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봉(수필가, 환경엔지니어)
벗이여, 상하이의 외탄(外灘)에 섰습니다. 외탄은 아편전쟁으로 중국이 개방된 직후 서양 열강들이 분할 점거했던 조차지(租借地)입니다. 황포 강변을 따라 1920-40년대 유럽 제국들이 다투어 세웠던 건축물들이 현란한 의상을 걸친 무도회의 귀족들처럼 도열해 있습니다. 가이드 유(侑)양은 당시 이 특구는 개와 중국인 출입이 금지된 곳이었다고 씁쓰레 웃었습니다.
그러나 낡은 제국주의의 잔재는 여기서 끝나고, 신천지 새 상하이가 황포강 너머에서 오색 무지개처럼 떠오릅니다. 470미터 하늘로 치솟은 아시아 최고 높이의 동방명주탑의 원주기둥과 마치 동양식 절탑을 닮은 88층 금모빌딩이 주는 이미지는 역동(力動) 그 자체입니다. 넘실대며 도도히 흐르는 황포강의 힘이 상하이의 동력원처럼 느껴집니다.
잘 아시다시피, 중국의 놀라운 경제성장은 등소평 때문이지요. 그는 유명한 백묘흑묘론 - 흰 고양이든, 검은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좋은 고양이란 실용주의에 입각한 생산력증대를 주창했습니다. 혁명적 이념을 강제로 적용한 모택동의 대약진 운동이 실패하는 것을 보고, 그는 경제 개혁과 개방의 신념을 굳히지요. 그 결과 연 10%의 고도성장의 신화를 낳게 됩니다.
K형, 등소평의 현실적 경제관은 사천 지방의 한 토호였던 부친의 영향인 듯 합니다. 신사조에 일찍 눈뜬 그는 16세 때 프랑스로 유학한 후, 대장정 때 모택동과 생사고락을 같이 하지요. 그 후, 그는 권력 중심으로 부상했다가 주자파(走資派)로 몰려 3차례나 쫓겨납니다. 특히 문화혁명 땐 트럭터 수리공으로까지 내몰리지요. 그러나 모택동이 죽은 후, 결국 그는 화국봉을 몰아내고 실권을 장악합니다. 그는 중국이 낳은 불굴의 거인이었습니다.
아침 일찍, 우리 일행은 상해임시정부 옛 유적지를 찾아갔습니다. 단체여행 일정을 비껴서라도 꼭 찾아가야 동포 된 도리라고 앞장서시는 최 선배님을 따라 모두 나섰습니다. 청계천 교각 밑을 방불케 하는 매연 자욱한 도심을 뚫고 상하이 총알택시는 마당로에 있는 초라한 3층 벽돌집 앞에 우리를 부려놓았습니다.
1926년에서 32년 윤봉길 의사의 의거 직후까지 이 곳이 임정의 거점이었다고 합니다. 개인 집을 약간 늘려 놓은 듯한 건물은 그 당시 핍절(乏絶)했던 상황을 백 마디 말보다 더 절실히 웅변해주고 있었습니다. 좁은 복도를 헤집고 이층구석에 놓여있는 김구 선생의 작은 나무 침상을 쓰다듬으며 우리는 아무 말 하지 못했습니다.
벗이여. 어느 역사학자는 김구 선생과 등소평 두 분이 역사적 위인이 될 수 있었던 공통된 이유로 불굴의 신념과 겸손한 인간미를 꼽았습니다. 네 소원이 무엇이냐 라고 하나님이 물으시면 나는 서슴지 않고 대한 독립이오 하며 초지 일관 독립에 몸 바쳤던 백범 김구. 둥근 안경에 앞니 거의 모두를 드러내고 푸근하게 웃는 모습에서 강직한 신념과 함께 민족을 향한 따뜻하고 겸허한 사랑을 느끼게 합니다. 그는 집권에 집착한 이승만이나 김일성과는 달리 통일 정부를 위해 남북을 함께 아우르려다가 흉탄에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등소평도 신념의 지도자였습니다. 모택동과 사인방이 주도한 문화혁명을 인정만 했어도 중국 대권을 장악할 수 있었지만 그는 단호히 거부했습니다. 그리고 숙청의 길을 택했지요. 한편 그의 인간미는 옛 전우인 주은래와의 남다른 우정과 실권한 임표, 사인방등을 너그럽게 다룬 그의 관용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이런 심성은 모택동과는 달리 천륜의 즐거움이 가득했던 그의 가정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어린아이 떠드는 소리를 훌륭한 음악이라고 좋아했고, 불구자 큰아들을 손수 목욕시키며 기뻐했던 촌부의 소박함을 지녔습니다.
백범이란 아주 평범한 범부(凡夫)란 뜻이지요. 사람은 얼굴 좋은 것보다 몸 좋은 게 낫고 몸 좋은 것보다는 마음 좋은 게 낫다고 하신 선생의 질박한 마음은 등소평의 그 것과도 참 닮았습니다. 황포 강물처럼 두 분의 강하고 꺾이지 않는 불굴의 신념이 민족에 대한 사랑, 역사에 대한 개방적 태도, 그리고 자신에 대한 겸허함에서 나온 것이란 평가는 참 옳다고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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