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난 자연재해다. 그러면 그 다음에 오는 건 뭘까. 사회의 붕괴. 한 국가의 몰락. 아니면…. 국가의 몰락뿐이 아니다. 상황에 따라서는 문명의 소멸도 올 수 있다.
지난 연말 쓰나미 참사 때 한 전문가가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내용이다. 자연재해는 말할 것도 없고 때로는 아주 하찮아 보이는 미생물이 인류사의 흐름을 바꾸기도 한다는 거다.
B. C. 1600년 무렵, 그러니까 한 때 전설로만 알았던 트로이전쟁이 일어나기 3세기 전 강력한 화산 폭발이 있었다. 이 대폭발로 당시 미노아문명의 중심지 크레타 섬과 인근 해안이 엄청난 타격을 받았다.
이후 미노아문명은 급격히 소멸된다. 그리고 미케네 문명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14세기 유럽 인구는 3분의 1이 감소했다. 흑사병 때문이다. 아메리카 원주민은 백인의 총칼보다도 백인이 가져온 병균에 더 많이 희생됐다. 미생물이 인류사의 흐름을 바꾼 케이스다.
과학문명을 자랑하는 요즘 세상에도 통하는 이야기일까. 답은 ‘예스’ 쪽으로 기운다. 자연재해는 오늘날에도 한 지역사회의 정치와 역사를 바꾼 경우가 적지 않아서다.
1985년 멕시코시티에 대지진이 엄습했다. 이후 상황이 엉망진창이었다. 구출작업은 지지부진이다. 구호품은 중간에 사라지기 일쑤이고. 정권의 무능, 부패상이 여지없이 드러난 것이다. 결국 멕시코 역사에 한 획을 긋는 변혁이 발생했다. 제도혁명당의 71년 독재가 무너져 내렸다.
비탄에 젖어 구호품이 도착하기만 기다리고 있다. 그런 한편에서 약탈이 횡행한다. 절망적인 군상의 모습이 어지러이 비친다. TV화면을 통해 보이는 뉴올리언스의 상황이다. 그런데 하나같이 피부가 검다. 흑인밖에 안 보인다. 백인은 도대체 어디로 갔나.
‘허리케인은 두 차례의 거대한 파도를 몰고 온다’- 뉴욕 타임스의 데이빗 브룩스가 한 말이다. 무슨 의미인가.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휩쓸고 간 후 올 수 있는 상황을 말한 것이다. ‘정치, 사회적 후 폭풍’이 휘몰아칠 수 있다는 말이다.
누구나가 마음속에 그리던 도시였는지 모른다. 윌리엄 포크너가 창작생활을 하던 곳이다. 테네시 윌리엄스의 소설의 무대다. 남부의 옛 정서가 서린 미국의 문향(文鄕)이다. 때문인지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는 말을 들었다.
이 뉴올리언스에 수마가 덮쳤다. 그러나 예고된 재난이었다. 일찌감치 대탈출이 이루어졌다. 그건 그런데 화이트 아메리카의 엑소더스였다. 그리고 그 자리에 남은 건 빈곤과 절망과 공포뿐이다.
“카트리나가 미국 사회를 한 꺼풀 벗겼을 때 그 밑에 있는 모습이 흉하게 드러났다. 불평등이다.” 백인의 탈출이 이루어진 후 약탈, 총격, 살인만 난무하고 있는 뉴올리언스의 모습을 브룩스는 이런 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엄연히 두 개의 미국이 존재한다는 이야기다. 그 하나는 화이트 아메리카다. 다른 하나는 블랙 아메리카다. 블랙 아메리카의 모습은 그동안 잘 보이지 않았었다. 화이트 아메리카의 화사한 모습에 가려서다.
블랙 아메리카로 상징되는 미국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허리케인이 할퀴고 간 뉴올리언스에서다. 문화란 색깔로 채색돼 아름다워 보이던 도시가 하루아침 케이오스 상태로 변한 그 모습에서 뭔가 불길한 조짐이 엿보이고 있는 것이다.
“재난 가운데에 전해지는 감동의 이야기들은 항상 백인가정이 중심이 돼 있다. 흑인들은 주로 약탈자로만 비쳐진다. 물론 현실을 반영했다고 본다. 그러나 전 가족이 하나가 돼 고난을 극복하고 있는 흑인 중산층 가정도 얼마든지 있다. 이들의 모습은 안 보인다.”
시카고 트리뷴의 지적이다. 블랙 아메리카와 화이트 아메리카를 대조시켜 그 이미지를 고착화시키려는 듯한 TV매체에 대한 경고다. 미국사회에 깔린 미묘한 레이시즘을 고발하고 있다.
여전히 허리케인 카트리나 기사의 홍수다. 그 가운데 여기저기서 여러 이야기가 들려온다. 하나의 경고로. 요약하면 이렇게 정리되는 것 같다.
‘자연재해는 미국에서도 때로 정치, 사회의 흐름을 바꾸어왔다. 그 변화의 방향이라는 게 그런데 그렇다. 의도를 했던 안 했던, 소수계의 희생을 강요한 변화인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인종적 편견 탓이다’-.
역사는 자연재해 그 자체 보다 그 재해에 한 공동체가 어떻게 대응했는지에 더 많은 관심을 쏟는다. 한 역사가의 말이다.
이 재난을 미국은 무난히 극복할까. 잘 되리라고 본다. 미국의 위대성, 다시 말해 피부색을 초월한 자원봉사의 시민정신이 여전히 살아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옥 세 철
<논설위원>
sechok@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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