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고교 시절을 보냈다면 누구나 겪었던 지긋지긋한 `고 3병’. 미국에도 물론 고 3병이라는 것이 있다. 운동선수가 오프시즌 동안 운동이나 훈련을 게을리 하면 시즌 개막 후 제대로 능력을 발휘할 수 없는 것처럼 고 3병을 어떻게 이겨내느냐에 따라 앞으로 대학생활, 나아가 사회생활의 성공을 내다볼 수 있다. 수험생과 학부모들, 어떻게 고 3병을 이겨내야 할까.
미국에서는 `고 3병’을 `Senioritis’라고 부른다. 보통 고교 졸업반인 12학년 때 나타나는 증상을 일컫지만 대학 졸업을 앞둔 학생들에게 적용하는 용어로 사용되기도 한다.
고교 12학년 때 겪는 미국의 `고 3병’은 한국과는 다소 다른 양상을 띄는 것이 특징이다. 가을학기 시작과 동시에 대학입학 신청서 제출 준비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와중에는 합격에 대한 불안감이, 봄 학기가 되면 대학에서 날아든 합격 통보를 받아든 뒤 찾아오는 안도감 때문에 학
업에 소홀하게 되는 증상이 가장 일반적인 케이스.
불안감이든 안도감이든 실제로 몸은 교실에 있다 해도 마음은 온통 다른데 정신이 팔려 공부에 집중하지도 못하고 학습 동기나 의욕도 상실한 채 오랫동안 방황하는 경우가 많다. 증상이 심해지면 이러한 내면의 방황이 거친 행동으로 표출되기도 하고 급기야 성적 하락으로 이어지기
도 한다. 학습의욕이 없다보니 당연히 숙제도 게을리 하고 과제물 제출 기한을 맞추지 못해 쩔쩔 매거나 해야 할 일들을 자꾸 미루고 쓸데없는 외출이 잦아지기도 한다. 점점 깊은 수렁 속으로 빠져들면서 결국 슬럼프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학생들도 속출한다.
이럴 때 수험생 자신은 물론, 부모나 가족 구성원들 공동의 노력이 요구된다. 물론 고 3병은 때가 되면 대다수가 겪는 과정의 하나로 여기는 것이 마음 편할 수 있지만 만약 증상이 오래 지속된다면 고교 생활에 지장을 초래하는 것은 물론, 나아가 대학에 입학한 후에도 학업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으므로 결코 간과해서는 안된다. 미 정신의학 협회(APA)는 `Senioritis’를 학습장애 및 행동장애를 유발할 수 있는 정신 장애의
하나로 구분하기도 한다.
일시적 주의력 결핍증(ADD·Attention Deficit Disorder)을 보이기도 하고 미래에 대한 불안, 대입 준비에 따르는 중압감, 합격에 대한 불안감, 전공학과 선택 등 중요한 결정을 앞둔 부담감, 불확실함, 나아가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자 하는 패배감과 무력감, 성공에 대한 부담감, 또래와의 경쟁, 자신의 의무를 다하지 못하고 있는데 대한 죄책감까지 더해져 발생하는 정신장애의 하나라는 것. 더불어 고교를 졸업하고 대학생이 되면 점차 성인으로 성장해 가는 과정에서 짊어져야 할 책임감이 부담스러워 무의식중에 나타나는 증상일 수도 있
다는 해석이다.
■고 3병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모든 일을 계획성 있게 실천하는 조직력이 필요하다. 하루하루 해야 할 일들을 정리하고 실천하는 습관을 유지해 나간다. 다음날 해야 할 일을 미리 정리하고 하루 일과를 마친 뒤에는 확인 정리하는 습관도 필요하다. 계획을 세울 때에는 현실 가능한 목표를 세워야 실천률도 높다는 점을 잊지 말 것. 이러한 습관들은 대학생활, 나아가 사회생활의 성공에 있어서도 필요한 항목의 하나다.
■또한 학생들은 목표를 상실하지 않도록 항상 중심을 잃지 않아야 한다. 뚜렷한 목표를 세워 놓고 앞만 보고 최선을 다해 노력해 나가야 한다.
■스트레스를 이겨내기 힘들 때에는 부모나 선·후배, 학교 카운셀러 등을 만나 솔직한 대화를 나누는 것도 심리적 안정에 도움이 된다.
■지역사회 봉사활동이나 교내·외 학생 클럽 활동에도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 그간 이어왔던 활동은 지금껏 해왔던 대로 그대로 유지한다. 대학 입학 신청서를 제출하기 위한 목적으로 참여했던 활동이라 할지라도 고 3때 쌓인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이러한 모임 활동 참여보다 좋은 것이 없다. 단, 하루하루 바쁜 일정을 보내더라도 모든 활동에 할애하는 시간은 균형 있게 배분하는 것도 요령.
■공부는 그 누구도 대신 해줄 수 없는 일인만큼 잃었던 학업욕구를 되찾도록 노력해야 한다. 시험준비도, 대학입학 준비도, 결국은 각자 개개인의 몫이라는 생각을 빨리 깨우쳐야 하며 깨우침이 늦으면 늦을수록 손해만 커질 뿐이다.
■무엇보다 자신의 불안감이나 두려움의 원인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본다. 구체적인 원인을 모르는 상태에서는 아무리 어떤 노력을 기울인다 해도 효과를 거두기 힘들 수 있다.
■또한 대학에서 합격 통보를 받고 난 뒤에는 나태해지지 않도록 특히 주의한다. 고교 졸업식이 열리는 마지막 그날까지 최선을 다해 하루하루를 충실히 보낸다는 약속을 자신 자신과 하도록 한다. 물론 지난 12년간의 고된 학업의 연속으로 지쳐 있는 상태고 대학에 합격만 하면 이를 보상받
고 싶은 심리가 들게 마련이지만 지나친 안도감으로 자칫 대학 합격이 취소 또는 보류될 수도 있기 때문에 주의한다.
실제로 어바나 샴페인 일리노이 대학에서는 지난해 약 25명의 예비 신입생에게 합격 취소를 통보했다. 이는 전년도보다 두 배 많은 숫자로 이들은 합격된 후 대학에 최종 제출한 고교 12학년 마지막 성적이 하락한 학생들이 대부분이다.
많은 대학에서는 합격생들이 마지막 제출한 고교 12학년 성적표에서 성적이 하락한 과목에 대해 합당한 사유서를 제출할 것을 요구한다. 가족이나 본인이 갑자기 아팠거나 집안에 큰 어려움이 닥친 경우 등은 용납될 수 있지만 학생 본인이 학업을 게을리 한 결과였다면 합격 취소나 보류로 전환되는 경우가 많다.
말하자면 대학에서 1차 발송하는 합격 통보는 일종의 조건부 입학을 허락한다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고교 12학년을 제대로 마감하지 못한 학생들은 대학 생활도 제대로 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대학 중퇴생의 60%가 대학 1학년 생활을 실패한 경우에 해당된다. 특히 대학 입학 경쟁이 점차 치열해지면서 대기자 명단에 있는 우수 학생들을 입학시키는 것이 고교생활 마무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무책임한 학생을 합격시키는 것보다 낫다는 대학의 판단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 듀크 대학처럼 합격 통보를 받은 후 이수한 과목 성적이 C학점 이하로 떨어질 경우 사유서를 제출토록 요구하는 대학이 있는가 하면 A학점에서 B학점으로 떨어진 경우에도 사유서 제출을 요구하는 까다로운 대학도 점차 늘고 있다.
■또한 대학 합격 통보를 받고 난 뒤 학업은 뒷전으로 미루고 풀/파트타임 일에 더 큰 비중을 두는 것 역시 학업 소홀의 일차적 원인을 제공하므로 피하도록 한다. 학교 결석이 늘어도 출석일수가 모자라 대학의 합격 취소 통보에 앞서 고교 졸업마저 불투명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뉴욕시에서는 장기 무단결석하는 고교생의 성적은 0점으로 처리하고 있다. 그간 상급 결석생이나 성적미달로 반복 수강하는 학생들에게 기본 성적을 보장해 주던 관행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고교 졸업 이전에 고교 과정을 모두 이수한 학생이라면 마지막 학기 때에는 인근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대학의 교양과목을 미리 수강해 학점을 앞서 취득하는 것도 대학 졸업시기를 앞당기고 학비도 절약할 수 있는 길이 된다.
<이정은 기자> juliannele@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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