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태어난 고향이며 초등학교 4학년까지 다닌 곳은 충북 진천이다. 당시에 유행되던 말 중에는 부분적으로는 잊어버렸지만 다음과 같은 게 있었다. “김구호 술 먹으나 마나, 왕서방 눈뜨나 마나.” 나와 동창생이던 김상엽의 부친이기도 했던 김구호 씨는 진천 읍내의 유일한 기생술집 주인답게 늘 술에 젖어 살다시피 했기 때문인지 항상 얼굴이 불그레한 상태였기에 그런 속설의 주인공이 되었다. 상엽의 말에 의하면 그의 부친은 신혼 첫날에도 술이 취해 뒷간의 똥통에 빠졌었다니까 그런 말을 들을 만한 사람이었다. 왕서방은 중국 노인으로 큰 채소밭의 주인이었던 바 몸만이 아니라 얼굴에도 살이 찐 까닭에 눈두덩이조차 무거워서 인지 실눈을 하고 사람을 보는 버릇이 있기 때문에 “왕서방 눈뜨나 마나”라는 말을 낳게 되었다. 그러나 젊을 적에는 군살 하나 없는 말라깽이였던 나도 60대에 들어서서는 배가 보기 흉할 정도로 나왔을 뿐만 아니라 얼굴에도 살이 찐 것 같아 오래지 않아 ‘눈뜨나 마나’가 나에게도 적용될까 보아 걱정이 된다.
또 걱정거리 중 하나는 “남선우 머리 빗으나 마나”라는 신조 유행어라고 생겨날 지도 모른다는 우려이다. 얼마 전에는 실버 스프링 여호와의 증인 한국어 회중에서 파수대를 연구하는 시간에 토의한 주제가 하나님께서 인간 개개인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계시다는 내용이었는데 토론된 성구 중 하나가 누가복음 12장 6절과 7절이었다. “참새 다섯이 앗사리온(동전) 둘에 팔리는 것 아니냐. 그러나 하나님 앞에는 그 하나라도 잊어버리시는 바 되지 아니하는 도다. 너희에게는 오히려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 되었으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느니라.”
내가 파수대 연구 사회자의 질문에 답하면서 “인간들에게는 평균 10만 이상의 머리카락이 있는데 제 머리에는 아마 5분의 1정도인 2만개 정도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 나를 충성스럽다고 판단하신다면 부활될 때 또는 아마겟돈을 생존하여 새 세상에 이를 때 내 대머리가 정상상태로 회복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라고 해설한 바 있었다. 집회가 끝난 뒤 어떤 젊은 자매가 나에게 하는 말이 “남형제 머리가 2만 정도라니요, 8천 정도밖에 안 되는 것으로 보이는데요”라고 해서 우리 부부를 포함해서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폭소를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지난 주말 막내딸의 결혼식에 참석하는 과정에서 디지털 카메라로 찍힌 나의 머리통 앞과 뒤를 자세히 보니까 정말 얼마 안되면 완전 대머리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막내딸 기영이는 우리 집사람이 40세에 낳았기 때문에 그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혹시라도 우리 둘 중 하나가 잘못되면 어찌할까 라고 많은 걱정이 되었었다. 하지만 대학도 졸업하고 취직하고 있는 기영이가 올 3월에는 ‘크래그’란 미국아이와 가족들만 모인 자리에서 조촐하게 결혼식을 올린 바 있었다. 그러나 아무래도 양가와 친척들과 친구들을 위한 리셉션이 없었던 게 섭섭했던지 지난 주 토요일에 버지니아 셰난도 부근에 있는 어떤 Bed & Breakfast 산장을 빌려 조촐한 잔치 겸 (두번째의) 결혼서약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우리 둘의 소원과는 달리 여호와의 증인 조직에서 이탈한 기영의 결혼 주례는 자기 이종사촌 형부인 ‘아리엘’이라는 미국 청년이 했다. 유대인으로서 무종교인 아리엘은 인터넷을 통해 결혼 주례를 할 수 있는 자격증을 받아두었던 모양이다. 우리가 이틀 묵은 그 산장에는 TV조차 없어 정말 평화스럽고 고요한 분위기라서 심신을 쉬기에 적당한 곳으로 보였다.
르호보스 비치에 다녀오다가 딸과 사위는 우리를 준다고 시골길에 흔히 자리잡고 있는 과일점에서 수박을 하나 사들고 왔다. 그같은 노변 상점의 임시가판에는 그 고을 밭에서 막 따온 신선한 과일임을 자랑한다. 그런데 웬걸 그저께 아침에 그 수박이 자연폭발을 하여 부엌 겸 식당의 바닥을 붉은 물로 범람을 시켰다. 신선하기는커녕 아마 열흘 이상 묵힌 수박이 안으로부터 썩어 그 속 공기가 확장되는 바람에 그리 되었겠지만 수박이 터지는 것은 생전 처음 보았다.
문자 그대로 횡설수설인 이 잡문을 읽은 사람들 중 몇이라도 노변 상점에서 과일이나 채소를 살 때에 잘 보고 살 수 있게 된다면 이 허비된 것이 아닐 것이다.(볼티모어에 사는 김재문 씨가 지난 주 칼럼에 대해 에스겔 39장이 아니라고 지적해주어 38장이 맞음을 발견했다)
<남선우 변호사 MD, VA 301-622-6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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