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네브라스카주의 한 도시에서 불법체류자 검거를 위한 ‘뱅가드작전’이 발동되었다. 불체자 채용 고용주 처벌을 골자로 한 1986년 이민개정법의 본보기 시행령이었다. 불체자를 대거 고용하고있는 육류포장공장을 급습한 이민수사관들은 회사 인사기록과 소셜시큐리티 데이터를 비교해가며 의심가는 4,500명 종업원에 대한 심문을 시작했다. 회사는 벌컥 뒤집히고 상당수의 종업원은 도망갔으나 작전은 성공적인듯 했다.
그러나 장애는 예기치못한 곳에서 튀어나왔다. 주지사와 연방의원들이 강력 항의를 해온 것이다. 이들은 노동자들이 삽시간에 사라져 네브라스카주 최대 산업중 하나인 육류포장공장들이 폐쇄직전이고 육류가격 폭락으로 지역 농촌경기가 엉망이 됐다며 어쩔거냐고 이민국을 다그쳤다. ‘성공적’으로 시작했던 뱅가드작전은 얼마못가 중단되고 말았다.
겉으로는 불체자 근절을 외치면서도 경제적으로는 이들에게 상당부분 의존하고 있는 것이 미국의 오늘이다. 불법입국을 막기위한 국경수비 강화는 물론 필요하다. 불체자를 채용하는 고용주 처벌도 당연히 해야한다. 그런데 불체자들을 모조리 색출해 추방한다 해도(물론 현실적으로 절대 불가능하지만) 그 다음이 더 큰 문제다. 경제가 굴러가기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매년 합법적 단순노동 비자는 5천건밖에 못 주고 있는데 호텔청소에서 식품가공까지 필요한 단순 노동자는 수십만이다. 법은 있는데 시행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미국의 이민정책은 두 얼굴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민’은 미국의 정치인들이 가장 피하고 싶어하는 이슈중 하나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어 명쾌한 해법찾기가 너무 힘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못본척 외면하기엔 또 너무 큰 이슈다. 부시대통령도 취임 초기부터 이민법 개혁을 약속해왔다. 그런데 얼마 후 9.11테러가 터졌고 아프간과 이라크 전쟁이 시작되었으며 곧 재선 캠페인이 바빴고 이번엔 허리케인 카트리나까지 몰아쳤다. 이민개혁은 부시행정부의 어젠다에서 저 뒤로 밀려났나 했는데 지난주 백악관이 봄부터 두세차례 실시해왔던 이민개혁 브리핑을 재개했다. 연방의원들과 재계지도자, 학계와 이민단체 관계자들을 초청하여 부시의 이민개혁안 세부사항도 밝히고 각계의 의견도 들은 것이다. 이민정책 개혁이 이번 가을 안에 실현될 수도 있겠다는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대부분의 개혁안과 마찬가지로 부시안도 두가지를 골자로 한다. 첫째는 단속강화다. 국경수비를 더 한층 강화하고 불체자 채용 고용주에 대한 처벌을 대폭 강화하는 것이다. 이 부분엔 어느 쪽에서도 반대가 없다.
문제는 두 번째, 임시노동자 프로그램이다. 불체자의 신분을 합법화시켜줄 수 있는 대책이다. 부시의 안은 임시노동자에게 3년 취업에 1회 연장, 도합 6년의 노동비자 기간이 끝나면 본국으로 돌려보내도록 하고있다. 공화당내 강경보수 쪽에서는 ‘실제적 사면’이라고 그것마저 반대하지만, 영주체류의 길을 열어주지 않는 임시노동 비자는 현실적으로 불체자 문제 해결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이민정책 논쟁의 핵심은 세가지 측면에서 볼 수있다. 매년 수십만명에 달하는 밀입국자들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그들을 막고나면 매년 수십만씩 필요한 단순 노동력은 어떻게 메꿀 것인가. 그리고 법이 손닿지 못하는 지하세계에서 이미 어두운 사회를 형성해가고 있는 1천1백만명의 기존 불체자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새 밀입국자와 노동력 수요 문제는 부시의 6년 임시비자안으로 해결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늘에 숨어사는 기존 불체자들을 법치사회로 끌어내는 일은 불가능하다. 이미 가정을 이루고 미국에 정착한 이들에게 6년후엔 강제귀국해야 한다면 대부분 그늘에서 아예 나오지도 않을 것이다. 부시안이 이들에게 영주권 취득의 길을 열어주어야만 하는 이유다.
현재 연방의회에도 몇가지 이민개혁안이 상정되어 있다. 그중 가장 합리적이고 포괄적인 법안이 매케인-케네디 안이다. 불체자라도 6년동안 임시비자로 일한 후 과거 불법체류에 대한 벌금을 납부하면 영주권신청의 기회를 주고있다. 재계와 이민자 권리단체가 함께 지지하고 있는 이 법안은 공화당의 존 매케인 상원의원과 민주당의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이 공동제안한 것이다.
이처럼 이제 ‘이민개혁’ 이슈는 공화 대 민주, 보수 대 진보, 친이민 대 반이민의 이념투쟁 단계를 넘어섰다. 평소에는 대립하는 이 양쪽의 이해관계가 합치되는 시급한 국가문제이며 당쟁이 심한 워싱턴에서도 초당적 합의가 이루어질 수 있는 의제라는 뜻이다.
이제 남은 것은 부시의 강력한 리더십이다. 공화당내의 반대를 설득해 가라앉히고 민주당과 진지하게 협력해 초당적 지지를 이끌어내야 한다. 그렇게 하여 현실적으로 시행가능한 포괄적 이민개혁 정책을 수립할 수 있다면 이는 뉴욕타임스가 지적했듯이 ‘부시대통령 시대의 가장 훌륭한 유산’으로 기록될 수 있을 것이다.
박 록
주 필
rokpar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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