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산드라는 트로이 프리암 왕과 헤쿠바 왕비 사이에서 태어난 공주다. 아폴로의 눈에 들어 미래를 예지하는 능력을 부여받았으나 그의 사랑을 거절했다는 죄로 아무도 그의 말을 믿지 않는 벌을 받는다.
그리스인들이 목마를 남겨두고 떠난 후 트로이 인들에게 이를 성으로 들일 경우 나라가 망할 것을 경고했으나 누구도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결국 트로이는 멸망하고 카산드라는 아가멤논의 노예로 끌려갔다 아가멤논의 아내 클리템네스트라에 의해 아가멤논과 함께 살해되고 만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야기 한 토막이다.
지난 주말 미국에서 가장 경치 좋은 동네의 하나인 와이오밍 잭슨 호울에서 미 중앙 은행 연례 총회가 열렸다. 내년 1월 퇴임을 앞두고 있는 앨런 그린스팬 연방 준비제도 이사회(FRB) 의장으로서는 마지막 참석이었고 따라서 사람들은 그의 연설도 덕담 정도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그는 이 자리를 미국 경제가 처한 위험을 경고하는데 사용 했다.
그는 지금 부동산과 주가 상승으로 미국민은 풍요를 누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처럼 “풍부한 유동성(돈)은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다”며 어떤 이유에서건 투자가들이 더 조심스러워지면 이들은 빚을 갚기 위해 자산을 팔아야 하며 그렇게 되면 그 가격은 하락할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역사는 장기간에 걸친 낮은 위험 부담의 시기는 뒤끝이 좋지 않았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는데 이는 쉬운 말로 “겁없이 투자하면 망한다”라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다.
그는 미국 경제를 위협할 수 있는 요소로 증대되는 보호 무역주의 압력과 통제 불능 상태로 빠져들고 있는 재정 적자를 들고 자유 무역으로 인한 일자리 감소는 교육을 통한 노동력의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해결해야지 나라의 빗장을 걸어 잠궈서는 안 된다고도 했다. 구구절절 옳은 소리다.
익히 알려진 것과 같이 그린스팬은 1996년 “이유 없는 낙관” 발언을 통해 주식 시장 거품의 위험을 경고했고 1999년 미 중앙은행 연례 총회에서 주가의 급등은 설명할 수 없는 현상으로 “비정상적인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다우존스 산업지수와 나스닥은 모두 그 후 몇 달 뒤 꼭지를 친 후 5년이 지난 지금까지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그린스팬은 얼마 전에도 미 일부 지역 부동산에 거품이 끼었다는 말을 한 적은 있다. 그러나 이번처럼 강한 어조로 주식과 부동산 버블의 위험성을 지적한 것은 처음이다. 그린스팬은 자신의 투자 자금을 모두 가장 안전한 머니마켓 펀드에 넣어 두고 있다고 한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미국 경제의 최고 권위자라는 사람이 문외한인 아내보다 투자 수익률이 낮다고 조롱받기도 했다. 그의 이런 투자 결정은 이번 발언과 연관시켜 볼 때 예사스럽지 않아 보인다.
지난 수년간 부동산 가의 급등에도 불구, 미국인들이 집에 관해 가지고 있는 에퀴티는 75%에서 50%대로 줄어들었다 오르는 것보다 더 많은 돈을 재융자를 통해 뽑아 썼기 때문이다. 거기다 평균 저축률은 0%다. 미국인들의 주머니 사정은 경기가 나빠질 경우 어느 때보다 취약한 상태다.
겉으로 태평성대처럼 보이는 미국 경제는 곳곳에 구조적인 문제점을 안고 있다. 모든 것이 잘 풀려 좋은 시절이 계속될 수도 있겠지만 상황이 나빠질 가능성도 엄존한다. 한 여름철 신나게 놀다 추운 겨울이 오면 개미한테 찾아가 구걸하는 베짱이보다는 검소하고 부지런한 개미가 되는 것이 현명하지 않을까.
FRB 부의장 재직 시절 사사건건 그린스팬과 충돌한 블라인더 교수는 이번 총회에서 “그야말로 미국 역사상 가장 뛰어난 중앙 은행장”이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미국 정치인과 국민들이 동료들로부터 보기 드문 존경을 받는 경제 수장의 충언에 귀기울여 더 늦기 전 다가올 어려운 시절에 대한 준비를 할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민 경 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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