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한 재난인 세계 제2차 대전은 1939년 9월 1일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독일은 첨단 무기로 무장된 유럽 최강의 군대를 갖고 있었고 폴란드는 1차 대전 때 쓰다 남은 고물 무기를 마차를 이용해 끌고 다니는 수준이었다.
그럼에도 히틀러는 폴란드를 쳐들어가기 전 강제 수용소 죄수들에게 폴란드 군복을 입힌 후 총살한 다음 그 시체를 독일 국경 안에 몰래 배치했다. 그리고는 폴란드 군대가 독일을 공격했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폴란드를 침공하게 됐다는 억지 주장을 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 38선을 넘어 사흘만에 서울을 함락시킨 북한은 아직도 6.25는 북침 전쟁이었다는 픽션을 고집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아무리 악한 정부도 침략 전쟁이 나쁘다는 것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전쟁에서 명분의 중요성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아무리 어거지라도 상대방이 먼저 싸움을 걸어왔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방어 전쟁을 해야 했다는 주장을 펴야 싸움의 명분을 얻게 된다. 미 역사에서 치욕의 날로 기록되고 있는 ‘진주만 기습’도 제2차 대전 참전을 위한 루즈벨트가 참전 명분을 얻기 위해 일부러 유도한 것이라는 주장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것도 그래서다.
‘먼저 맞았다’를 강조해 얻을 수 있는 또 하나의 이점은 나중에 전쟁이 무승부로 끝났을 때 생긴다. 먼저 쳐들어 가 비기면 침략 전쟁에 실패한 것이 되지만 수비를 하다 비기면 방어에 성공한 것이 된다. 북한은 아직도 6.25를 미제의 침략으로부터 조국을 지켜낸 위대한 승리라고 선전하고 있다.
몇 달째 한국 정부와 LA 한인들간에 분쟁의 대상이던 한국 교육관 사태가 드디어 법정으로 갈 모양이다. 한국 교육부는 신임이사 선임에 반발, 새로 이사진 구성에 참여한 백기덕 씨 등을 상대로 신임 이사진 임명의 정당성을 따지기 위한 소장을 16일 법원에 접수시켰다.
총영사관 측은 “백기덕 전 이사장이 정부에서 사용하고 있는 교육원 사무실을 비워달라고 요구, 부득이 법적 대응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지만 먼저 소송을 제기함으로써 명분 싸움에서 일단 지고 들어가고 있다.
지난 수개월 동안 풀리지 않는 문제 해결에 골머리를 앓아온 한국 정부의 심정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사실 처음 이 문제가 불거졌을 때만 해도 교육관이 2세 뿌리 교육이라는 설립 취지에 맞지 않게 운영되고 있으며 그동안 공로에도 불구, 8년 간이나 이사장으로 재임해 온 백기덕 이사장이 이제는 물러서야 한다는 주장에 공감하는 한인들이 많았다. 더군다나 백 이사장 측이 그 동안 아무 말 없이 수용해오던 정관을 하루아침에 부정하고 증거도 없이 영사들에 대한 인신 공격까지 일삼자 여론은 오히려 영사관 쪽에 동정적이었다.
그러나 이번의 느닷없는 소송 제기로 사태가 달라질 것 같다. 우선 총영사관 측은 어떤 일이 있어도 법정에 가서는 안되고 당사자간의 타협으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쌍방의 약속과 한인 사회의 공감대를 깨뜨렸다. 총영사관은 아직도 대다수 한인들이 조국으로 생각하는 한국을 대표하는 기관이다. 그런 단체가 한인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다는 것은 자식이 말을 듣지 않는다고 부모가 법정으로 자식을 끌고 가는 것이나 별 차이가 없다.
한국 정부의 입장이 백 번 옳고 소송을 해 이긴다 하더라도 그런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앞으로 후유증과 함께 나쁜 전례를 남기게 된다. 백기덕 씨 측은 자신들은 물론이고 교육부가 새로 임명한 이사들도 이번 소송 제기를 몰랐다며 부당한 소송 철회를 위해 한국 정부에 탄원과 함께 책임자 소환 캠페인까지 벌이겠다고 밝히고 있다.
2세를 교육한다는 명분으로 세워진 교육관 운영을 놓고 어른들이 싸우는 모습을 본다면 2세들이 무엇을 배울 것인지 걱정이다. 뿌리 교육이고 전통 문화고 뭐고 한국인들은 추하다는 이미지만 머리 속에 남지 않을까. 지금이라도 교육원과 백기덕 씨 측이 타협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성숙된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이 진정한 2세 교육을 위해 가야할 길이라고 본다.
민 경 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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