 복을 차버렸다’는 말도 들었지만 내 복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연기자로서 성숙해질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한다. 어려운 때 도와주고 격려해준 주위 분들에 대한 고마움도 새삼 느꼈다.”
오지호는 요즘 함께 하는 모든 사람이 고맙고 사랑스럽다. 김소연 정려원 등 ‘가을 소나기’의 출연진에게는 진정한 동료애를 느끼고 있다. 극중 아내로 항상 병상에 누워 있는 김소연에게는 실제로도 미안한 감정을 느껴 매일 만날 때 마다 “소연아, 미안하다”라고 말하곤 한다.
“재미있다. 연기가 이렇게 재미있는 줄 미처 몰랐다. 앞으로 연기자로 살면서 요즘 느끼는 감흥을 평생 간직하고 싶다”고 말하는 오지호의 눈은 전에 없이 반짝반짝 빛났다.
이동현 기자 kulkuri@sportshank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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