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은 꿈꾸고 준비하는 자들의 몫입니다
광복 60주년 기념 학술심포지엄: 한반도의 통일을 바라보며(2)
◆한국정부의 통일방안과 미주 한인교회의 역할
정상기/ 주SF총영사
이승만 대통령 시절 한국정부는 북한정권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고 북한지역을 실지회복 대상으로 간주했다. 장면 정부는 북진통일론을 폐지했으나 유엔 감시하의 남북 자유총선거를 통일정책의 기조로 제시함으로써 기본적으로 이승만 대통령의 통일정책과 같은 맥락을 유지했다.
박정희 정부 시절 초기에는 상대방의 체제를 부정하면서 대결로 일관하다 1970년대 초반 미·중 화해 등 동서냉전 조정기에 접어들면서 새로운 변화를 맞게 됐다. 박 대통ㄹ은 1970년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남북한 간 선의의 경쟁을 촉구하고 인구비례에 의한 남북한 자유총선거 실시를 제안하는 평화통일구상을 발표했다. 그후 1971년에는 남과 북이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에 의한 통일을 추진할 것을 골자로 하는 7·4 남북공동성명을 발표했다.
1982년 전두환 대통령은 통일헌법 제정에서 남북 총선거를 통한 통일민주공화국 완성에 이르는 ‘민족화합 민주통일 방안’을 발표했다. 1980년대 후반 냉전해체에 부응하여 노태우 대통령은 1988년 북한을 선의의 동반자로 간부하고 민족공동체적 관계로 나가자는 ‘7·7 특별선언’을, 그후 김영삼 대통령은 1994년 8월15일 ‘화해협력단계→남북연합단계→통일국가 완성단계’를 주내용으로 하는 ‘한민족공동체 건설을 위한 3단계 통일방안’을 발표했다.
1998년 김대중 대통령 취임후 대북화해 협력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해 남북정상회담과 각종교류 개시 등 남북한 관계에 커다란 물꼬가 터지게 됐다. 김 대통령은 한민족 공동체 통일방안의 제1단계인 화해협력단계 실현을 위해 북한에 의한 무력도발 불용, 남한에 의한 일방적 흡수통일정책 배제, 남북 간 화해협력 적극 추진을 천명했다. 한민족 공동체 통일방안에서 ‘남북연합’이라는 중간과정이 필요한 이유는 분단상황을 평화적으로 관리하면서, 경제 사회 문화분야의 민족공동체를 형성하고, 통일국가의 법과 제도를 마련하는 등 평화공존하는 가운데 교류협력을 통해 통일국가를 준비하려는 데 있다. 따라서 우리가 이루고자 하는 통일은 먼저 민족사회 통합이라는 사실상의 통일(de facto unification) 상황을 실현한 후 남북한 주민들의 정치적 합의에 따라 법적 통일(de jury unification)을 실현한다는 단계적 접근을 의미한다.
남북교류는 현 노무현 정부하에서도 상당한 진전을 이뤄, 지난해 교역액이 7억달러로서 한국은 중국에 이어 북한의 제2 교역상대가 됐다. 남북한 간에는 철도연결사업, 금강산 관광사업, 개성공단 협력사업 등 3대 경협사업이 착실히 추진중이다. 그동안 15차례의 장관급 회담, 120여회에 이르는 각종 회담이 개최됐고 작년부터 군사회담도 개최되기 시작하여 상호신뢰 증진에도 기여하고 있다. 민간교류도 증가, 2002년 1년동안에 1만명을 돌파한 두 작년에만 2만명 이상 규모를 넘어섰다.
현 참여정부는 다음과 같은 대북한 정책을 취하고 있다. 첫째, 남북한 신뢰관계를 계속 증진시키고 기존 합의사항을 구체화하고 발전시켜나간다. 둘째, 현재 휴전상태인 남북한 관계를 항구적인 평화체제로 전환을 위해 노력한다. 셋때, 북핵문제의 해결을 위한 노력과 함께 북핵문제 해결후 북한의 경제재건을 돕는 포괄적이고 구체적인 계획을 준비해나간다. 넷째, 실용주의적 남북관계 정착을 위해 노력한다. 아울러, 대북정책 추진에 있어 초당적 협력과 국민적 지지확보를 위해 계속 노력한다.
통일목표 달성을 위한 미주 한인교회들의 역할에 관해, 평소 저의 생각을 말씀드리겠다. 첫째, 남북한 화해협력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남북한 국민들간에 불신과 공포감, 적대감 또는 비하감 등 보이지 않는 마음의 벽이 제거돼야 한다. 둘째, 미주 한인교회들은 미국교회와의 연대를 통해서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제공에 있어 중심적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넷째, 동포 2세대들이 민족정체성을 잃지 않고 민족의 평화와 번영에 기여할 수 있도록 교육시키는 일이다.
◆이스라엘과 대한민국 : 성서 해석 방법으로서의 비교역사학
마빈 체이니 박사/GTU & SFTS 교수
나는 한국 광복 60주년에 열리는 이 Memorial 심포지움에 참여하도록 초대받게 되어 감사와 기쁨과 함께 나는 두 가지 근본적인 면에서의 두려움을 고백할 수 밖에 없다. 첫째로, 비록 대한민국과 한미 역사와 문화에 관한 나의 관심은 1970년대 이후로 진심이고 확고하지만, 대한민국의 문제에 대한 나의 지식은 기초적이다. 둘째로, 비록 구약학자로서의 나의 훈련과 경험은 여기에 제시된 성서연구를 어느 정도 믿을만하게 만들지만, 구약시대의 이스라엘과 근대이전의 대한민국에 대한 역사적인 비교는 학문적으로 전례가 없는 것이다. 둘 사이에는 거대하고 명백한 실제적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에 이러한 노력은 만일 비실제적이거나 처음부터 실패할 운명이 아니라 하더라도 기껏해야 색다르게 보일 뿐이다.
성경의 팔레스타인과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는 경작할 수 있는 땅이 상당히 작은 구획으로 나뉘어져 있다. 읍, 면은 다양한 지형적 방해물로 나뉘어져 있고 기후, 지형, 토지, 그리고 물질의 어떠한 차이에 의해 특징지어진다. 팔레스타인의 경우는 이집트이고 대한민국의 경우는 중국이다. 이집트와 중국의 주된 강의 구조는 먼 내륙지방과의 소통과 교통을 용이하게 했다. 동시에 이 구조는 커다란 강의 계곡을 자신들의 경작지로 삼기 위해 정치적 경제를 중앙집권화하여 통제하려고 하는 강력한 동기를 낳았다. 반면에, 이스라엘과 대한민국은 “종속 국가 형태”의 교과서와 같이 묘사된다. 두 나라의 정치적 역사의 시작부분은 더 크고 오래된 이웃의 압제 하에서 도시국가 형태로 다스려졌다. 더 넓은 영토를 다스리기 위해서 서로 다투면서 지역적인 힘의 중심이 후에 나타났다. 국가의 통합은 이스라엘에서는 다윗 왕국이고 대한민국에서는 통일신라이다.
보다 큰 지정학적인 위치는 이스라엘과 대한민국의 엘리트 파벌들의 지형적 경향을 고양시켰다. 성경의 팔레스타인은 더 인구도 많고 힘도 센 사회와 접해있었다. 팔레스타인의 정치적 경제 내에서 이러한 초강대국의 중요한 역할은 그들의 패배와 이스라엘과 유다의 국가 지도자들이 포로가 된 것으로 시작하지 않았다. 이러한 커다란 힘을 가진 나라들이 팔레스타인의 작은 나라들을 공공연하게 지배하기 훨씬 이전에도 그들은 초강대국의 이익이 만나고 충돌하는 교두보를 차지한 이 작은 나라들의 문제에 참견하기를 쉬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 하에서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그리고 다른 외국의 외교관들은 이스라엘과 유다 엘리트의 다양한 파벌들에 영향을 미치고자 했다. 그 엘리트들은 명백하게 힘이 센 외국과의 연계를 통해 그들의 국내적 영향력을 강화시키려고 하였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은 외국 동맹국들로부터 가능한 많은 자율을 확보하려고 하였다.
비슷하게 농업사회였던 대한민국의 분파는 동북 아시아에서 “고래 사이의 새우”와 같은 지정학적인 위치에 의해서 악화되었다. 대한민국은 지역적인 초강대국들, 중국, 후에는 일본 , 더 나중에는 러시아, 서유럽, 그리고 미국 ? 이 소유권을 주장하고 영향을 미치기 위해 각축하는 “지역”에 자리잡고 있었다. 어떤 한국의 엘리트 파벌과 보다 큰 외국의 힘과의 연관성은 때때로 극히 짧았다고 밝혀졌으나 그러한 연맹의 일반적인 모습은 대한민국 역사 내에서 지속되었다.
이스라엘과 대한민국에서 종교적인 이상은 그러한 분파주의의 역동성과 멀리 떨어질 수 없다. 구약 성경 원시역사의 각 네 부분은 이미 긴장과 갈등의 관점에서 짧게 풀이했다. 내가 믿기로 한국의 역사도 각각의 “세 왕국”이 각 나라의 역사를 기록했지만 모두 없어지고 오직 김부식의 삼국 역사에서만 있을법한 혼합물로 보존되었다는 사실에서 이미 나타난다. 세 왕조들에서 불교를 수용하는 주된 주도권은 불교가 왕권의 권위를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통치 제도를 강조하기에 적합하게 보였기 때문에 왕실이 가지고 있었다. 불교는 “통일신라에서 사상을 지배하는 시스템”으로 남아있었다.
불교는 고려사회의 일상에 통합되었고 그 문화적 성취를 구성하는 주된 청조적 힘이 되었다. 하지만 고려의 귀족 지도자들은 그들의 군대장군들에게는 매우 적게 포상하였기 때문에
무신정변이 일어났다. 이성계가 권력을 잡고 조선왕조를 건국했을 때 대한민국에서는 신 유교가 주도권을 잡은 시기였고 불교 건축에 대한 제한으로 인해 불교는 산으로 물러가 고립되었다. 조선 왕조의 마지막 시기에 대한민국 통치계급의 약함, 어리석음, 부패는 대한민국의 기가 꺾인 하층민들이 그들의 문화를 하나로 묶는 것에 대한 믿음을 포기하게 했다. 대한민국 고유의 종교인 천도교의 발흥은 하나의 답을 주었다. 구시대로부터 떨어져 나와도 거의 잃을 것이 없다고 여긴 다른 하층민들이 초기 개신교의 회심자의 대부분을 차지하였다.
한국에서 증가하는 공격적인 일본인의 존재는 개신교가 한국에서 더 자라는데 영향을 주었다. 일본 정부는 대한민국 국가 정체성과 항일운동과 연결될 수 있는 대부분의 기관들을 금지시키거나 제한했으나 서구 열강과 적대관계가 되지 않으려는 일본의 욕망은 교회를 폭발적으로 성장하게 했다. 그 결과로 교회는 비교적 드문 항일운동의 중심 중에 하나가 되었다. 이는 서구 종교와 민주정치 제도 안에서 대한민국의 병에 대한 대답을 찾으려는 많은 애국 지사들을 매료시켰다.
비록 어떤 부분에서는 개념적으로 사실이지만 대한민국과 이스라엘의 상황을 직접 비교한다는 것은 복잡한 역사적 사실들을 왜곡할 수 있는 매우 위험한 일이다. 특히, 1945년 이후 한국교회의 역사는 내가 여기에서 기술한 어떤 것보다 흥미롭고 중요하다. 하지만 나는 조직적이고 사회역사적 상황에서 대한민국 종교의 복수성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는 역학을 강조하려고 한다.
서방이 제 2차 세계대전이라고 부르는 황폐로부터 나타난 대한민국은 여전히 압도적인 농경국가였다. 전쟁 이후에 수많은 미국인 관리들에게 있었던 무지, 겸손한 체 하는 것, 태만, 이데올로기의 조작은 나라의 분단, 한국전쟁, 그리고 이승만 정권의 침체와 부패를 돕고 부추겼다. 그러한 배경과는 반대로 1960년대의 시작에 대한민국은 놀라운 국가적 부흥을 경험했다. 비록 이 시기의 처음에는 농경의 뿌리에 매우 가까웠지만 대한민국은 빠르게 산업화 되어갔고 어느 정도로는 국가의 재탄생이 이루어졌다. 다윗의 미증유의 성공이 흘러넘치는 Yahwist의 원기왕성한 본문들과 대한민국과 한국계 미국인 교회가 빠르고 놀라운 번성을 한 이러한 시기나 장소에서 특별한 공통점을 발견했다고 해서 뭐가 이상한가?
이스라엘과 대한민국 두 나라 모두 서로 다른 종교적 개념화들은 그들의 연합이라는 환경에서 볼 때 더 알기 쉽고 보다 의미가 있었다. 이러한 종교적 표현들 중 어떠한 진리에 대한 충실함에는 모든 것이 부분적이라는 것과 그것들이 표현된 환경에 의해서 제한되어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혼자서는 어떤 것도 모든 상황에 적합하거나 충분하지 못하다. 그러한 부분성은 아마도 신학의 문제일 것이지만 파벌 싸움의 죽어버린 저주가 아니라 변화시키는 대화의 장으로 서로를 부르기 때문에 그것은 또한 단순화할 수 없는 신학적 자산이다.
◆평화 통일과 한국교회의 역할
연규홍 박사/ 한신대 교회사 교수
한국교회가 해방 후 한국사회의 분단구조의 피해자이면서 가해자라는 것은 교회가 하나님 나라의 종말론적 실재로서 민족 분단을 극복하여 화해와 평화의 공동체를 이루지 못하고 오히려 분단 상황을 내면화하여 확대 재생산하였다는 뜻에서이다.
1단계 민주화와 인권운동: 민족 분단의 비극적 상황은 1960년 이후 한국사회를 남북간의 긴장을 고조시켜 계획적 경제개발과 권위적 권력구조를 창출하였다. 2단계 세계교회의 평화운동과 연대: 한국교회의 분단 극복을 위한 2단계의 노력으로는 5.18광주민주항쟁이 미친 세계교회적 영향으로부터 활발히 추진되었다. 한국교회는 1980년 민주화의 봄을 꽃피우지 못하고 좌절을 겪으며 분단극복의 문제가 단순히 남북한의 관계만이 아닌 세계평화에 관련된 문제라는 것을 인식하였다. 3단계 남북교회의 만남과 희년선포: 한국교회의 통일은 세계교회의 평화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한국교회는 1986년 9월 스위스 글리온에서 남북교회가 함께 모여 제1회 한반도 통일을 위한 협의회를 개최하고 평화통일의 원칙과 선교적 과제를 협의하였다. 이것이 1988년 2월 한국기독교협의회 총회가 채택한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 기독교의 선언”으로 종합되었다.
한반도 통일문제는 당사자인 남북한의 민족문제만이 아닌 동북아를 비롯한 세계평화의 문제이며 한국교회의 역사적 선교소명의 문제이다. 그렇다면 오늘 한국교회는 어떻게 세계평화와 밀접히 관련된 남북의 분단을 극복하고 민족 통일을 이루는데 기여할 것인가?
반전운동과 평화통일교육의 활성화: 2000년 6.15회담은 남북관계의 커다란 전환점이 되었다. 분단극복과 통일의 문제를 남북이 스스로 결정권을 가지고 자주적으로 해결하자는 시도였다. 그러나 이것은 냉혹한 국제정치의 이해관계의 변수 속에서 계속적으로 진행되어질 수
없었다. 교회는 하나님 앞에 민족과 세계를 책임질 공동체이다. 분단과 전쟁의 원인이 어디에 있건 오늘까지 분단과 전쟁을 끝내지 못하고 한반도에 긴장과 갈등이 존속하도록 하고 있는 것은 한국교회의 선교적 소명에 대한 직무유기요 나태이다. 분단구조를 극복하는 평화교육에 대한 커리큘럼과 교과내용등이 창의적으로 개발되어야 한다.
통일이후 민족국가 구상과 남북선교: 분단을 극복하고 남북이 통일을 이루는 방식은 결코
흡수통일이어서는 안된다. 현 정부에 들어서 대북관계는 대화창구의 다양화와 경제사회문화의 폭넓은 교류협력이 추진되고 있다. 한국교회의 북한 선교는 북한의 공식 기관인 그리스도연맹등 외부로 나타난 교회와 교회 지도자들을 불신하고 남한 교회의 선교구상을 북한에 심는 흡수식 선교인 북한 선교를 주장하여왔다.
평화는 통일의 방법일 뿐만 아니라 통일의 목적이다. 한국교회는 평화통일의 과제를 선교적 소명으로 받아들이고 통일이 단순한 지리적 통일이거나 정치적 통일이 아닌 희년정신에 기초한 정의와 평화가 넘치는 민족공동체를 형성하는 통일이어야 한다. 지금부터 120년 전 한국교회는 격동하는 근세역사에서 반봉건 개화와 반외세 독립의 민족적 과제를 선교적 소명으로 삼고 한국사회의 나아갈 길을 밝혔다. 오늘도 한국교회는 지난 세기의 냉전시대의 유물인 민족분단을 극복하고 평화통일을 이루어야 할 역사적 과제를 세계평화실현의 선교적 과제로 삼고 다시 한번 하나님의 소명에 응답해야 할 것이다.
◆미주 한인교회와 통일신학-통일교육-통일선교
조은석 박사/ 데일리시티 금문장로교회
이 글을 항일투사 출신으로서 평양 형무소 복역 중 해방을 맞았고, 가난한 목회자로 살면서 평생 두고 온 가족이 있는 북쪽을 바라보고 눈물기도를 드린 존경하는 아버님 조종희 목사님과, 그런 힘든 아버님을 받들고 살면서 마지막까지 아버님의 구국교회 헌신자로 살아오신, 지금은 병상에 계신 사랑하는 어머님 김필규 사모님께 바칩니다.-
남북의 평화로운 통일은 가능한가? 부정적인 대답을 품고 있는 질문은 대체로 이렇다. 남북한 내부에 얼마나 많은 실질적인 지도력을 행사하는 계층의 사람들이 통일을 원하는가? 새로운 세대는 통일을 부담스럽게 여기지 않는가? 엄청난 영향력을 미칠 한반도 주변의 강대국들이 통일을 원하는가?
기독교 신앙은 가능성이 아니라 당위성으로부터 출발한다. 당위성은 하나님의 뜻이다. 누구보다도 한민족이 통일소망을 품어야 한다. 힘을 모아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그래서 ‘하나의 소원’을 공유하여 품울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열강들의 정치적 이해를 포함한 모든 여건들을 움직여야 한다. 당위성이 가능성을 이끌어가야 한다.
성경의 이스라엘은 한반도 역사와 공통점이 많다. 분단된 이스라엘의 통일이라는 신학적 주제가 성경 내에 차지하는 위치점검을 통일신학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통일은 대단히 성경적인 주제다. 요시야의 종교개혁은 종교적 통일 외에 정치적 통일이라는 열매까지 부산물로 얻었다. 이후 구약에서는 메시야니즘이 거론될 때마다 요시야가 일시 성공시켰던 ‘남북통일’이 비전으로 제시되었다(참고. 에스겔 37:15-28). 하나의 왕 다윗이 통일된 이스라엘을 영원히 통치하게 되는 그 날이 곧 올 것이라는 내용이다. 신약의 궁극적인 증언은 메시야니즘에 대한 대답이다. 나사렛 예수님께서 바로 그 메시야라는 것이다.
구약을 역사로 보면 이스라엘 역사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신약의 교회는 새 이스라엘이다. 솔로몬의 죽음 이후(922 BC) 이스라엘은 분단되었다. 이집트가 큰 역할을 했다. 여로보암을 지지하여 북 이스라엘을 세우도록 도운 것이다.
요시야 개혁의 성공은 남북통일로 나타났다. 다윗-솔로몬 이래 최대의 영토를 확보했다. 경제적 번영도 이룩되었다. 종교적 성공이 세속적 성공을 이끌로 온 것이다. 이 원칙은 적어도 하나님의 나라, 즉 하나님의 통치 영역에서는 맞는 말이다.
개혁된 교회(The Reformed Church)는 항상 개혁되는 교회(The Reforming Church)여야 한다. 교회개혁의 중심은 아무래도 “예배개혁”이다. 예배가 살아야 교회가 산다. 교회 부흥의 기본은 예배의 순수성 회복이다. 신령(성령)과 진정(말씀)이 그 중심이다. 예배가 살아야 통일을 주도할 수 있는 ‘저력’을 확보할 수 있다. 예배가 살아있는 교회는 부흥한다.
부흥은 개혁을 필요로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늘 새롭게 개혁되는 교회는 부흥한다. 형식적 예배가 아니라, 신령과 진정의 예배여야 한다. 참된 예배는 억압과 착취를 정당화하지 않는다. 참된 예배자는 하나님을 두려워한다.
예배 중에 하나됨을 경험한다. 시편 133편의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은 예배의 컨텍스트다. 진정한 예배는 하나님 한 분을 섬기며 말씀을 따라 온전히 살아가는 가운데 드릴 수 있다. 따라서 통일은 참된 예배공동체가 주도한다.
한국교회는 이미 통일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를 시작했다. 1988년 2월 29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는 “민족의 통일과 평화에 대한 한국기독교회 선언문”을 발표했다. 여기서 다룬 가장 중요한 이슈는 “기독교가 왜 통일을 선교의 과제로 삼는가?”였다. 또한 민족의 통일을 위해 기독교가 제시하는 원칙은, 1. 민족자주, 2. 평화우선, 3. 신뢰와 교류우선, 4. 민주적 참여, 5. 인도주의 등이다.
또한 교회의 실천사항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1. 평화교육과 통일교육 2. 이산가족교류 3. 남북교회간 교류 4. 평화와 통일을 위해 동북아시아와 세계교회와의 유대 강화. 이 KNCC의 선언문은 핵무기 철거, 미군철수 등의 민감한 내용까지 포함하고 있어서 보수 교회들은 물론 정부로부터도 눈총을 받았다. 1996년 12월 17일, 보수 단체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는 “한국교회의 통일정책
선언문”을 발표했는데, 통일한국: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지배하는 민족공동체, 통일방법: 이산가족문제 해결 등 다각적인 남북교류협력을 통한 평화적 방법, 실천과제: 통일을 위한 교회교육 북한동포돕기 탈북자 돕기 등 여러 문제를 수용한다.
이 두 가지를 통일교육과 통일선교로 종합-압축할 수 있다. 1. 통일을 위한 교육이 시급하다. 통일의 당위성 교육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남북의 격차가 벌어진다. 교육이 강화되지 않으면 일체감은 점점 상실될 것이다. 2. 기독교는 통일을 선교의 과제로 삼아야 하는데, 선교의 내용은 다각적인 남북교류협력과 북한동포 돕기, 탈북자 돕기 등을 포함한다.
미주교회의 역할을 보면, 하나님의 통치를 가장 효과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다윗 같은 지도자, 요시야 같은 개혁가가 나와야 한다.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된 나라를 이끌 수 있는
통치력을 지닌 지도자를 바라보아야 한다. 그런 지도자상을 기대하는 교육을 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진정한 지도자는 ‘목회적 마인드’를 품어야 한다. 지난 날의 한국교회가 그랬듯, 한반도의 통일이라는 엄청난 과제를 맡을 지도자는 교회에서 길러내야 한다.
미주 한인교회는 미국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존재하고 있다. 미국은 다인종이 공존하는 사회다. 한인 2세들은 다인종 사회에서 교육 받고 직장생활 하고 있다. 저들의 언어와 문화는 다인종적이다. 게다가 상당한 수의 한인 2세들이 타인종과 결혼하여 자녀를 낳는다. 한인교회는 자연스럽게 다인종 교회로 가야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다인종화 하는 한인교회가 한반도 통일에 대단히 긍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다.
통일선교는 일종의 ‘민간외교’의 역할을 맡는다. 행정부가 정책적 결정을 내리기 훨씬 이전에 민간교류로서 마음이 열리고 삶의 물꼬가 터져야 한다. 정치-외교적 전망으로는 도저히 ‘가능성이 없는 사안’일지라도 민간 차원에서 공감대가 형성되고 나면 정책은 자연히 그 길을 따를 것이다. 단일민족에 단일 언어권인 한국과 한국교회가 하기 어려운 일을 미주 한인교회가 맡는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대단히 귀한 사명이다.
미주 한인교회의 통일운동은 이전 세대의 독립운동과 맥이 닿아 있다. 이제 나는 다음과 같이 미주한인교회의 통일운동 방안을 제안한다. 그것은 ‘통일신학’에 바탕을 둔 ‘통일교육’과 ‘통일선교’다.
샌프란시스코는 현재 20여 개의 회원교회가 있다. 이 중에 절반이 넘는 14개가 자체 교회를 소유하고 있다. 놀라운 수치다. 미국 전역에 4,000개의 한인교회가 있다고 했다. 상당한 수의 교회가 자체 예배당을 마련했다. 전체적으로 보면, 한인은 다른 소수인종에 비하여 많은‘교육공간’을 확보한 것이다. 어려운 이민 생활 중에 교회당 마련에 최선을 다한 결과다. 이제 이 공간을“예배와 성경교육” 외에 ‘통일교육’의 장으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미주에 있는 한인교회는 그 위치적 의미 또한 크다. 미국은 한반도 통일에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 독일 통일의 경우도, 미국과의 관계가 중요했다. 미주 한인교회는 미국사회에 뿌리박고 있다. 미국은 교회의 목소리를 무시하지 않는 전통을 가지고 있다. 한인교회는 미국 주류교회와의 관계를 발전시켜야 한다. 그리고 한인 기독교인들의 목소리를 전달해야 한다. 교회는 선교 없이 존재할 수 없다. 선교는 교회의 존재이유다. 미주 한인교회의 ‘단합’ 문제는 종종 거론되었다. 선교는 주님께서 교회에 주신 지상명령이다. 따라서 ‘선교’는 흩어진 교회들을 하나로 모으는 좋은 주제다. 교회가 통일을 생각하고 통일을 위해 어떤 일을
한다면, 그것은 선교의 일환으로서다.
현재 한국교회 혹은 미주한인교회의 선교는‘통일을 염두에 둔 선교’(통일선교)와 ‘통일을 염두에 두지 않은 선교’(비통일선교)로 나눌 수 있다. (통일선교와 비통일선교는 전적으로 이번 심포지엄을 위해 신조한 용어다. 문자적으로만 이해하여 선교의 ‘질’을 차별화를 시도하는 것은 전혀 내 의도와 다르다.)
통일선교는 ‘북한선교’를 중심으로, 한반도 정세에 영향을 끼치는 국가에 대한 선교를 포함한다. 비통일선교는 통일선교의 범주를 벗어나는 국가에 대한 선교를 말한다. (넓게 보면, 여기 ‘비통일선교’도 한반도 통일에 우회적이나마 영향을 미칠 것이다.) 미주 한인교회가 교회의 선교 초점을‘통일선교’로 ‘전략적으로’ 수정할 것을 제안한다. 이는 중심점의 이동을 말하지, 비통일선교를 포기하라는 말은 아니다. 조금 더 통일을 생각하고, 앞으로는 통일을 염두에 둔 선교에 비중을 더하자는 말이다. 미주 한인교회가 통일선교에 초점을 둔다면, 이
흐름은 전세계에 퍼진 한인교회는 물론 한국 내 교회들에 영향을 끼칠 것이다. 북한 선교, 주변국 선교, 탈북자 선교, 중국 선교가 필요하다.
◆한국통일의 소망과 성경의 교훈(총평)
김윤국 박사/ 전 영락교회 담임목사
우리는 통일노력의 목표를 분명히 밝히며 나가야 할 것이다. 민족통일을 향하는 우리의 노력이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한 가닥이 되어야 할 것이다. 남북통일의 과업은 사람의 계획대로 이루어질 것은 아니다. 민족통일을 이루려는 일이 한인교회의 유일한 과업은 아니다. 교회는 세상에서 죄인인간의 개혁을 맡은 하나님의 기관이다. 이 기관의 많은 책임 중에 통일을 위한 노력은 한 가닥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교회가 균형있게 충실하게 하나님의 사역을 담당하기 위하여 통일업무에 주력할 교회부속기관의 설립을 제안하고 싶다. 오늘 훌륭한 강의를 주신 손님 강사들과 각 분야에서 책임으 담당하신 여러분과 오늘 이 자리에 참여하여 진지하게 청취하고 토의해주신 여러분과 본 심포지엄을 주최하고 후원하신 여러분에게 감사의 말끔을 드린다. 하나님의 축복하심을 기원한다. <정리-정태수 기자>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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