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한국에 있는 작가인 막내 여동생한테서 전화가 왔다. 글이 잘 써지지 않는다는 푸념과 함께 고종사촌 오빠(전 해양수산부 장관 조정제씨)가 최근 66세의 나이에 첫 장편 소설 ‘북행 열차’를 발표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남남북녀의 만남과 사랑, 탈북과 남한정착을 다큐멘터리 식으로 써낸 소설로써 이제는 남쪽에서 북행 열차를 타고 가야 할 때임을 제시한다고 들었다. 지난해에 월간 ‘수필문학’을 통해 정식으로 수필가로, 또한 항해사의 사랑을 다룬 단편 소설 ‘은파를 넘어서’로 문단에 정식 데뷔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에도 별로 놀라지 않았었다. 그런데, 한때 장관을 지냈던 사람이기에, 그것도 인생의 마무리 단계에 서 있는 사람이 장편소설을 출간했다는 점에서 아마도 큰 뉴스거리가 됐던 모양이다.
그래서 가까이에서 지켜본 그 오빠의 유년시절과 대학시절(서울대학 영문과), 이후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그리고 플브라이트 장학생으로 캔사스 주립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기까지, 갖가지 일들이 엊그제 일처럼 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나의 대학 시절, 오빠가 경제기획원에서 근무할 즈음 가끔씩 나는 Robert Frost의 시 “A Road Not Taken”의 구절처럼, 오빠의 ‘가지 않은 길’에 대해서 생각하곤 했었다. 그런데, 그 정제 오빠는 ‘돌아와 거울 앞에선 누님’처럼 대학 시절에 ‘하고 싶었던 일’을 지금 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인생에서는 꼭 해야만 되는 일과 하고 싶어서 하는 일들이 있다. 자식으로서 부모님께 꼭 해야만 되는 일과 가장으로서 집안의 경제를 책임지는 일, 자녀들을 제대로 키워 짝을 찾도록 보살피는 일 등. 이제는 공직에서 완전히 물러났고 그와 같은 ‘해야만 되는 일’에서 해방된 지금, 오빠는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세르반테스는 ‘동키호테’를 나이 60세에 써서 인구에 회자하는 작품으로 남겼고, 여류작가 박완서씨는 40세를 넘은 후에 소설가로 화려하게 데뷔하여 70세가 넘은 지금까지 꾸준히 작품활동을 해오고 있다.
우리는 인생을 크게 세 챕터로 나눌 수가 있다고 본다. 부모 밑에서 자라서 출가하기까지를 제1 챕터라 한다면, 결혼 후 자식 낳고 길러 그 자식들이 배우자를 만나게 되기까지를 제2 챕터로 볼 수 있다. 그런 후에 다시 남는 두 부부만의 생활은 제 3의 챕터로 볼 수 있다.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대열에서 낙오되지 않기 위해, 앞만 바라보며 살아온 제1, 제2 챕터 동안은 흔히 자신을 위한 삶이 아닌, 사회가 혹은 부모나 가족이 원하는 삶을 우리가 영위해 왔는지 모른다. 이제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자신을 돌이켜 보며 오빠는 남은 여생 동안 자신의 능력과 정렬을 쏟아 부을만한 일을 찾아낸 것이다.
사람들 가운데에는 독일의 대 문호 괴테처럼 모든 분야에 두루 뛰어난 재능을 갖춘 사람이 있는가하면, 아인슈타인처럼 한 분야에만 특출한 재능을 지닌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버드 대학의 심리학자 Howard Gardner의 말처럼 언어, 수리(논리), 음악, 미술, 육체적인 운동에 대한 재능이나, 대인관계에 대한 능력, 자기 성찰에 대한 능력 등 7가지의 잠재 능력들을 모두 갖고 있다. 다만, 이 잠재능력들을 얼마나 개발하느냐는 본인과 가족 구성원, 특히 부모님의 관심여하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가능하다면 자녀들의 소질과 적성을 미리부터 파악하여 북돋워준다면, 자녀들이 ‘하고 싶은 일’을 자신감을 가지고 해낼 수 있을 것이다. 능력 개발은 일찍부터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능력의 한계도 인정할 줄 아는 것도 중요하다.
필자는 앞으로 한인이민 생활을 문학작품으로 담아 내는 작가가 많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인 부모들의 격려와 뒷받침이 따라야 할 것이다. 머지않아 초·중·고등학교 영어교과서에 수록될 수 있는 ‘한인들이 쓴, 한인들에 대한 작품들’이 많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 일은 우리 한인들이 꼭 ‘해야만 되는 일’ 중의 하나 일 것이다.
클라라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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