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을 다녀 온 한 분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말했다. “우리나라 사람들 JQ 지수가 세계 제일이라는군요”하자 일제히 “JQ 지수가 뭐예요?”라고 물었다. 대답은 예상했던 대로 잔머리 지수란다. 기발하고 적절한 표현이라는 생각에선지 반박은 커녕 “맞아 맞아”라는 탄성과 웃음이 터졌다. 그러나 웃음 뒤는 하나같이 씁쓸한 표정이었다.
가슴을 친 ‘잔머리 지수’란 용어에 대해 인터넷 검색을 해봤다. 잔머리를 잘 굴리는 능력을 IQ(지능지수)나 EQ(감성지수)같이 표현한 JQ는 이미 광범위하게 쓰이고 있었다. 그뿐 아니라 뻔뻔지수는 BBQ로, 도덕지수는 MQ로, 창조성 지수는 CQ, 사회성지수 SQ, 관계 및 공존 지수 NQ도 같이 회자되고 있었다. 또 대부분이 한국의 사회적 성공에는 JQ가 IQ보다는 훨씬 강력한 영향을 준다고 생각한다는 내용도 나왔다.
‘잔머리’라면 반사적으로 ‘거짓말’,’속임수’,’비하’가 떠올라서 기분이 좋지 않다. 그러나 JQ지수가 보편적으로 거론되고 ‘잔머리 발달’이 출세나 성공의 한 요소로 인정되는 것을 보면 이제 ‘사기성’을 연상시키는 부정적 개념에서 탈피하여 순발력, 창의력, 기민성의 다른 표현인 듯 하다. 건전한 잔머리는 주변을 편하고 즐겁게 하며 세계 최고 수준의 IT한국을 개막시킨 배경이라는 주장도 있다.
어느 취업정보 사이트에서 최근 회사원 1,028명을 대상으로 한 ‘회사원들의 잔머리’ 조사에서도 60%가 ‘적당히 굴린다면 OK’라는 호의적 답변을 했다. 기회 닿을 때나 눈치 봐가면서 잔머리 굴린다는 응답자가 60%였고 ‘절대 안 굴린다’는 4.4%에 불과했다. 잔머리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대해서도 64.4%가 ‘필요악이며 적당히 라면 괜찮다’고 말했고 4.5%만이 ‘남에게 해를 끼치는 나쁜 행동이다’고 답했다.
그러면 도대체 적당히,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잔머리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지난주 라스베가스에 갔다. 유일하게 할줄 아는 슬럿 머신조차 모른 척하기 섭섭해서 일행이 잠든후 25센트 기계를 붙들었다. 20달러 짜리 몇장 잃고 오기가 발동, 100달러 지폐를 넣었다.
어디선가 튀어나온 한 남성이 생글생글 웃으며 말을 붙였다. 옆의 MGM호텔 딜러라면서 “왜 25센트 짜리하세요? 확률이 14%밖에 안 되는데.. 그 정도 돈이면 차라리 1달러 짜리를 하세요”라며 은근슬쩍 자존심을 건드렸다. 이곳 딜러 친구를 만나려면 1시간 여유가 있다며 그는 다시 블랙잭이 그나마 승산이 40%가 넘는다며 가르쳐 줄테니 해보라고 했다. 그래도 꿈쩍 않자 “그럼 많이 따주면 술 한잔 사주실 거예요? “라고 했다. “딜러가 도박하면 패가망신 하는 것 아닌가요?”하면서도 제안에 솔깃했다. 어차피 기계 안에 한번 들어간 100달러는 더 이상 내 것이 아니다. ‘그래, 딜러라니 딸 수 있겠지’ 싶어 100달러를 바꿔 넘겨줬다. ‘밑천이 적긴 적네요’하면서 시작한 그는 한 10분 만에 손을 털고 일어났다. “밑천이 적어서.. 조금 더 해보실래요?”는 말에 정신이 났다.
그는 도박중독자였고 돈은 없으니 ‘띨띨이표 재물’을 골라 도박 재미를 조금 연장한 것이었다. 나름대로 굴려 본 잔머리가 프로페셔널 잔머리에 멋지게 당한 사건이었다. 일행은 허리가 부러지게 웃었고 “남의 돈으로 재미보겠다는 사기꾼도 그렇지만 시골서 막 상경한 할머니도 아니면서 돈 건네준 사람이 더 웃긴다”고 놀렸다.
불과 며칠전의 이 해프닝은 잔머리 굴림에 대한 시선을 재확인시켰다. 발달된 잔머리가 아무리 출세에 필요하고 순간적 지략이라 해도 그 유형에는 속하고 싶지 않다. 많은 유익을 준다 해도 좋아할 것 같지 않다.
차라리 21세기의 화두라는 NQ(합리적 인간 관계 및 공존지수) 높이기 노력을 하겠다. NQ의 계명으로 누군가 내놓은 ‘꺼진 불도 다시 보자-지금 힘없다고 우습게 보지 말라’ ‘평소에 잘해라’ ‘남이 내주는 밥값을 당연히 여기지 마라’ ‘고맙다, 미안하다를 큰소리로 표현해라’ ‘남을 도울 때 화끈하게 도와라’ ‘남의 험담을 하지 마라’ ‘회사 돈이라도 함부로 쓰지 마라’ ‘남의 기획을 비판하지 마라’ ‘가능한 옷을 잘 입어라’ ‘조의금은 많이 내라’‘수위아저씨, 청소부 아주머니께 잘해라’ ‘수입의 1%는 기부해라’ ‘당신을 참고 견디는 배우자를 사랑해라’를 열심히 되뇌이겠다.
이정인 국제부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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