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가는 순간의 아름다움’이 고스란히 담긴 청소년 시절. 부모들은 가끔 10대 자녀의 감성이 자신의 것을 커닝해 갔다고 느낄 만큼 ‘일란성’이라고 감지할 때가 있다. 솔직하고 자기 중심적이고 쓸데없는 편견을 배제하는 듯 하면서도 부드러움과 뜨거운 광기가 뒤섞인 10대의 감정 곡예. 이들은 성인이 되기 위한 필수과정인 ‘성장통’(growing pain)을 앓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거쳐가야 하는 관문 중에 이성과의 사귐인 데이팅(dating)을 빼놓을 수 없다. 그런데 최근 기존의 통념을 뒤엎는 흥미로운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10대 시절 여러 사람과 가볍고 성의 없는 이성교제를 한 사람보다는 소수와 깊고 친밀한 관계를 맺었던 10대들이 나중에 결혼생활이나 파트너십을 성공적으로 이끌고 갈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시간낭비 아닌 의사소통 과정
감정 이해하고 갈등해소 배워
건강한 결혼·파트너십 도움”
새 가이드, 기존 통념 뒤집어
상대 자주 바꾸는 겉사귐보다
소수와 친밀관계가 더 좋다
10대 자녀를 둔 부모들이 자녀의 이성교제에 대한 부모로서의 경험을 얘기하는 흥미진진한 자리에 참석한 적이 있다.
한 학부모는 고교생 아들이 학교 친구들과 찍은 사진을 가지고 왔는데 자세히 보니 아들의 손이 어떤 여학생의 허벅지에 놓여 있더라는 것. 그걸 발견한 순간 이 엄마는 다른 것은 안보이고 아들의 손만 맷방석만하게 커 보이면서 ‘번지수를 잘못 찾았을 것만 같은 아들의 손’에 대해 밤새도록 끙끙 앓았다고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아들과 그 여학생은 특별한 감정을 교류하는 사이였다.
또 다른 학부모는 중학교까지, 아니 대학 재학중인 지금까지도 우수한 모범생인 자신의 아들이 9학년에 올라간 어느 날, 학교 카운슬러로부터 전화가 왔다. “귀댁의 아들이 동급생 소녀 모양과 함께 학교 밖을 빠져나가 2시간째 수업을 땡땡이 치고 있는 중입니다. 여학생의 집에도 연락했으므로 학교 당국은 이 일에 책임이 없습니다.”
이들 부모들이 ‘열불 났던 경험’을 예기하고 있는데 한동안 조용하던 한 학부모는 “참한 여학생 하나에 꼭 붙어 다니는 아들 둔 엄마들, 복 많으신 겁니다. 그건 그들이 동성연애자가 아니라는 증거니까요.” 다들 왁자지껄하게 웃고는 실내는 조용해 졌다.
전통적으로 부모들은 15세가 넘은 10대 자녀들이 한 상대와 너무 오래, 깊게 교제하는데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10대 때는 ‘이성 탐구기간’이므로 여러 상대를 골고루 그러나 책임을 느끼지 않을 만큼 건성으로 사귀어야 한다는 것이 부모들의 견해다. 한 이성과 오래 사귀다 보면 자칫 애욕의 함정에 빠질 수 있고 공부에도 지장이 가므로 이성교제는 무료한 주말 시간을 메워주는 양념이나 ‘뗌방’ 정도로 거쳐만 갔으면 하는 것이 부모들의 바람이었다. 그러나 최근 이런 통념에 강한 쐐기를 박는 연구조사 2건이 발표되어 부모들의 자녀 데이팅 가이드에 새 지침을 주고 있다.
이들 연구 결과에 따르면 10대의 데이팅은 시간낭비가 아니라 원활한 의사소통 기술을 배우고 갈등을 해소하는 방법을 터득하며 상대의 감정을 이해하고 느낄 줄 아는 능력을 길러 가는 중요한 과정이므로 10대의 데이팅 습관이나 관행이 장차 결혼생활이나 파트너십 영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따라서 여러 명의 이성과 성의 없이 사귀는(dating around) 것보다는 한두 명과 지속적으로 깊고 친밀한 교제를 하는 것이 성숙한 성인이 되는데 절대적으로 도움이 된다는 것.
한 파트너와 오랜 교제, 적령기 결혼 확률 높아
관계의 아름다움 배우는
성인 되기 위한 필수요건
지나친 간섭은 자제를
최근 발표된 10대의 데이팅 습관과 성숙한 성인과의 상관관계는 다음과 같다.
◆미네소타 대학 심리학자들의 연구 발표
지난 4월 아동개발 컨벤션에서 발표된 자료로서 15∼17세 틴에이저 180명을 28년간 연구한 결과이다. 이 기간 7∼9명의 이성과 데이팅을 한 사람과 한두 명과만 오래, 깊게 데이팅을 한 모델을 연구 비교한 결과 후자가 20대에 들어서 더 건강하고 로맨틱한 이성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비율도 더 높았다.
◆미 사회학협회 컨벤션에서 발표된 자료
역시 미네소타 대학이지만 이번에는 사회학 교수들의 연구 자료로 지난 8월 발표된 연구 결과이다. 16세나 17세 소녀중 한 파트너와 오랜 교제를 한 소녀들은 결국 22∼25세에 결혼을 했다. 미국 여성의 첫 결혼 평균 연령이 25세, 남성은 27세임을 감안할 때 사귄 파트너수가 적고 관계가 친밀할수록 적령기에 결혼생활에 들어갈 확률이 높음을 나타내 주고 있다.
◆학부모 가이드
건강한 10대 데이팅은 권장할 일이다. 시간낭비가 아니라 성숙한 성인이 되기 위한 필수요건인 ‘관계의 아름다움’을 배우는 중요한 시간이다. 단 일일이 간섭하지 말고 누구와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정도로 관심은 항상 쓰며 수퍼바이징은 해야 한다. 친구를 선택할 때 적용되는 잣대나 데이팅 상대를 고를 때 적용되는 가치관 등에 관해 자세히 의견을 나눈다.
만약 관계가 잘못됐을 때는 공부에 지장이 가고 원하지 않는 임신 등을 할 수 있음을 알려 책임감을 깨우쳐 준다. 또 상대방의 감정에 갈등이나 혼돈을 일으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납득할 수 있는 해명이나 사과도 없이 여러 차례 바람을 맞히거나 따돌리는 행위는 바람직하지 않음도 일러준다. 밤 데이트 때는 귀가 시간을 정해 놓고 지키도록 한다. 누구는 만나고 누구는 만나지 말라는 식의 지나친 간섭은 자녀의 반발을 유도할 수 있으니 자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석창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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