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버 클리블랜드(민)는 여러모로 특이한 인물이다. 40여 명의 미국 대통령 중 한번 낙선한 후 다시 도전, 백악관에 입성한 사람은 그밖에 없다. 그는 또 독신으로 백악관에 들어가 재직 중 결혼한 유일한 인물이다. 1884년 대통령에 당선된 그는 2년 뒤 49세의 나이로 21살 짜리 여성과 결혼했다.
그는 집권기간 동안 어떤 특정 이익 단체에 특혜를 주지 않는 정책을 편 것으로 유명하다. 텍사스에 가뭄이 들어 연방 의회가 농부들에게 1만 달러 어치의 씨를 나눠주는 법안을 마련하자 “국민은 정부를 지지하지만 정부는 국민을 지원하지 않는다”는 말과 함께 거부권을 행사했다. 재난이 닥칠 때마다 정부가 국민들을 도와준다면 국민은 정부에 대한 의존심이 생기고 자력으로 삶을 개척할 수 있는 의지를 잃게 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지금으로서는 정치적으로 자살하기를 원하는 사람이 아니면 할 수 없는 말이다.
1887년에는 연방 의회에 관세를 낮출 것을 촉구했다 다음 해 대선에 불리한 이슈를 제공했다는 당내 비난을 받자 “소신을 관철시키지 못하면 재선돼서 뭐 하느냐”고 쏴 붙였다. 그는 1888년 공화당의 벤저민 해리슨보다 더 많은 유효 표를 받고도 선거인단 수에서 져 낙선하지만 4년 뒤 재도전, 설욕하고 만다.
미 역사상 가장 큰 재난 피해를 입힌 카트리나 복구에 연방 정부가 2,000억 달러 이상을 쏟아 부을 예정이다. 일부에서는 대공황 때의 TVA 개발 계획이나 제2차 대전 직후 유럽 복구를 위한 마샬 플랜 같은 규모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막대한 예산을 집행하기 전 한가지 따져 봐야 할 점이 있다. 과연 정부가 이런 엄청난 돈을 효과적으로 쓸 능력이 있는가 하는 것이다. 카트리나가 닥친 후 한가지 분명해진 것은 연방을 비롯, 주나 시정부가 얼마나 무능했나 하는 점이다.
제방 붕괴를 막기 위한 대책도, 홍수가 난 후 신속한 구조 작업도, 식량 배급과 대피소 마련, 치안 유지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한 것이 없다. 이처럼 잘못을 저지르고도 서로 남의 탓만 하고 있을 뿐 이를 시인한 사람은 지금까지 부시 대통령 혼자다.
웰페어를 비롯한 빈민 구제나 각종 관급 공사 등 정부가 하는 일은 잘 되기보다는 엉망이 되는 경우가 많다. 60년대부터 시작된 ‘빈곤과의 전쟁’은 수조 달러를 쏟아 붇고도 웰페어에 의존해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빈곤층 수만 늘려 놓은 채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1996년 정부의 역할을 축소하고 개인의 자발성과 근로를 강조하는 웰페어 개혁법이 통과된 후에야 웰페어 중독자 수는 줄어들기 시작했다. 망치 하나 구입비로 수천 달러를 책정하는 것은 국방부에만 있는 스캔들이 아니다.
정부가 사회 정책에 개입해 일이 잘 안 되는 가장 큰 이유의 하나는 공무원들의 관료적 멘털리티다. 위에서는뭐라 하건 납작 엎드려 꼼짝을 하지 않는다. 소위 복지부동이다. 괜히 일을 만들었다 책임지느니 아예 눈을 감는 것이 체질화 돼 있고 예산은 가능한 한 많이 따와 남기는 일없이 다 쓰는 것이 불문율이다. 순진하게 효율적으로 일 해 배정된 예산을 돌려주면 다음 해 예산이 깎이는 것은 물론이고 인원까지 감축된다. 공무원의 고질적인 관료주의는 어떻게 보면 오랜 경험에서 나온 살아남기 위한 지혜다.
부시 대통령과 공화당 주도의 연방 의회는 이번 카트리나 재건은 과거와 같이 구태의연한 방식으로 풀지 않으려 하는 듯 하다. 걸프 일대를 경제 자유 지역으로 지정, 세금 감면과 관세를 인하하고 학교와 집을 잃은 학생과 주민들에게는 아무 학교나 주택을 골라 갈 수 있는 바우처 제공 등 소위 ‘작은 정부식 해법’을 내놓을 모양이다.
경영을 잘못해 적자를 내고 소비자를 만족시키는데 실패하는 기업은 도태되지만 행정을 잘못해 국민들에게 불편을 끼친 정부는 국민들에게 더 많은 세금과 예산을 요구한다. 그것이 기업과 정부의 근본적인 차이다. 이번 카트리나 복구 책임자들이 “문제에 돈을 던지는 것”으로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 믿는 오류에서 벗어나길 빈다.
민 경 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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