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를 괴롭혀온 자연 재해 중 가장 죄질이 나쁜 것은 어떤 것일까. 역사적으로 보면 지진이다. 1556년 중국 산서성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83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돼 있다. 두 번째로 많이 죽은 것도 역시 중국으로 1976년 당산 대지진 때 75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중국 같이 인구가 조밀한 나라에서는 지진이 제일 무섭지만 미국 같이 허허벌판이 많은 나라에서는 지진이 나도 인명 피해는 의외로 적다. 1906년 리히터 진도 8.3으로 샌프란시스코를 폐허로 만들었던 대지진도 인명 피해는 667명에 불과했다. 한인들 기억에 생생한 1994년 노스리지 지진 때 LA 전체가 난리가 났지만 이로 인한 사망자는 61명뿐이다.
미국에서 자연 재해로 가장 많이 사람이 죽은 것은 1900년 허리케인이 텍사스 갤비스턴을 강타했을 때다. 인구 3만6,000명이던 이곳 주민의 1/6인 6,000명이 태풍과 홍수로 익사했다. 인근 지역 사망자 2,000명까지 합치면 인명 피해가 8,000명이 넘는다. 카트리나로 인한 사망자가 현재까지 수백 명 선인 것을 감안하면 갤비스턴의 피해 규모가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경제적 측면에서 보면 카트리나는 미 역사상 최악의 자연 재해로 불릴 만 하다. 처음에는 피해액이 250억 달러 정도로 추산되더니 이제는 400억 달러로 불어났다. 600억 달러는 될 것이란 분석도 있다. 지금까지 가장 큰 피해를 냈던 1992년 허리케인 앤드루의 2~3배에 달하는 숫자다.
이처럼 엄청난 피해를 낸 카트리나가 미국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를 놓고 전문가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하다. 일부에서는 이로 인해 건축 자재와 개스 값등 물가가 오르고 있다며 이것이 인플레와 함께 소비자들의 호주머니를 얇게 해 내수 부족으로 인한 불황을 초래할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 스탠더드&푸어사는 내년 불황이 올 가능성을 12%에서 25%로 높여 잡았다.
그러나 또 다른 쪽에서는 오히려 이것이 경기 촉진 효과가 있다는 주장이다. 카트리나로 인해 발생한 피해를 복구하는데 천문학적 돈이 들어갈 것이기 때문에 침체 조짐을 보이고 있던 미국 경기는 오히려 활기를 되찾게 될 것이란 것이다. 개스 값 등 일부 원자재의 폭등도 일시적인 현상으로 시간이 지나면 원상 회복될 것으로 이들은 보고 있다. 실제 허리케인으로 인한 석유 및 정유 시설 피해가 예상보다 크지 않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한 때 배럴 당 70달러를 넘어섰던 유가는 이제 63달러 선으로 떨어졌다.
어느 쪽 주장이 맞는 것일까. 정답은 둘 다이다. 연방 정부가 수백 억 달러를 쏟아 부을 모양이니까 단기적으로 경기 부양이 이뤄질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정부가 무슨 산타클로스도 아니고 그 돈은 국민들로부터 세금으로 거둬들인 것이거나 아니면 채권 발행을 통해 미래의 납세자에게 빌린 것이다. 다시 말해 다른 분야에 유용하게 쓰여질 돈이 정부에 의해 강제로 뉴올리언스 일대 재건에 사용됐기 때문에 가시적으로는 경기가 부양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플러스 마이너스를 따져 보면 제로인 것이다.
한 나라의 경제를 좌우하는 것은 천연 재해가 아니라 그 나라의 정치 경제제도다. 플로리다와 쿠바는 똑같이 매년 허리케인에 두들겨 맞지만 주민들의 생활 수준은 천양지차다. 두 국민들이 살고 있는 나라의 체제가 다르기 때문이다. 허리케인 피해가 발생했다고 경제가 좋아지고 국민이 잘 살게 된다면 허구헌 날 폭풍 피해를 입는 쿠바는 지상 낙원이 돼 있을 것이다.
이번 카트리나의 총 피해액을 600억 달러로 잡더라도 이는 미 연 GDP 12조 달러의 0.5%에 불과한 액수다. 반면 가만 놔두면 파탄날 것이 분명한 소셜 시큐리티 펀드의 대국민 부채 총액은 12조 달러에 이른다. 어느 쪽이 미국 경제에 더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인지는 불문가지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자연 재해 때문에 한 나라가 잘 되고 망하고 하는 예는 극히 드물다. 아무리 천재가 크더라도 인재가 끼치는 해악을 넘지 못하기 때문이다. 미 국민이 진정으로 걱정해야 할 태풍 피해는 딴 곳에 있다.
민 경 훈 논설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