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TO 첩보기 주장
일간지 MK 특별기고 기내에 잇던 4t 폭발물 터져
사망자는 269명이 아니라 첩보원 29명뿐
옐친 정부, 한국에 가짜 블랙박스 전달
지난 1983년 9월 1일 발생한 대한항공(KAL) 007편 보잉여객기 격추사건은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첩보 활동에 나선 KAL기가소련 공군기의 요격을 받은뒤 KAL기 내부에 숨겨져있던 4t 분량의 폭발물이 터지면서 공중 분해된 것이라는 주장이 러시아 학자에 의해 제기됐다.
또 사망자 규모도 공식 발표된 269명이 아니라 첩보원 29명뿐이었으며 나머지승객들은 사전에 중간 기착지인 미국 앵커리지에서 전원 내렸다는 주장까지 덧붙여졌다.
알렉산드르 콜레스니코프 교수는 수년간 KAL기 격추사건을 추적하며 관련 당사자들을 인터뷰한 기록 등을 토대로 KAL기 격추 22주년을 맞아 지난 31일자 일간 ‘모스코프스키 콤소몰레츠(MK)’에 실린 특별 기고를 통해 이같은 주장을 내놓았다.
MK는 콜레스니코프 교수가 어느 대학에 속했는지는 생략한채 그가 전쟁 역사학자로서 오랫동안 KAL기 격추사건 조사에 관여해왔다고 소개했다.
기고문은 콜레스니코프가 조사한 관련자 증언들을 담고 있으며 여기에 그의 견해가 보충된 형태로 쓰여졌다.
◇ KAL기는 NATO 첩보기였다 = 콜레스니코프는 먼저 당시에는 여객기들이 항로를 잃고 소련 영공에 들어오는 경우가 많았지만 모두 사태가 평화적으로 해결됐다면서 하지만 KAL기는 그렇지 않았다는데서 문제가 불거졌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콜레스니코프가 면담한 이반 트레치야크 당시 극동군사령관(이후 공군사령관 역임)은 KAL기가 미국이 속한 나토의 정찰 임무를 수행했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근거로서 KAL기가 나토 특수부와 협의를 계속했으며 소련 군당국은 KAL기가 소련 영공에 들어선 직후부터 이들간 교신 정보를 완전히 확보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또 KAL기가 소련 영공에 들어온 순간 극동 캄차카 상공에는 미군 정찰위성이 운항중이었으며 당시 KAL기로부터 정찰위성에 암호가 송출됐다는 정보도 갖고 있다고 덧붙였다.
트레치야크은 KAL기가 정찰기라고 확신한 상황에서 수차례 없애버릴 수 있었지만 캄차카 상공에서 폭발이 일어나면 소련군에 엄청난 손해가 초래될 것이고 미국이소련 핵전략 항공모함 등에 KAL기를 접근시켜 폭발시킬 우려도 있기 때문에 강제착륙을 유도할 수도 없었다고 설명했다.
당시 소련 수호이(SU-15) 전투기 몰고 KAL기를 격추한 겐나디 오시포비치 중령(예비역)은 인터뷰에서 KAL기가 2시간반 동안이나 소련 영공을 비행했으며 무선교신에서 아무런 대답이 없어 첩보기라는 혐의를 갖게 됐다고 말한 바 있다.
트레치야크은 KAL기 폭발 20년이 지난 마당에 난 두려워할 것이 없으며 소련이사라졌듯이 비밀도 없다면서 이젠 진실을 말해야할 때라며 당시 상황을 털어놨다.
◇ KAL기 내부에 폭발물 있었다 = 트레치야크는 당시 조사결과 기체가 자체 폭발했을 가능성도 제기됐다고 밝혔다.
그 근거로서 오시포비치가 전투기에서 미사일을 발사해 요격했지만 비행기는 17㎞를 더 날아가 공해 상공에서 폭발했다는 것이다.
오시포비치도 두 번째 미사일을 날렸지만 비행기는 파손만 입었으며 제거하지는 못했다면서 비행기가 더 날아가는 것을 봤다고 말했다.
트레치야크은 특히 폭발 전문가들이 잘게 쪼개진 파편 형상으로 볼때 KAL기 내부에 있던 4t 분량의 폭발물이 터진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전투기 요격만으로는 큰 파편이 발견되지 않을만큼 강력한 폭발이 일어날 수없으며 조사에 참가한 학자들도 기체 안에 폭발물이 실제 존재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는 KAL기가 첩보활동에 관여했음을 또한번 입증한다는 것이다.
트레치야크는 KAL기가 앵커리지에서 필요하지도 않은 4t의 연료를 추가로 주입했으며 이로 인해 예정보다 40분 가량 출발이 지연됐다고 지적했다.
◇ 망설였던 크렘린 수뇌부 = 당시 모스크바 크렘린 수뇌부는 어떤 모습이었나.
KAL기 영공 침입이 있던 날 당시 집권자였던 고(故) 유리 안드로포프 공산당 서기장은 병원에 입원중이었다.
알렉산드르 코르자코프 비서실장(전 중장) 증언에 따르면 자신도 당일 병원에함께 있었는데 안드로포프는 이미 소생할 기미가 없었다.
이날(KAL 영공침입날) 밤 늦게 드미트리 우스티노프 국방장관이 갑자기 병원으로 뛰어들어와 캄차카 상공에 한국 보잉기가 나타났는데 격추를 위해 서기장의 재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련 법규상 비행기 격추를 위해서는 모스크바?있는 국방부 승인이 필요했는데 당시 국방장관은 혼자 책임을 지기가 두려워 서기장을 찾았다는 게 코르자코프의설명이다.
하지만 안드로포프는 상태가 좋지 못했고 누구도 잠을 자고 있는 서기장을 깨울수가 없어 크렘린 수뇌부는 어떻게 할지 망설이고 있었다.
하지만 이후 우스티노프 국방장관 보좌관 격인 이고리 일라리오노프 사령관이병원으로 전화를 걸어와 니콜라이 오가르코프 원수가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통보해왔다.
하지만 오가르코프 원수도 요격 명령을 내릴지를 놓고 결론을 짓지 못했으며 외무부, 국방부, 국가보안위원회(KGB) 등은 서기장이 일어나서 재가해 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내 서기장이 잠에서 깨자 오가르코프가 안드로포프 서기장에게 상황을 설명했으며 안드로포프는 모든 필요한 조치들을 취하라는 애매한 명령을 내리고 사라졌다.
당시 우스티노프 국방장관은 오가르코프가 서기장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있었지만 마치 어떤 결정에도 개입하지 않게 되길 바라는 듯이 침묵으로 일관했다고 코르자코프는 설명했다.
요격이 있은지 며칠후 공산당 정치국원들은 회의를 열고 사건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당시 회의에 참석했던 가장 젊은 인사가 2년뒤 대통령에 취임하는 미하일 고르바초프 당시 농업담당 정치국원이었다.
고르바초프는 회의장에서 나토가 우리 전투기의 요격 장면을 (촬영 등을 통해)기록했습니까?라고 물었고 빅토르 체브리코프 KGB 의장은 아니오, 그들은 기록하지 못했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러자 고르바초프는 그렇다면 우리 모두 잡아떼면 될 겁니다라고 말했다.
고르바초프는 당시 회의록에서 KAL기는 두 시간동안 소련 영공을 침범했다. 우리는 이것이 중대한 국제협정 위반이라고 선언해야 한다. 침묵을 지킬 것이 아니라공격적인 입장으로 전환해야 한다며 KAL기 사태에 대해 강경 분위기를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 총 사망자는 첩보원 29명 뿐 = 트레치야크 당시 극동군사령관은 사망자 숫자가 공식 발표된 269명이 아니라 첩보 활동에 나선 29명뿐이었다고 강조했다.
한국 보잉기에는 승객을 제외하면 기장 및 승무원 등 18~29명이 탑승하게 되는데 최고 29명 모두 첩보작전에 투입됐다는 것이다.
물론 바다에 떨어진 수하물들을 보면 269명 분량이지만 이는 사건을 호도하기위해 철저히 위장됐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예컨대 269명분의 수하물들이 흩어지지 않고 로프에 꿰어져 바다 위에 둥근 형태로 나타났다고 그는 지적했다.
보통 비행기라면 이곳 저곳에 화물이 흩어졌겠지만 모든 화물이 로프에 꿰어져 가지런한 모습이었다는 것이다.
그는 269명의 죽음에 대한 유죄 증거를 조작하기 위해 (미국측이) 꾸민 것이며 앵커리지에서 승객들은 사전에 비행기에서 내렸다고 주장했다.
그는 생존한 승객들이 증인 보호 차원에서 (미국 땅에) 숨어지내고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 한국에 가짜 블랙박스 전달 = 소련 정부는 KAL기 사건에 대해 죄가 있음을 인정하지 않았고 보상도 계획하지 않았다.
하지만 러시아는 1990년대 들어 한국에 미그 전투기 판매를 위한 로비를 벌였고 한국인들은 공식적인 사과와 물질적인 배상을 요구하고 있었다.
당시 보리스 옐친 대통령은 한국과의 무기 거래를 통해 일정한 대가가 지불될것이라는 보좌관의 말에 설득당했고 한편으론 KAL기 사건에서 불명예스런 역할을 한라이벌 고르바초프를 완전히 밀어내려는 의도도 갖고 있었다.
그 결과 옐친은 페트로프 크렘린 행정실장을 주축으로 소련의 유죄를 시인하는 문서를 준비시켰고 옐친은 한국에 공식 사과와 함께 사고기의 블랙박스를 전달했다.
한국인들은 블랙박스를 받고 소련의 야만성을 전세계에 폭로하겠다고 선언했지만 블랙박스에는 알맹이 있는 내용은 하나도 없었다.
옐친은 페트로프가 자신을 조롱거리로 만들었다는 것을 알자 즉각 그를 해임시켜 버렸다.
콜레스니코프 교수는 블랙박스에 있는 진본 테이프는 여전히 러시아에 남아있다고 주장했다.
(모스크바=연합뉴스) 김병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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