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대제 장관. 요즘 세계에서 가장 주목 받는 기업인 ‘국민기업’ 삼성전자 사장을 거쳐 대한민국의 가장 중요한 정부 부처들 중 하나인 정보통신부 장관까지 오른 인물. 민간부분과 공공부분 모두에서 요직을 두루 거치고 있는 이 분을 한국의 로버트 루빈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화려한 이력을 반영하듯 참여정부 최장수 장관으로 활약하던 그가 요즘 휴대전화 도청 문제로 공직생활의 진통을 겪고 있는 모양이다. 이분의 정치 이야기에 필자는 관심이 없으나 이 분의 젊은 시절 한 일화는 눈여겨 봄직하다.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세계 최고의 공과대학 스탠포드에서 전자공학 박사학위를 받은 진 장관은 80년대 초반 세계 최고의 반도체 기업이었던 IBM에서 잘 나가는 연구원이었다.
당시 트랜지스터 라디오 같은 기초적인 전자제품을 생산해 회외에 내다 파는 사업을 하던 삼성은 야심찬 반도체 사업을 시작했고 이에 따라 미국에서 활약 중인 한국 엔지니어들을 스카웃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삼성에서 입사 제의를 받은 진장관은 미국에서의 안정된 생활을 버리고 한국행을 결정한다. 당시 진 장관을 아끼던 미국인 교수들과 선배 연구원들은 지금 제 정신이냐며 그의 삼성행을 만류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때 진 장관의 답변이 압권이다.
“I will swallow Japan.”
그리고 결국 진장관은 92년 세계 최초 64메가 D램 개발을 진두지휘 하며 반도체로 일본을 삼 켰다.
20년이 지난 지금 한국에는 고급두뇌의 해외유출이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삼성전자 등 한국의 주요기업들은 미국 IT경기가 살아날 기미를 보이면서 인력이탈에 비상이 걸렸다고 한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에 따르면 한국의 92년 두뇌유출지수는 7.3이었으나 10년 사이 지수가 2.7포인트나 떨어지면서 2002년에는 4.6을 기록했다. 2002년 한국의 우수 인력 10명 가운데 반도 안 되는 단 4.6명만이 한국에 남고 나머지는 모두 해외로 향했다는 이야기다.
과학고와 서울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스탠포드 전자공학 박사과정을 마친 필자의 한 친구는 얼마전 미국 기업에 취직했다. 필자가 진장관 일화를 이야기하자 친구는 비웃었다. 친구는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이 전혀 없는 듯 했다. 진장관 시절에 비해 월급이야 요즘 한국 회사들이 더 줄지 모르 겠다.
그러나 그 시절에 비해 큰 차이점이 있다. 진장관이 한국행을 결심할 때는 비록 경제적 불확실성이야 더 컸겠지만 또다른 무언가가 있었을 것이라고 친구는 이야기 했다. 요즘 한국 엔지니어들은 절대로 얻을 수 없는 무엇인가가. 한국의 반도체 산업, 그리고 나아가서 한국 경제의 미래가 본인의 어깨 위에 있다는 그리고 국가와 국민이 자기를 믿고 있다는 그런 책임감과 사명감 말이다.
그러나 요새 한국에서 엔지니어의 사회적 위치는 어떠한가? 죽어라 공부해서 국내 최고의 고등학교, 대학교와 세계 최고의 대학원을 졸업했지만 어렸을 때 외국에서 살다와서 영어 좀 한다는 이유로 외국계 금융회사에 취직한 친구들에 비해 사회적 지위는 낮다. 고등학교에서 대학 진학 시 과학자의 꿈을 접고 치의대로 진학하는 친구들을 보고 필자의 친구는 비웃었다. 18살의 청년이 사람의 이빨로 도대체 어떤 순수를 꿈꾸겠다는 것인지. 그러나 10년이 지난 지금 그들은 엔지니어에 비해 업무시간은 반이고 수입은 두배다.
한국은 제조업 수출이 GDP의 4할을 차지하는 특이한 경제구조를 가진 나라다. 고급 엔지니어들 얼마나 유치하느냐에 우리의 미래가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1세기에는 더 이상 애국심만으로 인재를 잡아둘 수 없다고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그러나 경제적 보상만으로도 인재를 잡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한국 경제의 미래가 걱정스럽다.
김영무
세계 은행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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