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출’ 허진호 감독 인터뷰
사실 따지고보면 허진호 감독의 작품은 대박을 치지는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는 대부분의 영화들과는 달리 그의 영화는 시간의 흐름과 비례해 그 여운이 오래도록 지속되는 힘을 과시했다. ‘8월의 크리스마스’가 그랬고, ‘봄날은 간다’가 그랬다.
그가 세번째 영화 ‘외출’을 공개했다. 역시 멜로다. 그러나 그는 지금껏 장르로서 멜로에 접근했던 것은 아니다. 그저 남녀가 만나고 헤어지는 것들이 영화적인 소재로 재미있기 때문에 가져간 것이었다고 선을 그었다. 이미 영화계에는 ‘허진호 스타일의 멜로영화’라는 용어가 만들어진 지 오래인데도 말이다.
어쨌든 이번에도 장르로는 멜로다. 그리고 앞선 두 작품에 비해 보다 강도가 세다. 불륜을 다뤘기 때문이다. 처녀 총각의 연애가 아니라 배우자가 있는 남녀가 빠지는 사랑이다. 그것도 그들의 배우자들은 이미 불륜을 저지른 상태다. ‘홧김에 서방질’하는 격일 수도 있다.
’잔잔하고 착한’ 허진호 감독 스타일의 멜로영화에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소재다. 그러나 어떤 소재든 레서피와 손맛에 따라 다양한 맛을 내는 법. 허진호 감독의 불륜은 치명적이거나 위험하게 보이는 대신 아름답고 슬프게 그려졌다. 물론 본인이 의도한 바다.
인터뷰실에서 담배를 자제해달라고 ‘구박’을 좀 했더니 연기가 그쪽으로 안 가게 딱 두대만 피겠다며 애절(?)하게 부탁을 하는 허 감독과 ‘외출’을 파고 들었다.
▲ 비난받아 마땅하나 슬픔을 이해해달라
인수와 서영, 둘이 어떻게 사랑하게 되는가, 그 사랑에 대한 얘기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각각의 배우자들의 사랑 이야기와 이들의 사랑 이야기가 결국은 같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렇다면 인수와 서영의 사랑을 비난하려고 했다는 얘기인가. 화면에서는 그게 안 보이는데…. 둘의 사랑은 오히려 정당해 보인다.
그렇게 보이나. 하지만 내가 주목한 것은 아이러니다. 인수와 서영의 사랑과 그들 배우자들의 사랑이 다르지 않다는 것, 그러나 둘의 사랑이 비난받을만 하지만 나름의 아픔을 이해해주길 바라는 것이다. 그것이 복수심이나 배신감에서 시작된 것이라 할지라도. 그가 영화의 메시지를 잘 전달한다고 꼽은 장면은 장례식장에서 서영 남편 경호의 영정 사진을 사이에 두고 서영와 인수가 절하는 부분이다.
인수에게는 자기 와이프와 바람 난 상대의 장례식장이다. 굉장히 증오했을텐데 또 반대로 그는 경호의 와이프와 사랑에 빠졌다. 그러다 경호가 죽었을 때 둘의 관계라는 것이 얼마나 참혹한 것인가. 그 장면의 느낌이 아주 좋았다.
기막힌 상황을 표현하는데 있어 허 감독이 선택한 것은 ‘말문이 막히는’ 상황이다.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인지 인수와 서영은 극중 말이 별로 없다. 그들은 조용하고 눈빛과 표정으로 이야기한다. 자연히 카메라도 그들을 가까이서 비추며 섬세한 변화를 포착했다.
이전에는 인물 클로즈 업을 하면 감정이 너무 직설적으로 표현되는 것 같아 불편했다. 그런데 이번 영화를 준비하면서는 미세한 부분들이 포착되기를 바랬?멀리 찍으면 안 보이는 눈동자를 잡고 싶었다. 클로즈 업은 연기자에게 아주 힘들지만 연기에 있어서 자연스러움과 사실성을 추구할 수 있었다.
▲ 몸으로 보여주는 느낌들이 살기를 바랬다
앞선 두 작품에 비해 ‘외출’은 도발적인 소재라는 점 외에도 비교적 ‘모양새’를 갖춘 베드신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허 감독 스타일의 변화를 보여준다.
인수와 서영의 베드신은 아름답고 서정적으로, 또 슬픔이 느껴지기를 바랬다. 인수는 자기 와이프의 불륜 동영상을 보고 토악질을 한다. 그랬던 그가 불륜을 저지른다. 그래서 인수와 서영의 베드신은 예쁘게 찍고 싶었다. 인수의 입장에서는 자기의 사랑은 다르게 느껴졌을 테니까. 몸으로 보여주는 느낌들이 살기를 바랬다. 그런 점에서 손예진에게 무척 고맙다. 사실 감독 자신도 떨렸다. 그 역시 처음으로 찍는 베드신이었기 때문이다.
여배우로서 그런 장면들에 있어 움츠러들기 Э?콘티를 그려서 줬는데 결국은 그대로 찍지 않더라.(웃음) 다들 첫 베드신이라 무척 긴장했는데 다행히 별 어려움 없이 찍었다. 손예진은 우리를 편하게 해주려했는지 ‘재미있는데요’라고 농담을 하더라.
▲ 세상을 바라보는 온도가 좀 낮아졌다
’8월의 크리스마스’와 ‘봄날은 간다’에서는 따뜻함과 밝음이 느껴졌지만 ‘외출’에서는 슬픔과 어둠이 느껴진다. 그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난 것일까.
내가 기본적으로 긍정적인 편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온도라는 것이 있다면 그 온도가 낮은 편은 아닌 것 같다. 어떤 식으로든 따뜻하게 보려고 한다. 그런데 요즘들어 그 온도가 좀 떨어지지 않았나 싶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느끼는 건조함일 수도 있다.
’8월의 크리스마스’의 일본 리메이크 작품을 얼마전 봤다는 허 감독은 지금보면 지나칠 정도로 착한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원점으로 돌아가고픈 생각도 있다. 그런 영화가 굉장히 행복한 영화인 것도 같은데 지금은 ‘온도들이 빠져나가’ 힘든 사람들의 이야기, 상황이 굉장히 극적인 경우에 흥미를 느끼고 있다고 덧붙였다.
일부러 멜로를 고집한 것은 아니라고 ‘항변’했지만 그의 다음 작품도 멜로다. 그는 그 작품 이후에 변주를 추구할 생각이다.
늙는다는 것, 죽음에 대한 것을 그리고 싶다. 여러가지가 나올 것 같아서 생각중이다.
(서울=연합뉴스) 윤고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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