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그룹이 현대아산 김윤규 부회장의 내부 비리를 문제삼아 대표이사직을 박탈한 후 현대에 대한 북한의 압박이 가중되고 있다. 처음에는 금강산 관광 규모를 과거의 절반으로 축소하더니 이어 앞으로 개시될 개성관광 사업권을 롯데관광에 주겠다고 제안하고 나섰다. 개성 관광과 백두산 관광 사업권은 지난 7월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북한의 김정일로부터 직접 언약을 받아 현대의 독점권이 인정된 상태인데 북한이 김윤규 사건을 빌미로 이를 뒤집어버린 것이다.
김윤규 현대아산 부회장은 고 정주영 회장과 정몽헌 회장 시절 현대의 대북사업을 총괄한 최측근 인물이다. 그에 대한 현대 내부의 인사조치가 상당한 비리사실 때문인지 또는 기업의 헤게모니 교체 이후 세력구도의 정리를 위한 것인지 그 속사정은 알 수가 없다.
또 그가 대북활동을 통해 북한에 어떤 인맥을 만들어 놓았는지도 알 길이 없다. 그러나 북한이 일개 회사의 인사문제를 구실로 이미 약속한 사업 대상을 제멋대로 바꾸겠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북한이 이처럼 기업체의 인사까지 간섭할 수 있게 만든 것은 한국정치의 책임이라고 할 수 있다.
5년전 장충식 대한적십자사 총재가 한 인터뷰에서 “북한에는 자유가 없다”는 말을 했다가 북한의 압력으로 사임했고 그 다음해 홍순영 통일부장관이 남북장관급 회담이 결렬된 후 북한의 해임 압력으로 결국 장관직을 사임했다. 현재 현대가 겪고 있는 북한의 간섭은 현대만의 문제가 아니라 대북경협에 나서는 모든 기업이 겪게될 사태라고 볼 수 있다. 북한이 원래 남한의 경협 파트너로 잡았던 상대는 통일교였다.
그런데 DJ정부 시절 남북정상 회담을 계기로 현대가 북한 퍼주기에 앞장을 서면서 경협 파트너가 현대로 바뀌게 된 것이다. 북한은 더 큰 이익이 있을 때는 언제나 파트너를 바꿀 것이기 때문에 이번 사건이 관광사업의 다원화, 경쟁화를 시도하기 위한 것이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
중국이 처음 개방하여 외국의 기업을 받아들일 때 많은 한국의 중소기업들이 공장을 중국으로 이전하는 바람이 불었다. 한국보다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인건비가 싼 데다 무한정으로 큰 잠재시장을 직접 상대할 수 있다는 계산 때문이었다. 한국에서 자재를 들여다 공장을 짓고 기술자를 들여오고 현지 중국인을 종업원으로 고용하여 물건을 생산했다. 그러나 몇년이 못 가서 중국에 진출했던 중소기업들이 돈을 벌기는 커녕 알거지가 되어 한국으로 철수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 이유를 들어보니 아주 간단했다. 외국기업에 대해서는 일반 중국기업과는 달리 중국인 종업원의 임금과 베네핏을 선진국 수준으로 지불하도록 규정하고 노조활동을 지원하여 기업을 압박해 갔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사업이 힘들다고 하면 공장을 철수해도 좋다고 하는데 공장을 뜯어서 배에 싣고 와 봤자 고철값이 수송비도 나오지 않기 때문에 그냥 버려둔 채 철수했다는 것이다. 그간 중국인들은 기술마저 익혔으니 공장시설과 기술을 한꺼번에 공짜로 얻게 된 것이다. 한국회사는 결국 경쟁자만 키워놓고 온 셈이었다.북한이 그간의 관광사업에서 관광업에 대한 노하우와 사업 마인드를 갖게 되면서 관광업을 직접 챙겨보고 싶어진지도 모른다.
앞으로 대북경협이 가속화 하면 남한의 기업들이 북한에 투자하여 공장을 짓고 기술자를 투입하여 북한인 종업원을 훈련하게 될텐데 중국과 같은 짝이 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더구나 대기업들이 진출하여 대형 사업을 벌이고 고도의 기술을 이전하게 되면 북한은 무슨 정치적 구실을 만들어 남한의 기업을 내쫓고 재산을 모두 접수해 버릴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다고 한국정부가 남한의 기업을 보호해 줄 수 있을까. 북한에 질질 끌려다니는 한국의 정치인들에게 그건 기대 조차 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므로 대북경협이란 구실로 북한에 돈을 투자하고 기술을 가르쳐 주는 일은 매우 조심해야 한다. 남북경협은 남북관계의 특수 상황, 즉 남북 화해를 추구한다는 정치적 목적 아래 이루어지는 왜곡된 경협관계이기 때문이다.
현대 사태가 주는 교훈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대북사업이 무슨 떼돈이라도 버는 사업인 줄 알고 경쟁적으로 달려들었다가는 돈 잃고 쪽박 차는 사태 뿐 아니라 국가적 재앙을 불러올 수도 있다. 대북경협의 함정을 극력 경계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기영
뉴욕지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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